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폐허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하던 말

해선녀 2004. 1. 28. 06:26

 

이 폐허에, 당신은무엇을 건지려고 오셨습니까?
여기서는 절망밖에 주워갈 것이 없는데요. 
다른 것을 건지신다면, 그건 원래 당신의 것이었지요.
절망도 아름답다고 하였더니.누군가는,
절망이어서 아름답다 하더군요.
그렇지요.절망은 결국, 희망으로 가는 첫계단이니까요.
  
당신도 믿으시는지요? 육체의 눈이 어두워지면 
영혼의 눈이 맑아진다는 것을? 
우리의 몸은 가도 무엇인가가 남는다면 그것은 
원래 우리가 온 곳, 당신 것도 내 것도 아닌 
영원 자체의 것이라는 것을?
  
보세요. 푸른색 희망의 빛 한 줄기가 
지금 여기 폐허를 떠도는 붉은 라면봉지 속으로 내려가 갇혀 있어요. 
당신도 보고 계시는지요? 
람에 까닥이면서 날아가려는 저 붉은 봉지가 
번쩍이며 내쏘고 있는 저 절망의 빛이라도?
 
아름다운 당신, 푸르던 당신의 이파리들은
그 절망의 빛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던 희망의 빛이었지요.  
아, 맞아요. 부질없기만 한 것 같던 
그 나부낌들 하나하나가,결국은 다 
영원이 이 세상을 비추는 것을 도운 것이었다고 말하는 당신
널브러진 폐허 속에서 쓸쓸히 웃으시는 당신
  
그래요. 
하지만, 당신이 이 폐허에서 무엇을 주워 가든 간에, 
나는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서
절망의 노래만 부르고 있겠습니다.
저 번쩍이는 빛 속에 갇힌 빛을 주워 가고 안 가고는 
순전히 당신의 뜻이니까요.
 
 
 
0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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