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치명적인 운명같은 바람이라도, 빈 무대를 쓸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던가요? 그대의 슬픈 눈빛을 외면하고 마지막 카덴짜의 트릴을 길게 끌며..공연히 그런 생각이 든 건 아니었을 겁니다. 그녀가 무대 끝에서 소스라치듯 긴 머리채를 휘익 쓸어 올리며 나가는 걸 나도 분명히 보았어요. 절대긍정에서 절대부정으로? 아니면, 그 반대? 해석은 그대의 몫이예요. 그 많은 스코어들을 그녀는 왜 하필이면 그렇게 해석했던가도 우린 묻지 않잖아요...우린 모두 제 덫에 제가 갇혀서 흘러 가면서도 잠시 잠시, 뾰촘히 내다 보면서 휘익 스쳐가는 운명이란 놈을 어쩌지도 못하고 흘깃, 바라볼 뿐이 아닌지...
극장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 속에 끼어서 밀리듯 주차장으로 가는 긴 육교를 건너갈 때까지만 해도, 꼭 모두 왕창 얻어 맞아 잠시 얼이 빠진 유령들 같았어요. 흔들흔들...벗어지려는 저마다의 덫을 어쩌지도 못하고 덜그덕거리며...그러나,추위 탓만도 아니게, 주차장으로 내려선 사람들은 곧바로 정신을 추스리며 그 덫을 끌어당겨 다시 단단히 덮어쓰려는 듯, 몸을 움츠리며 시동을 걸었습니다. 빨리 달아나서 숨어야지. .촟촟촟...그리고는... 곧바로 겨울밤의 정적 속으로...유령들의 행방은 묘연해졌습니다...다시 잠잠잠...디미뉴엔도...그대도 그래져 가던가요? 이제 남은 건 다시 월요일부터의 행군을 위한 휴식에 대한 열망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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