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태리엄마

해선녀 2006. 12. 7. 20:37

 

그녀로부터 전화를 받고 갑자기 니이체의 짜라투스트라...가 생각나고  R.스트라우스의 저 곡도 찾아 보고 싶어졌다. 거창하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라고 우선 제목부터 써 놓고 몇 줄 끄적거려 블로그에 올려 놓았다. 그러나, 그 전곡을 찾지 못한 채로 여칠을 감감... 마치, 저 짜라투스트라의 손가락이 내게 그렇게 명령이라도 한 듯이 '몰락과 소멸'의 뒤안길로 숨어 들어 갔다. 그 뒤안길에는,그 옛날, 할머니가 '착하지, 착하지, 네 길로 가거라...' 주문을 외우며 뒤안길로 유도하였던, 할머니댁 안방 천정에서 방 한가운데로 툭 떨어진 그 눙구렁이 한 마리가 또아리를 튼 채 생각에 잠겨 잇었다. 아,  여기가 바로 저 짜라투스트라의 동굴인가? 그래, 그 동굴에 뱀이 있다고 했지..잠잠잠...나는 그렇게 골골거리며 심한 감기에 빠져 들어 갔다...

 

그녀는 저 니이체와 쇼펜하우어를 그렇게도 좋아하다가, 나중엔 칼 막스에게 빠져 사는 남편을 하늘같이 우러러 보며 사는, 정말로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기만 한' 여인이다. 그녀는 남편이 책을 네 권이나 썻다는 말을 아마 스무 번도 더, 꼭 처음 하는 듯이 나에게 말했다. 그 날은 첫 마디에, '나, 대통령이 됐어. 하하하' 이랬다.  그래? 그럼, 나 자기 비서 시켜 줄래? 응,저 김일성이를 죽여야 해..그러게 말야....? 난 오빠도 올캐도 다 싫어.어릴 때 나를 그렇게 많이 때려서 내 눈이 이렇게 됐잖아...음, 요즘 오빠는 어디서 살아?  응, 우리 태리가 12월에 와. 피터도 데리고 온대.... 나 좋아서 입이 째졌어.., 그래? 정말 좋겠네...태리가 온다는 말도 벌써 열 번쯤은 했을 것이다. 너댓 번씩 같은 말을 반복해서 물어도 그녀는 내내 저렇게 동문서답이다.. 그래도 이제는 그 남편 래리가 전화번호를 눌려 주지 않아도 혼자서 저렇게 전화를 할 수 있게는 된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가...

 

그녀는 외견상으로는 거의 표가 나지는 앉지만 한 쪽 눈이 어릴 적부터 실명상태라고 했다. 오빠가 때렸단다. 그러나, 상이군인인 아버지 밑에서 가난하고 힘든 어린시절을 보낸 것에 비하면 그녀는 정말 맑은 심성을 가졌다.. 28년 전, 미국 플로리다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우리보다 먼저 와서 우리 큰 아이보다 두어 살 어린 태리라는 예쁜 딸을  키우며 사는 똘똘하고 야무진 여인이었다. 유학생이나 그 부인들은 미국인과 결혼해서 사는,학력이 좀 모자라 보이는 그녀를 '양공주' 출신인가 의심하면서 별로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 래리는 우리와 전공영역이 인접한 철학과에서 천재 소리를 듣는 백인 남자엿고 우리와 자주 만나 철학 이야기를 나누기도 좋아 했으므로 자연히 우리가 그래도 가장 가까이 지낸 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래리가 주말 저녁마다 즐기는 철학과 사람들과의 골치아픈 토론파티에는 나갈 수 없었고 주로 한인교회나 주말 나들이에 남편과 같이 와서 어울리곤 하였다. 중국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남편의 박사과정 장학금으로는 모자라는 생활비도 보태면서 알뜰살림을 하였다. 그녀는 불고기 잰 것이나 김치를 가지고 우리집으로 와서 수다라도 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그녀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가 없었던 것이, 나도,일하랴, 공부하랴, 집안일 하랴, 늘 여유가 없는 생활이었기 때문이다.귀국한 후 우리는 그녀가 정신이상이 되었으며 다른 주로 이사 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그 후 그 남편이 대학에 강의를 나간다면서, 그 때는 꽤 비쌌던 국제전화를 종종 걸어 오기도 하였다. 

