노을 비낀 숲에서

소래 포구에서

해선녀 2004. 4. 19. 10:05

 

 

 

 

한국으로 혼자 먼저 돌아온 후, 여기 저기 새로 들어가 살 집을 알아 보면서 나는 언니네 집에 머물었다. 대학시절, 언니집에서 학교를 다닌 이후 처음이다. 꼭 열흘만에 나지락 나지락, 걸으면서 외출을 하던 날, 어린 시절 이후로는, 육십대의 언니와 오십대의 동생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걸어서 함께 어디로 가는구나 하면서 우리는 웃었다.  유월의 햇살이 빛나는 속으로 낭만의 버스를 타고, 우리는 소풍가는 아이들이 되어 소래 포구에 가 보기로 했다.


우리는 몸과 마음으로 너무 오래 헤어져 살았다, 언니네는 70년대 말, 박정권 시절, 청와대 경제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형부의 '능력'으로 한국 최상층의 풍요와 부를 누리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언니와 형부의 몇몇, 그런 류의 사람과의 결혼 권유를 뿌리치고 나와서 아무 대책없이, 둘이 함께 공부한다는 꿈 하나만 가득한 가난한 삶을 택하였다.  결혼 이후, 나는 거의 그들과 단절했다. 처음으로 집을 살 때 도움을 잠깐 받기도 하였으나,  될수록, '그것 봐라. 너 힘들지?' 하는 눈으로만 바라 보는 듯한 친정 근처에는 가지 않으면서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려고 애썼다 그것은 남편의 자존심이자 내 자존심이엇으므로...

 

요즈음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그 때, 형부도 너무 고지식하여 모종의 권력 부조리에 대한 부적응으로 갈등하다가 결국 이민을 결심하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로 가서 살았다. 그 후, 십오넌, 형부의 향수병 때문에 다시 돌아와 지금까지 심변 쯤 인천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인천항에 정박중인 배라고나 할까, 곧 다시 아들들이 있는 부에노스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 .

 

포구는 원래 그렇게 스산한 곳, 그 곳을 즐기기에는 너무 너저분하였다. 길 양편은 내내 육지로부터 실려와 쌓인 삶의 쓰레기 더미들이 이어지고 먼지 날리는 포도 위로 불어오는 끈적한 갯바람에 어시장의 썩은 생선냄새가 멀리서부터 코를 괴롭힌다 팔짱을 끼고 횟집들을 기웃거리기만 하며 걷다 보니 골목 끝에 다달았다. 포구의 안쪽 끝,  시궁창 냄새가 가득하다. 숭숭 구멍이 뚫리고 흔들거리는 철다리를 건너가 바다 밖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돌아와 포구 안에 가득 찬 구정물을 바라 보았다. 횟집들과 어물전에서 흘러나온 그 구정물은 바깥으로 아주 천천히 밀려 나가고 있었다.

 

내 영혼의 배인가, 거기, 그 한 자락 구정물 위에서 뭉기적거리면서 작은 배 하나가 혼자서 일렁이고 있다. 포구를 들지도 나지도 못하고 묶여 있는 배. 시궁창에 피는 연꽃처럼 끝내 피어날 일도 없을 터인데, 언제까지 저렇게 일렁거리기만 하며 도 아닌 도를 닦고 있겠다는 것일까? 차마, 더 바라보지 못하고 돌아서 나오면서 나는 됫꼭지가 자꾸 캥겼다. 천천히 걷다가 종점을 몇 걸음 앞에 두고는 내가 기어이 먼지나는 길가의 간이건물 앞 탁자 앞에라도 걸터 앉자고 하였다.


은행나무 그늘이 제법 시원하고 그 뒷켠으로는 고추밭에 고추잎들이 무수한 고추들을 거느리고 청청하니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 저렇게, 떠나는 포구의 뒤켠으로 돌아 서서 바람을 타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익어 가는 고추들이 있었구나. 고추가 빠알갛게 다 익을 무렵이면 그 배도 어디론가 떠날 수 있을까? 고추들도 그 때서야 돌아서서 어디론가 떠날까...막걸리만 판다는 뚝심 좋게 생긴 강원도 말씨의 할머가. 돼지 껍데기 볶음과 시퍼런 배추 시레기로 만든 김치를 막걸리 한 잔에 곁들여 내어 놓는다. 가장 질박한 삶으로부터 우려낸 가장 리얼한 즙, 얼큰한 서민의 맛. 포도 위의 먼지와 끈적한 바람까지 앙념으로 얼구어진 된 것일까?고소하고 구수하다.


빈 손으로 돌아오기가 아쉬워서 무심히 사 든 칼치와 미역 봉다리가 바다만 바라보던 내 마음의 한쪽 끝을 저울 추처럼 잡아 당기면서 내 종아리에 자꾸만 부딪치며 나에게 말한다 포구는 바로 그런 곳. 바다를 그리워만 하며 달려 오는 인생 철부지들이 펼떡거리는 육지의 삶을 버리고 온 줄 알지만, 그 가장 치열하게 끓고 있는 삶의 끝자락이 가장 리얼하게 살아 있음을 보는 곳. 꿈과 현실, 그 단절의 현장이 곧 그 만남의 현장이라는 것을 다시 학인하고 돌아가게 하는 곳이라고.


공교롭게도, 아까 올 때, 소래에서 나오는 버스를 소래로 들어가는 버스로 잘못 알고 거꾸른 방향으로 한참을 잘못 타고 가던 우리에게 아예, 다른 코스로 소래로 가는 버스를 안내해 주었던 그 버스 기사가 그 사이에 인천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그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것이다.  꿈으로 가는 버스가 순환하여 현실로 돌아가는 버스가 되는 것임을 새삼 깨닫고 웃음이 나왔다. 그 기사도 진작에 그런 생각을 하였을까? 삶을 산다는 것은 삶을 버리는 것이고, 버리는 것은 또한 다시 얻는 것이라는 것도?

 

나는 지금부터 포구 바깥쪽만 향해 살아온 삶의 방향을  안쪽으로 돌리며, 내가 살아오던 삶을 하나하나, 버려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눈이 어두운 사람으로서 사는 것은 눈이 밝은 사람이 사는 것과 다를 수 밖에 없다. 내 곁의 사람에게 나와 같은 삶을 살아 줄 것을 요구하지 말자...그 버스기사는  갈 때나 올 때나, 친절하기가 한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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