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키웟던 개들 중에 보보라는 개가 있었지요. 바보처럼, 저 병사들처럼, 내가 걸을 때, 걸음걸음, 늘 내 곁을 따라 步步, 걷던, 또 다른 나였어요.
저 아이들의 결혼을 앞둔 어느 날 나는 정호에게 걱정을 늘어 놓았지요. 너, 설마, 이렇게 걱정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마음으로요. 유학 일년만에 갑자기 결혼을 하겠다고 하는 아이가 우리는 반가우면서도 걱정이 많았거든요. 어려운 우리 형편에 무엇을 해 줄 수 있을 지, 무엇을 바라는지...그런데, 생각했던대로, 정호는 오히려, 바보 같은 나를 다독거리더군요. 엄마, 걱정 말아요. 우린 아무 것도 필요 없어요...
그래, 그 개도 나처럼 그랬어요. 괜히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왕왕 짖었지요. 그럴 때, 내가 아니야, 아니야, 그래 주면, 보보는 몇 번 더 크게 짖어대고는, 꼬리를 흔들며 내게 몸을 비비면서 내가 바라보는 곳을 멀뚱히 바라보곤 했지요. 어릴 때부터, 정호는 그랬어요. 애 보는 할머니 곁에서 보보처럼, 학교로 가는 내 쪽을 멀뚱히 바라보았어요. 나만 보면서 따라가겠다고 보채지도 않고. 엄마가 가는 저 바깥 쪽엔 무엇이 있는 것일까, 매일 아침 어디로 가는 것일까, 생각하는 듯, 바라보았지요. 내게 와서 안길 때도, 앞으로 와서 덥썩 안기는 대신, 엉뎅이를 내 무릎에 디리밀고 의자처럼 앉아 앞쪽을 바라보았어요.
사람들은 그랬지요. 그렇게 앉는 아이는 남동생을 본다고. 정말 그래서였던가, 둘째도 아들, 나는 아들만 둘이랍니다. 버스를 타고 가도 나는 일부러 창문 밖을 내다보게 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나에게 매달리기보다는, 세상를 내다볼 수 있게 했는데....그 애가 그렇게 훌쩍, 장가를 갔답니다. 늘 그렇게 나가 다니기만 하고 집은 그 때의 제 무픞처럼, 버스의 의자처럼, 그저 하숙집처럼 들락거리던 녀석이, 이젠 저렇게 또 예쁘고 착한 마누라와 토깡이 같은 제 아이를 가진 어엿한 아버지가 되었답니다. 태오의 저 모습이 꼭 토깡이처럼 눈을 크게 뜨고 호기심에 가득 차서 세상을 바라보던 정호 어릴 때의 모습이지요.
때로는 나도 내가 저 아이를 잘못 키운 건가, 걱정도 된답니다. 며느리 말에 의하면, 매일 저녁 친구들, 후배들과 어울려 다니고 집에는 늦게 들어오기 일쑤라니까요. 여전하지요. 대학 이후로, 주중에 집에서 저녁을 먹는 건 일주일에 한 번도 체 안되었지요. 지금도, 자신이 창단한 현악 오케스트라 멤버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연습하고 한국인 친구들뿐 아니라 누구보다도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가지고 있는 '외향성'의 정호... 에맄 프롬도 그렇게만 키우라고는 하지 않았을 텐데..때로는 나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사랑의 기술. 난 그게 모자랐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나는 아이들에게, 어미란 해 주는 존재일 뿐, 해 받는 존재는 아니라는 듯, 그 아이들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도록 키우지를 못했거든요. 그 애는 저렇게 결혼을 하기까지, 며느리가 처음으로 챙기기까지, 내 생일이 언젠지도 기억하지 못했답니다.
