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밤마다 저 깊은 적막과 망각으로부터 가까스로 건져 올린 말(言)의 벽돌들로 집을 짓는다. 그 비죽비죽한, 리얼(Real)을 가장한 비유들로, 난공불락의 성을 쌓는다. 하지만, 새벽에 눈을 뜨고 다시 바라 보면, 그 엉성한 성벽 여기 저기에 비져 나와 있는 벽돌들, 그 틈새로 새어 나오는 샛바람이라니, 그대는 취한처럼 흔들거리며 다시 그 성벽에 달라 붙는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대가 원하는 시의 목소리는 점점 더 깊고 어두운 땅속으로 가라앉아만 간다. 그대는 그 벽돌들을 내려 놓는다. 그대는 그것들이 원래 속했던 땅속으로 내려 가지도 못한 채, 땅바닥 위를 뒹굴고 있는 것을 내려다 보다가, 마침내, 허탈해 하며 바닥에 질펀히 주저앉는다.
어쩌랴. 그런데도, 그대는 못말리는 시인인 것을. 시의 목소리를, 목도 귀도 아닌, 심장으로 듣고 심장으로 말하고 싶은 사람인 것을. 새벽잠 깨어나면, 새벽안개 속에서 아련히 들려 올 것만 같은 시의 목소리에 다시, 또 다시, 집중하는 그대여, 오늘도, 그대는 신기루처럼 떠오르는 저 마법의 성, 그 종루 높은 곳을 향해, 거칠은 벽돌들을 힘겹게 지고 기억과 망각 사이, 비탈진 그 어깨를 아슬아슬, 비틀비틀 걸어 올라 간다. 저 경복궁의 어느 지붕위의 어처구니들보다 더 신들린 걸음새로, 그 마법의 종을 치려는 것인지, 종소리를 더 잘 들으려는 것인지, 알 수도 없이, 지금쯤은 그 종소리 속에서 그대가 원해 온 시의 목소리를 찾았는지 말았는지, 알 수도 없이, 오로지, 제 심장이 이끄는대로 이끌리는대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처럼 아무 도움도 지지도 없이,혼자 오르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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