 

70년대말에서 80년대 초 사이, 그 때 미국에서는 남미 쪽에서 막시즘의 물결이 밀려 들어 오고 있었고 플로리다는 그 입구 같은 위치여서 그 영항을 많이 받았었다. 나도 교육사회학 과목을 서너 개 들었는데 그 반식민주의적 의식화 교육에 대한 사회주의 이론들에 처음엔 흥미를 많이 느꼈으나 점점 그 이념적이고 선동적인 논조에 식상해져 버렸다. 그것을 비판하는 논쟁들 역시 교육의 본질적인 의미 그 자체를 분석하는 것과는 이미 멀리 떠나버린 반이데올로기적 이데올로기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세미나는 늘 격론장이 되거나 중구난방으로 표류하곤 하였다. 

 

철학과에서도 그런 논쟁에 열을 올리는 막시스트들이 있었고 래리는 그들과 어울렸던 것이다. 그는  골수 막시스트로 알려진 닥터 히지스라는 교수와 함께 책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천재라고 하지만 막시스트 논문만 쓰고 책을 내는 그가 미국 본토에서 자리를 잡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인지, 문화충격에 시달리며 점점 외토리가 되어 가는 마누라를 위해 그녀의 고향으로 돌아 와서 살게 해 주고 싶었는지, 그는 한국으로 와서 근 이십 년째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는 입만 열면 '양키, 양키 고 홈'을 외치면서, 미국인 아닌 미국인으로서의 반미주의지기 되어 갔다.

 

그러나, 한국에 온 후로 그녀의 병은  점점 더해갔다.. 더 심한  '양공주' 콤플렉스와 함께 이중의 문화충격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단 한 사람 자신을 애틋하게 돌보아 주던 친정엄마도 돌아 가신 후 그녀는 뇌졸증까지 앓게 되었다.  독일계 전형적인 치밀하고 논리적인 성격의 래리 러스틱은 아주 기본적인 일상영어만 겨우 하는 그녀에겐 너무 벅찬 스트레스였다. 무슨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밤새도록 붙들고 앉아서 따져들고 가르치려 드는 그 합리적 완벽주의자...그는 늘 진지하기만 하고,유모어와 여유와 낭만이  부족해 보였다. .그의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는데, 남편을 사별한 후 혼자 살면서 아들 보러 가끔 플로리다에 왔을 때 보면 얼굴에 웃음이 별로 없었다. 아들이 평화봉사단으로 가 있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데려 온 며느리를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래리는 잠시 루살로메 같은 여인에게 빠지기도 하였는지, 그녀가 울멱이며 그 둘이 키스하는 장면을 보았노라고 전화를 하기도 하더니, 곧 회복하였는지,  '난 좋아 죽겟어, 정말...우리 남편은 공부하고 나 밖에 몰라..' 또.이런 전화도 한다. 과연, 그는 이제 두 지녀들보다 더 아기가 되어 버린 저 마누라를 절 지켜 주며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함께 만나지는 못해도 집안에서는 편안하게, 모든 일은 도우미와 자신이 추스리며 사는 것이다. 그녀의 딸 태리도 이젠 미국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직장 다니면서 엄마가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한국에선 지진아에 말썽꾸러기였던 남동생 피터도 데려다가 대학에 보내고 있다고 한다.

 

'안 할 말로', 저 양키,, 미국인이 조강지처를 차 버리고 도망가지 않을까 우려도 했었다. 니이체도 말년에 정신착란에 걸렸다던가...나는 그가 그렇게 되어서라도,순수한 어린이로 돌아 가서 초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곤고한 낙타의 단계를 거치고, 용맹과 지헤의 사자의 단계를 거쳐, 마침내.도달한, '돌아 온 善'의 단계, 그렇다. 그 사자의 융성한 영혼이 스스로 밑바닥까지 몰락하였다가 서산에 졌던 해가 동쪽으로 다시 떠오르듯 떠오르는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영혼.. 그 잘난 지혜라는 자존심에 가득 찼던 마음을 다 쏟아내버리는 그런 댓가를 지불한 끝에, 마침내 무대 위의 영웅들에게 그리고 무대 아래의 자신에게도 박수를 치며 축복을 드릴 수 있게 된 영혼...래리도 어쩌면 저 어린애 같이 되어 버린 마누라를 통해 자신은 아직 도달하지 못한 니이체적인 초인의 경지를 대리경험이라도 하려고 하는 지도 모른다... 

