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낡아가는 고엽 몇 이파리, 저 아파트 어느 창문의 누구와 마지막 눈을 맞추다 떨어져 갈까요? 외로워라. 허무하여라. 저 웅얼거리는 소리, 누가 마지막으로 들어 줄까요? 인연이 그것밖에 아니었어요. 새순이 돋을 때부터 서로를 바라 보았다고 내내 손잡고 어루만지며 말한들, 이제 와서 무엇 하겠어요. 가야 할 길 가는 거지요. 우리 다 정해진 길대로. 조금 후, 아홉 시면, '결전의 시간'이랍니다. 우리 윗동네에 조그만 아파트가 들어서는데, 아아, 그 헌 연립주택들 중에 누가 살았는지 아세요? 미친 여자랍니다. 아침마다 무어라고 무어라고 알아듣지 못할 욕설을 듣지도 않는 어떤 사람에게 퍼부으며 우리집 앞을 지나가던 그녀.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오늘은 나가서 보려고 해요. 그녀의 남편과 건축업자들이 빳빳한 새돈 백만원 뭉치를 들고 끝까지 혼자 남아 버티고 있는 그녀를 마지막으로 달래어 본다는 시간. 그녀를 '내보내기 위한 마지막 작전' 그 빈 동네엔 지금 그 집들 만큼이나 오래된 감나무와 라일락,꽃사과, 석류나무들이 그녀처럼 마당을 지키고 있지요. 언젠가 썼던 '폐허에 비'가 생각납니다. 아, 그 나무 잎사귀들에 또 그렇게 처연한 비가 내리고 있겠군요. 그녀가 끝까지 버티면 몇 사람의 장정들이 그녀를 '들어낸다'네요. 그녀는 혼자서만 쓰라고 찔러 줄 것이라는 그 돈을 받고 과연, 좋아라하고 일어서 나올까요? 그 돈을 저 나뭇잎들처럼 공중에 내던져 휘날리게 하면서 헛웃음을 웃고 욕설을 퍼부을까요? 이미 돈을 다 받아챙긴 이혼한 그 남편과 아들에게도? 인연이 아직 다한 것은 아닌지, 그녀를 '시설'로 보내는 서류에 그 아들은 차마 도장을 찍지 못하였답니다. '죽어서나 나올 수 있는' 그런 곳이라나요. 차마, 헤어지지 못하여 매달리는 인연들 소리를 지를 때는 눈에서 살기가 돋는다는 그녀, 한 번씩 병원에 다녀 오고 나면 그렇게 유순할 수 없는 미소를 띄운다는 그녀, 오랜 동안 그녀의 괴성을 견뎌 온 이웃사람들은 무슨 마음으로 그녀에게 무슨 말들을 할까요? 잘못하다가는 그녀가 '해꼬지'라도 할지 모른다며 무서워 하는 사람도 있다네요. 나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고, 그녀와 처음이자 마지막 눈을 맞추게 될 수도 있는 그 현장으로 지금 가렵니다. 나도 그녀처럼 한 장, 흩날리는 낙엽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녀의 눈에 사진찍혀 주렵니다. 그녀에겐 그녀를 둘러 싼 모두가 다 그렇게만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03/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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