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짓을 내 아이에게는 시키고 싶지 않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곧잘 생각에 잠기곤 한다. "영롱이고 무엇이고, 다 잊어버리고 조용히 살고 싶다." 줄기세포 진위 논란에 한창 휩싸여 있는 황교수도 한 때 그런 말을 했다고 하고, 당장, 내 며느리도, "천재라는 것이 판명된다면 몰라도, 태오에게 음악은 시키지 않을래요", 이런 말을 했다. 음악을 하면 취직이 힘들다나. 취직도 취직 나름이겠지만...아무튼, 모두, 오죽 힘들면 그런 소리를 했겠는가마는, 때로는 그런 말들이 단순히 푸념만이 아니게 들리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맞고 자부심을 가지고 임할 수 있는 일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무엇이든, 참으로 자신의 일 자체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면, 그건 매우 슬픈 일이다. 떡장사든 밥장사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일이라고 하면서도, 적어도 그 일은 누가 해도 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일이고 나는 그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결국,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이하는 이유를 상실하고 말 것이다.
수 년전에 꼭 그런 말을 했던 어느 정형외과 의사가 있었다. 그도, 정형외과 의사로는 꽤나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가 환자인 나에게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그 때, 나는 팔꿈치 골절로 그에게서 수술을 받았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개방골절(피부 밖으로 출혈이 있어서 외부로부터의 세균감염이 있을 수 있는)도 아닌 경우에 재발되는 확률은 일만 분의 일밖에 안되고, 그 재수술마저 또 그렇게 낫지 않는 경우는 다시 일만분의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두 달 반의 재수술 입원 끝에, 의사가 치료를 거의 '포기한' 상태에서 이유를 알 수도 없이 갑자기 나았다.. 그는 그 직전에 그런 말을 했다. 그런 환자를 만났을 때 정말 의사를 그만 두고 싶어지고 아들에게는 절대로 '의사짓 '은 말리고 싶어진다고.
그는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면서 말한 것은 아니고, 내가 혹시 의료사고로 문제를 일으킬까봐 심정적인 이해를 촉구하려고 그런 것은 더욱 아니게 보였다.그는 정말로 진지하게, '의사짓'에 대한 회의적인 심정을 토로하는 것 같았다. 수술 중에 혹시 있었을 바이러스 감염에 대비해서 이렇게 고단위 항생제를 계속 투여하는데도 낫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경우를 대할 때는 정말 절망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한계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고 의학기술 자체의 한계에 대한 절망이라고 해야 했지만, 그는 정말 두 손을 바짝 들겠다는 심정 같았다. 나도 도무지 할 말이 없었다.
(부연하자면, 나는 그 때, 왼팔의 뼈 두 개 중 보조 뼈의 관절이 그의 말대로, '분필가루처럼' 산산히 부서지는 분쇄골절이어서,쇠막대기로 버티며 이어 보았지만 관절이 이어지기는 커녕, 염증이 심해져서 수술 부위을 다 긁어내는 재수술 입원을 하고 고단위 (3차) 항생제인 반코 마이신을 두 달 간 투여했다, 그러나,갈수록 심한 부작용만 계속되어 정형외과 외에도 여러 다른 과를 동원하였지만 골수염을 거쳐 패혈증으로까지 간 상태였다. 그는 결국, 보통 퇴원 시에나 주는(적어도, 거의 다 나았을 때) 단위가 낮은 경구용 항생제라도 계속 먹도록 처방해 주었다.
내 몸은 그 때 이미 검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고 혀뿌리는 굳어져 혀가 입밖으로 쳐져 나오면서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온몸은 소보로 빵처럼 발진이 생기고 내시경 검사를 해보니 내장도 꼭 그래서 점막이 온통 떨어져 나왔다고 한다. 물 한 방울도 다 토해내고 음식 냄새도 맡을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그 약은 전혀 내 몸속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염증수치와 백혈구 수치도 더 높아져 가면서 4일이 지나고부터는 40도가 넘는 고열이 9일 동안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염증수치가 급강하면서 나는 살아나서 두 달 반만에 퇴원한 것이다.