정호는 그 동안 또 다른 나였지요. 내가 가지고 있는 많은 생각들의 이 모퉁이 저 모퉁이를 한꺼번에 맞추어서 동시상영하기는 힘들었지만, 다시 차분히 돌아서서 생각해 보면, 늘 거기, 그 자리에 제가 있고 내가 있었지요. 함께 차분히 앉아서, 어떤 곳을 바라 보기만 하면 말이지요. 아침저녁, 얼굴 마주하기도 어려운 나날들 중에, 때로는 그 핀트가 맞지 않아서, 획 돌아서면서 나에게 총을 쏘기도 했어요. 엄마는 답답하게, 무슨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계세요? 그건 알고 보면, 제 안의 어느 구석에도 웅크리고 있던 불안의 그림자였지요. 그런 자신에 대한 권태였지요. 그런 소리는...나도, 황당하고 서러워서 운 적도 있었지요. 잔소리는 듣고 자라지도 않았지만, 잔소리쟁이는 제일 싫다, 그러면서 자란 내가 웬 잔소리쟁이가 되었나 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러나, 그래 놓고도, 희미하고 애매한 시간을 잠시 지나면 결국 정호는 제가 먼저 일어나 우리가 원하던 길로 나가 주었지요.
참, 바보같은 개가 또 있었지요. 우리가 마지막으로 키웠던, 미국에 두고 온 그 검둥이 녀석. 그 침묵. 무엇이라고 말하나 마나, 침묵의 색깔을 뒤집어 쓴 녀석. 이런 저런, 귀국 후의 가족생활과 결혼준비를 위해 정호와 남편을 남겨 두고 내가 먼저 귀국할 때, 집을 나오면서 나는 뒤꼭지로만 그 녀석을 의식하면서 모른 척, 쳐다 보지 않았어요. 짐을 쌀 때부터 녀석은 우리가 갈 길, 제가 갈 길을 다 알고 있었으면서. 또 멀뚱히, 그 때의 정호처럼 나를 쳐다만 보는 것 같았어요... 그래도 그 매끄러운 털 한 번만, 쓰다듬어 주고 올 걸...돌아와서 전화로 어설픈 잔소리나 잔뜩 했지요. 그 녀석 비스켇을 다 먹엇는지. (내가 주던 비스켇이던 걸 이젠 잊었겠지. )밥은 뭐 해 먹노? 집에 있는 식품들 먼저 다 비우거라. 새먹이는 계속 주나? 새들은 오나?...아빠는? 괜히, 괜히...잔소리를 자꾸 하였지요.....
굳이 그렇게 무슨 말이라도 자꾸 하고 싶은 건, 결국,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 너무 적막해지고 외로워져서 그런 것 아닐까요? 왕왕, 괜히, 그냥 짖는 개처럼,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알아들을 것 같은 상대가 되었을 것 같아서? 자식을 낳고 키워 보면서 이제 부모 마음 알아 줄 것 같아서? 하여튼, 이제쯤엔,.저 아이들도 분명히, 말 그 자체의 의미야 있고 없고 간에, 차창 밖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게 하면서도 등 뒤에서 보듬고 있던 나의 마음이 되어서 태오에게 무엇인가를 속삭여 줄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이제는 저 예쁜 며느리가 무디었던 나의 바톤을 이어 받아서, 서로 또 다른 나가 되어, 좀더 반짝거리고 다부지게, 야무지게, 아침마다 저녁마다, 그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좀 진작부터 하고 살기를 바란답니다. 좀더 적극적으로, 귀기울이지 않으면 귀를 가까이 당겨 와서라도, 당신, 이 아이 생일이나 기억해요? 내 생일은? 어머니 생일은? 아버님한테 전화했어요? 울엄마한테는요...? 나는 오늘 피곤해요. 당신 쓸데없는 돈은 좀 쓰지 말아요, 제발. 그게 어떤 돈인데....더 높이, 좀더 높이 무등을 태우고 태오를 치켜 올려 줘 봐 줘요. 태오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그렇지, 그렇지요...아이, 신나지, 태오야... 오늘도 숲 속에서 태오를 머리 위에 올려 놓고 멀리 바라보게 하고 있는 사진을 보면서 그런 소리들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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