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풍경

해선녀 2004. 4. 20. 08:58

  

풍경은 세상의 소리에 가 닿고  세상의 소리가 제 안으로  타고 들어오도록  끝없는 물길을 낸다. 중생들이여.네 소리를 이제 낼 지어다.그리고 그 소리를 네 스스로 들어 볼 지어다. 네 안  내가 있음이오, 내 안에 네가 있음이니라. 풍경은 그리 말하며 처마끝에 매달려서도 끝내

추락은 없다....

 

남한산성에 망월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산중산들의 경계 저 너머에 있는 속세의 소리를 꽤 비교적 가까이에서 듣고 있는 절입니다. 폭설이 내린 어느 날, 미끄러지고 자빠지면서 그 소리를 타고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풍경이 매달려 있는 그 처마밑까지, 숨이 턱에 차서 다 올라가서 고개를 들었을 때, 하얀 눈을 얹고 있는 지붕 밑, 화려한 단청 밑에서 의연히 종을 흔들며 내게 들려 준 그 풍경의 소리는 바로, "너 자신을 알겠느나?", 그런 소리였습니다. 그건 소크라테스의 말인 줄만 알았는데...


깜짝 놀라 서 있을 때, 대웅전에서 염불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어요. 갑자기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을 정면으로 만날 자신이 없는 나는 대웅전을 피하여 아랫방으로 내려가 밤을 지내면서 밤새도록 그 풍경소리만 들었습니다. 아니, 풍경소리를 타고 올라오는 내 안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그 때, 먼저 가 있는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가기 직전에 여러가지로 마음이 복잡하였거든요. 아침에 일어나 스님이 그러시더군요. '도무지 나도 나를 모르겠다'고요. 알려고 할수록  더 모르겠으니, 그래서 이렇게 병이 난 것 같다고요...스님은 그 때 혈압이 높아져 있었습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그냥, 그 중 하나를 택하여 말하는 것일까요? 그 후, 몇 번의 전화로 스님은 아무 생각말고 가서 푹 쉬고 오라고 그러겼지요. 당신도 곧 입원할 것이라며..그 스님은 원래 내 육촌 올캐였습니다. 많은 사연 간직한 채, 스님이 되어서 책도 여러 권 내고, 여든의 나이에 기어이 콜럼비아 대학 박사학위까지 따낸 사진을 커다랗게 벽에 결어 두고, 많은 신도들의 정성을 모아 빈터밖에 없었던 옛절터에 웅장한 건물들과 적멸보궁, 그리고 이번엔 범종까지 마련한 분이지요.

 

월북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을 접어가며 종부로서의 삶을 버리고 스님의 길로 살아 온 세월, 이제는 북에서 육남매를 다시 낳고 살고 있다는 그 남편의 소식도 들려 오건만, 그렇지요. 무얼 자꾸 더 생각하겠습니까? 그래 보았자, 우리는 모두 자신의 꾀에 속는 거지요. 이제는, 아무 것도 모르겠노라고, 그래서, 발 가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그렇게 흘러가겠노라고, 이제는 돌아와 그렇게 말하던 스님...

 

요즈음, 나는 특별히 절에 간다는 생각은 없이, 그냥, 자신을 위해서, 마음을 모으기 위해서 절을 합니다. 어느 곳에 가서 수련을 받지도 않았지만, 주변 친지들의 권유로 그렇게 합니다. 마음이 맑아지고 몸도 가벼워지고, 분명히 절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 절이 어떤 것으로 다시 연결되어 갈 지는 나도 모릅니다. 가능하다면, 성경책을 다시 읽을 수 있어도 좋겠지요.. 안다고 한다면 그저, 내가 처한 곳에서 내 마음이 모아지느 곳으로 갈 것이라는 것뿐이지요...그것도 알기는 아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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