그에 대하여, 그는 처음에는 '컴퓨터 오작동'일 것이라는 말을 하였었고, 나중에는 그 경구용 마이신은 그 병원에서 처음 써 보는 새로운 계열이어서 그것이 내 몸과, '말하기 좀 그렇지만', '소위 연대가 잘 맞았기 때문에' 그리 된 것일 수 있다는 궁색한 설명만 덧붙였다. 나는 다 살아난 마당에, 더 이상 내가 그 약을 토하기만 하였었다는 말을 너무 강조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사이에 미국의 학회에 나가 있었고 그 사실은 레지던트인 주치의와 간호사만 알고 있었다. 어떤 의사인들 그 이상의 설명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아직 의학이 다 설명하지 못하는 어떤 신비주의적인 메카니즘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결과였다.
또 덧붙이자면, 나는 지금도, 그 때 내가 어떻게 해서 살아나게 되었는가를 설명할 수가 없다. 나는 그 때 어떤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고 고열에 들떠서 아무런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는 지경에서 그 분이 적어 주고 간 기도문을 열심히 외우기도 하였는데, 혹시 그 때문이었던가, 그런 생각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배은망덕하고 있는 것이다.) 또는, 나는 면역력이 매우 약한 사람이므로, 고단위 항생제를 투여할수록 부작용만 더 나고 바이러스 감염도 물론, 이겨내지 못한다. 차라리, 부작용이나 없게 가만히 놔두면서 대체요법이나 자연치유력에 의존하는 것이 더 좋았던 거라는 생각도 하면서.. 나는 그 때 정형외과 외에도 너댓 과의 도움을 받았었지만 아무 과도 도움이 못되었다...
살아갈수록, 완벽하게 파악하고 확신하고 조절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모든 합리적인 설명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 더구나, 의사인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그 일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이해가 간다. 오죽했으면, 먹지도 못했던 그 약과 '연대가 잘 맞아서'라고 했을까...그도 젊엇을 땐 그의 기술과 지식에 대한 확신과 패기에 가득 찼을 것이다. 나는 결국 어찌 되었거나 살아 났지만, 그런 식으로 이유를 알 수 없이 죽어간 사람들 앞에서는 오죽 했을까...충분히, 그 일로부터 도암가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법관이나 변호사도 자주 그런 회의를 느낄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내가 어떻게 인간의 모든 상황을 다 투명하게 밝혀 내어서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판정을 함부로 내리겠는가? 신도 아닌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의사가, 그가 가진 모든 과학적 합리성 안에서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어떤 기전에 관해서는 겸허히 받아들이더라도,결국은 그 직업의 가치 자체에 대한 회의만은 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의술을 과신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반대로, 의술의 한계가 의술을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지 않는가. 한계없는 일이 어디 있는가? 황교수도, 과학행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모든 인간적인 변인들까지, 어떻게 다 알겠는가?. 그러나, 그가 (아니면 누구라도), 그 일을 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한, 그는 그 일을 더 겸허해진 마음오로 계속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행위의 타당성을 증명하려고 애쓰면서도, 제대로 수행했는지 늘 반성하면서 그 과정과 절차 상의 오류와 실수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명백히 인정하고 시정해 가면서 살아 가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고는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고 할 수가 없다. 그 외에 우리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신이 아닌 이상, 우리는 우리들이 처한 모든 상황을 늘 다 알 수가 없다. 나는 무슨 일을 하는 그 누구든,,굶지만 않고 살 수 있다면 자신이 하는 일을 그렇게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좋다. '배운 게 도적질'이라고 했던가, '연대가 잘 맞아서'라는 말 이상으로 표현이 좀 그렇지만, 그저, 자신이 신념을 가지고 해 온 일을 끝없이 실수하며, 고치며, 그러나, 다시 소망하며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