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비 오는 날, 작은 새

해선녀 2004. 1. 29. 05:34



 
비가 오는데. 쓸쓸히 버려진 소금창고를 들여다 보며
소리를 질러 본다. 외롭다, 외롭다, 외롭다아....
돌아서 날아가는데 눈물이 핑 돈다. 작은 가슴이
에려 온다. 내내 창고 안을 맴돌고 있을 지 모를
그 소리가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 괜히 그랬지.
 
아직도 비가 오네. 바람도 없이 수직으로 제 자리에
연필처럼 꽂히네. 외롭다, 외롭다, 외롭다...
작은 메모지에 한 가득 촘촘히 적어 놓고 떠나던
그대의 발소리는 참 적막하였지.
 
깃털이 다 젖은 채 나무 가지에 앉는다.
젖은 나무가지가 미련의 이슬을 떨어트린다.
소매끝에서 이슬처럼 반짝이던 그대의 카프스 단추들은
참 쓸쓸한 황홀이었지.
비가 그쳤네. 보이지도 않는 작은 물방울들이
다투어 달아난다. 해맑은 푸른 공기 속으로
날아가려고 날아가보려고 물방을 털며 깃털을 고른다.
어디로 갈까? 빈 소금창고 속의 그 메아리는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벽에 머리를 부딪치다 부딪치다
오래된 소금버캐 속으로 떨어져 내려
옇게 굳어가고 있을까?
 
어둠 속에서 허옇게 빛을 발하던 수 천개의
아기부처들이 줄지어 앉아있는 불당 안 어디에고
내 자리는 없었다. 존재의 막다른 골목, 함정 같이
아구리를 벌리던 그 창고 앞엔 다시 가고 싶지 않아.
무거운 어깨를 추스리며 절집 마당을 돌아나오던
그대의 모습 참 경이로웠지.
 
환청인가, 건너편 안개 낀 숲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목탁 소리 그 숲에선
그래도 다시 절망같은 희망이 피어 오르네.
 
 
 
03/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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