 

'나, 좋아 죽겠어, 정말...나 좋아서 입이 째졌어....' 나는 그녀의 이 말이 갈수록 사랑스럽다. 나 역시, 적어도 아직은, 태리엄마처럼 미몽의 피안으로 돌아가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입산과 환속을 거듭하며 그 설파하고자 싶었던 모든 '절대적인 가치기준'들을 완전히 다 놓아 버리고,고독하게 산으로 돌아갔다가 순수한 어린이로 다시 태어난 짜라투스트라를 흉내낼 수도 없다. 적어도 아직은, 그저 엉거주춤, 그 어느 쪽으로도 건너 가지 못하고 이 세상의 시끄러운 축제의 문턱 안쪽에 머물며, 신은 죽었다고 해도,우리 모두 신이 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고 말하며...축제가 흘러가는대로, 꽹과리를 치는 역이든 휴지를 줍는 역이든, 역이 주어지는대로, 때로는 불평도 하며, 때로는 그런 자신을 반성도 하며, 그렇게 살아 갈 것이다.   

 

기다리던 첫눈은 아직 소식이 없다.  종일 흐리더니 관악산 봉우리는 이제 저녁안개 속에 묻히고 있다.  태리엄마에게 내가 먼저 전화라도 해주어야겠다.. 이태원에서 한남동으롱 이사했다고, 놀러 오라고 한 지가 벌서 언젠가?. 늘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하는 그녀의 전화가 부담스러워서 내가 전화를 빨리 끊으려 할 때마다 유순히, 응, 그래, 알았어요, 바이...하며 몇 마디도 못하고 전화기를 얼른 내려 놓던 그녀...그녀가 멀쩡하였을 땐 그녀를 따라 용산 미군부대 출입도 종종 하였으나 그것도 곧 시들해졌다. 그녀의 집에 가면 나는 늘 어정쩡했다. 래리와 책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녀에게 미안햇고 래리의 눈에 미제물건이나 쫓아 다니는 여자로 보이는 것도 싫었다. 그는 그 때 고액 영어과외를 소개해 주어도 미식민주의와 타혐하여 노동자들을 더 많이 착취하는 브루조아 한국인을 가르친다며 자조섞인 냉소를 하곤 했다. 그렇다고 그녀와 함께 하고 다닐 만한 다른 일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도 그 지독한 사회주의 이념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나와서 니이체나 쇼펜하우어가 아니더라도, 저 평화로운 진짜 니힐의 세계로 돌아가고 있으면 좋겠다. 그는 동양사상도 강의하면서 심취하기도 하였었다. 그 동안 형편도 좋아졌지만, 천진한 그녀를 보듬고 바라보며 그도 자신이 원래 가졌던 천성으로 이미 돌아 가지 않았을까? 젊은 시절, 오로지 순수한 마음으로 이 땅으로 찾아와 영어를 배우려는 열의에 가득 찬 아이들을 가르치며 된장과 김치 맛에 익숙해져 온 또 하나의 어린이가 아니었던가? 그녀도 그에게 영어를 배우던 순정한 학생 중의 하나였었다. 모든 것은 변해가고 흘러 간다. 그도 많이 변해 있을 것이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이제 좋은 수술법이 나온대. 울남편하고 울딸이 꼭 날 수술시켜 준대...나 좋아 죽겟어, 정말...' 그러는 그녀를 보면 나도 언젠가 다가올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다. 할머니댁 안방 천정에서 추락해서 뒤안길로 돌아가던 그 구렁이처럼,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내 잘난 모든 자존심을 다 땅에 내려 놓고 미망으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

 

나보다 더 먼저, 낙타의 고난을 겪었고 나보다 먼저 미국문화를 익혔고, 그 아름다운 플로리다를 포니 테일 머리를 날리며 달리던 그녀, 고등학교때 문예반장을 했다며 에브고 반듯한 글씨로 또박또박 쓴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보여 주던 그녀, 이제는 컴퓨터는 커녕, 펜을 손에 잡을 수도 없게 된 그녀...그녀에게도 나름대로 잘 나가던 그 사자의 지혜와 용기의 단계가 있었다.  나보다 먼저 그 단계로부터 몰락하여 갔다가 나보다 먼저, 천진스러운 어린이로 다시 태어난 그녀...그녀에게 전화하면  '나 좋아서 입이 째졌어, 정말...이제 곧 우리 태리가 온단 말이야,.." 또 그럴 것이다. 그녀는 아아도 언젠가 나와 같이 사 왔던 그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도 켜놓고 래리를 졸라서 아이들이 오면 줄 선물도 사 놓을 것이다. 태리가 돌아가고 나면 태리가 무엇을 사 왓고 피터도 알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무엇을 사 왔고...하며 또 입이 째졌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 옹알이 같은 그녀의 소리를 그래, 그래, 하며 자장가처럼 들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