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靈性)은 질량불변이다. 쿨와이즈님이 '영장'이라는 글에서, 오늘날엔, 영물이라는 호랑이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그 영성이 사라지면서 자연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으며, 인간은 종내, 바이러스같은 미물에도 멸망할 수 있다고 한 데 대해 나는 그렇게 밑도 끝도 없는 댓글을 썼었다. 과연, 그 말은 맞는 말일까?
그것은, 영성이라는 것도,우리의 신체와 마찬가지로, 이 우주에 운행되고 있는 자연의 섭리 안에서 우리가 나눠 받은 것이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한 개인의 영성이 잠시 쭈그러져 보일 때도, 그 기운이 어디 갔겠느냐,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 이 우주 속에 스며들어 여전히 내재하고 있는 것, 그것은 원래, 우주 속에 편(遍)재하는 것. 풍선이 눌리면 그 기운이 한쪽으로 몰리듯, 언제 어디선가, 누구에게선가, 또 어떤 계기로 그 기운이 뭉쳐지면 소금이 석출되듯 어떤 형태로 가시화되기도 했다가, 또 어떤 다른 기운과 만나면 다시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대충, 이런 생각을 말하고 싶어서였다.
저 聖靈이라는 종교적인 개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그것을 어느 특정 개인이나 장소에 편(偏)재하는 초자연적이거나 계시적인 능력으로보다는,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모든 존재의 모든 지적, 정서적인 능력들 중에서도 그 요체가 되는 것으로 보겠다는 거다.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이 온갖 매체를 통하여 단순히, 정보적인 지식들만 공유하는 것 같지만, 그 과정에서도, 영성들은 은밀하게라도 서로 확인되고 공유되면서,창의적으로 촉발되고 발전된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저 특정개인이나 장소에 사유화되는 신비적인 영성보다 소박한 개념으로 격하된 것이라고 하겠지만, 우주에 遍在하는(ubiquitous, omhipresent),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범우주적인 지성과 감성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더 리얼하며. 개인끼리의 집중과 관심에 따라, 서로 관계하고 정련되고 확대발전될 수 있는, 더 합리적이고 설명가능한 영성이다. 실제로, 복음주의를 버린 자유주의자들은 영성을 이와 비슷하게 보는 것 같아서 공감한다.
그러고 보면, 영성이 있는 사람이란, 어떤 의미로든지, 영감이 많은(inspirational) 사람인 동시에, 그 영감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발전시켜 나가는 능력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사족같지만, 영감을 '공유한다'고 하면, 언뜻, 요즘 문제되고 있는 표절이 연상될 수도 있겠지만, 문자 그대로, 표절은 영감도 없이 따라만 하는 일이 아닌가? 그것은 진정한 공유가 아니다. 공유는 전염되거나 모방만 하는, 수동적, 혹은, 소극적인 능력이 아니라,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집중하고 관여하고 자기답게 발전시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영웅적인 '지도자'의 휘하에서 그의 지향대로 따라만 가는 것으로 삶의 현장을 지켰던 원시적 군집행위와 그 리더쉽을 넘어서서, 각자 스스로 세상을 내다 보는 호랑이의 빛나는 눈으로 공감하며 살아 가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나를 휘두르는 어떤 호랑이도 가라. 껍데기는 가라. 나는 오직 나, 나 자신으로서 이 세상을 운영하며 공유할 뿐이다.
한 개인 또는 사회가 그런 영성을 얼마나 나눠 가졌고 얼마나 잘 벼리면서 살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이 우주에 영성이 얼마나 편(遍)재하느냐 하는 문제와는 물론, 다르다. 우주의 영성의 '질량'은 사실, 우리가 그 궁극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망도 없어 보이게, 거기 그렇게 있을(自-然) 뿐, 우리 인간이 그것을 감히, 특정질량으로 규정해서 불변이니 뭐니를 말할 수도 없다. 문제는, 우리가 보기에, 그 획득된 능력이 너무 초라해 보일 때, 우리는 우리 안에서 그 능력을 되살리려 하기 전에, 외부의 어떤 신적인, 혹은 영웅적인 존재가 나타나 우리를 구원해 주기를 여전히 바란다는 것이다. 저 우주로부터 특별한 영성을 받은 전설적인 영웅으로 그를 우상화하면서, 그런 존재와는 감히, 소통할 수도 없고 오직, 계시받고 숭배할 일만 남았다는 듯이.
우리 안에 영감이 있다는 인식이야말로, 구원의 첫 빛이다. 이 대명천지에, '배신'과 '심판'을 말하고,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다니, 자신의 영성은 돌보지 않고, 그럴 듯해 보이는 남의 영성을 자기 것인 양, 표절하다니...무엇이 우리가 가야 할 진짜 길인가를 뻔히 내다보는 호랑이의 눈을 가진 우리들은 그 숭배의 제전에서 강시처럼 통통 튀며 앞으로 앞으로만 내달으며 주문만 따라 외우는 타인들, 혹은 또 다른 자신들을 바라 보며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지금은 그 억압과 회피로부터 벗어나, 더 이상, 자신의 영혼을 망각의 저편에 묻어 두고 사는 삶을 그만 두어야 할 때, 우리 스스로, 우리의 갈 길을 판단하고 밀고 나갈 때, 그럴 때가 아니었던지? 아무튼, 그래도, 저 영감있어 보이는 유승민과, 적어도 지금은, 그 영감이 좀 찌그러져 있어 보이는 신경숙이, 우리들로 하여금, 그런 영성의 시대를 이제, 좀더 확신을 가지고 밀고 가야 한다는 다짐을 새로이할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맙다. 우선, 아무리, 누가 옆에서, 너는 이거야, 저거야, 나를 규정하려 들어도, 나는 나, 나의 생각과 느낌이 따로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영성이 있음을 알자. 존재를 에너지, 혹은 빛으로 보는 물리학적 이론까지는 접어 두고라도,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나를 판가름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팔아 먹지 말자. 나는 나를 포함한 누구에게도 팔릴 수 없는 영혼의 빛을 가졌음을 새삼 기뻐하자...
요즘, 우리 손주 다나의 노래 중에, '판다, 판다, 판다, 판다를 판다? 판다는 팔 수가 없어요. 판다는 물건이 아니거든요.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요...' 이런 노래가 있다. 하물며, 재주나 부리는 곰도 아닌 인간인 나를, 그것도 나 스스로, 어디엔가 팔아 먹는 일, 그런 일은 진짜, 있을 수가 없어요다. 우리를 제대로 표현할 언어능력이 있고 없고 간에, 우리는 모두, 누구에게도 팔려 갈 수 없는, 영혼의 능력, 영감을 가진 시적인 존재들이다. 내 시는 내가 읊고, 네 시는 네가 읊지만, 우리 함께 나누자. 험하고 답답한 때일수록, 자신에게서나 사회에서나, 공감의 리더쉽을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