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고양이, 그대들에겐 새벽이 딱이구나. 흐려졌던 낮 동안의 의식이 비로소 빤히 눈뜨기 시작하는 이 시간, 나는 새벽 들판내 의식의 한가운데를 찾아그대들을 따라 나선다. 검은 망토를 입고 찬 이슬 풀섶 헤치며 어둠 속을 지나가는 그대들이여 대낮의 밝은 조명 아래에서는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초라하기만 하였지. 관중이 사라진 텅 빈 무대 의식의 한복판에 딱 버티고 서서 두 눈에 대낮보다 더 밝은 불을 켜고 오래 오래 객석을 응시하는 연습, 오페라의 유령들일세.무대 한 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싸늘한 밤공기를 가르며 괴성을 지르면서 질주할 때는 검은 망토 자락이 섬광처럼 빛나네. 무대 한가운데를 지나 유유히 흐린 내 망막의 변두리, 새벽의 끝으로 가는 그대들, 그제서야 나도, 비루먹은 강아지의 눈을 비비면서 그대들의 뒤를 따르기 시작한다. 야아웅, 야웅. 야웅. 야아아아~아웅. 참, 이상도 하여라. 광대의 꿈인가, 착각인가? 낮에는 보이지 않았던 소품들이 현란한 몸짓으로 일어나 춤을 추네. 허옇게 밝아 오는 아침무대 한가운데의 조명이 꺼지면서투명하던 의식이 빠져나가고 의식의 그림자들만 어지러운 위로상념의 흑점들을 감춘 빛나는 태양이내 여린 망막을 쏘며 떠오른다.
0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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