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내가 먼저 돌아오고 나서도 나는 검둥이 수니 녀석이 내내 걱정이 되었다. 광고를 언제 낼 건데? 전화를 할 때마다 물었다. 우리와 만나기 전에는 물이 있는 곳에서 살았을까? 어느 날 길을 잃고 헤매었을까, 혹은, 아파트에서 키우던 주인이 개가 커지면서 감당을 못하여 결국, 버렸을까, 수니는 20파운드가 넘지 않으면 된다는 그 아파트의 입주 기준에 겨우 맞는 개였다.
수니는 점점, 나처럼 새를 기다리게 되어 갔다. 처음에는 왕왕 짖으며 새 모이를 줄 때마다 저도 긴 주둥이를 들이 밀더니, 저도 생각이 있지. 그래 봤자 저만 심심해진다는 걸 알아채고부터는 새가 오면 나부터 쳐다 보았다. 저것 봐요, 왔잖아요...쉿, 조용히...내가 새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챈 관념의 개가 되었다.
말은 안하지만, 공을 치러 혼자 매일 가는 것이 미안해지면, 남편은 종종 수니와 나를 태우고 공원에라도 갔다. 저녁에 산등성이에 둥근 달이 솟을 때까지 공원에서 공놀이를 하곤 한다. 저 검둥이 좀 보소. 공을 던지려면 지가 먼저 달려가서 기다린다. 그 관념을 깨려고 반대방향으로 던지면 헐레벌떡 달려가는 꼴이라니. 아이구, 짜슥, 멋지기는... 차밭 이랑처럼 밀어 놓은 멀고 먼 잔디풀밭엔 뎅겅뎅겅 잔디기계에 모가지가 잘린 민들레들이 지천으로 넘어져 있고 오우크 나무의 비릿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녀석은 제 장난감 공 두 개를 풀더미들 속에서 잃어 버리고 해거름에 어슬렁거리고 나온 땅돼지 한 마리조차 놓치고 말았다. 호수를 돌아 나오는 숲속길, 달이 꼬불꼬불 이어지는 숲길을 우리 앞에 떠가면서 인도한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과 트로이메라이만 꿈결처럼 들리는 찻속. 아파트에 갇혀서 관념만 배우고 살던 녀석이 가만히 음악을 듣는다. 돌아와서 불 켜진 창 안에서 우리는 또 새들에게 귀를 기울인다. 건너편 숲은 새들도 초저녁 잠이 들었는지 조용하다...
그리고는 더 이상 관념이 아니었다. 한국으로 돌아 오기 전에 풀밭이 너른 집, 헤엄칠 물이 있는 집.그런 집으로 녀석을 보내야 했다. 그런 집이면. 돈 안받고 줄 테니 저 개를 좀 데려 가라고 아무래도 곧 클래시파이드 메드 광고를 내야겠다... 남편은 그럼 말을 했었다. 돈을 주고라도 그런 집에서 누가 데려 간다면 줘야지. 아무도 안나서면 쉘터에 기부금 좀 내고 갖다 주면 되지만, 거기서 새로운 주인을 며칠 사이에 만나지 못하면...그 개는 결국, 죽음이다....
쉘터에 갇혔던 스트레스 때문인지 수니는 처음부터 위장이 좋지 못하여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지 못하였다. 애처롭게 바라보는 녀석에게 남긴 고기를 버리면서도 줄 수가 없어서 우리를 안타깝게 했던 녀석... 조금만 욕심을 내어 도그푸드를 많이 주었다가는 녀석은 설사 때문에 절절 매며 황소같은 힘으로 나를 끌며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결국, 수니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광고를 보고 쇄도하는 전화 중에서 마당이 너르고 녀석이 좋아하는 물이 있는 집을 골라서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녀석의 행운을 빌었다.
개도 들어가도 되는 골프장에 데려가면 공을 쫓다가도 물만 보면 정신 없이 뛰어들어가던 녀석, 호수에 가면 오리들을 향해 뛰어들고, 공원에 가면 저를 무서워하는 줄도 모르고 사슴들을 향해 뛰어 가던 그 철부지 녀석...제발, 이제는 시시하게 아파트에나 갇혀 애처로이 바깥을 향해 나부끼던 관념의 옷 같은 건 벗어 던지고, 발가벗은 몸으로 너른 잔디밭에서 마음껏 뛰어 놀고 물 속에서 헤엄도 치면서 몸만 건강하게 오래 살거라...너를 사랑한답시고 우리는 너를 가두었구나..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