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는
질주하는 세월의 한길에서
잠시 버스를 내려
골목으로 걸어 가는 시간
마알갛게 제 빛을 되찾으며
홀로 서 있는 가로등 밑을 지나
젊은 시절 눈물나게 좋아했던
노래 하나 흘러 나오는
어느 창문 밑을 지나.
애초에,
삼백 예순 다섯 날씩
세월을 잘라 놓고
쉬면서 가자고 한 이는 누구였던가?
참, 고맙기도 하지.
골목을 되돌아 나오면
한길은 여전히 달려 가고
나는 하늘 아래
새로울 것도 하나 없는 글 쪼가리들을
또 새로운 듯이 끄적거리리라.
그래도, 너는,
일년 삼백 예순 닷새를
꼭 처음 무지개를 보는 아이처럼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살아 갈 수 있겠니?
네 묻는 마음이 곧 내 대답이지.
세모는
자문자답처럼
어깨를 어루만져 주는 저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골목을 다시 빠져 나가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