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돌아가지요. 우리 다 돌아가고 있잖아요. 다만, 어디쯤에서 돌아가는가, 그것만 문제로 남았을 뿐이예요... 다 돌아가되, 얼마나 철이 들어서, 그 모든 길을 無化하면서 되돌아 가느냐, 그것 말이지요. 그 삶이 밥장사였든, 떡장사였든 간에, 그 삶을 얼마나 '철들어서' 살고 있었는가에 따라, 그 돌아감도 그만큼 '철들어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
나는 아들 둘을 키우면서 두 녀석들한테 배운 제일 큰 교훈 두 가지가 있습니다. 큰 녀석이 다섯 살 때, 여기 미국에 살 때 얘긴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 사람들은 항상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거야."라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지 않았겠어요. 저는 그 말에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녀석 말이, 잠을 자고 있을 때라도, 사람은 누구든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 이 녀석이 정말 나를 가르치는구나. 그렇지, 겉으로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사람은 다. ..그 애의 말뜻이 무엇이었던 간에, 그걸 사람은 다 자기 마음이 ‘생긴대로’ 무엇을 하고 지 자신을 계속 만들어 가고 있다는 그런 말이라고 받아들였지요.
녀석은 그 때 무지한 개구쟁이 골목대장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철든' 생각을 했던 건지...작은 녀석도 그 나이쯤이었을 때, 사람들이 집요하게 “너 커서 무엇이 될래? ”라고 물으면, “나, 아무 것도 안될래.” 이랬습니다. 그 말은 지금까지 그 아이에 대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로 남아 있는데,. 군대에 가 있는 지금은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아직도, 복학해서 영문과를 졸업한다는 것 외엔 앞으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지, 아무 것도 정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나는 난데, 왜 무엇이 되라고 자꾸 그러는 거야....’ 그 아이는 대학을 갈 때부터도 '엄마, 나 대학은 엄마 아빠 얼굴 봐서 가 주는 거야. 그 이상으로, 공부하라, 유학 가라, 그런 소리 절대 하지 마요. ) 이랫답니다....ㅎ
두 아이들이 어른들이 주는 스트레스를 거부하고 독립선언을 한 것이고 나는 그 때, 그들에게 은연 중에라도 커서 무엇인가가 되기를 채근하지 않았나 싶어서 자책감을 느꼇습니다.. '교육학'을 했다는 사람이 아이들에게 아무런 '비젼'을 주지 못하고 저 스스로도 아무 것도 못되고 한 세상 살다 갈 판에, 그저, 변명밖에 안되는 그런 소리만 하려는가? 그리 생각하더니, 결국 그리 되었지.. 이런 소리도 들리는 듯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대학교 때 이야기이지만,,나는 그 때도, 어느 다방 구석에 쳐박혀서 그런 연극을 써 보기도 하였지요. 그것은, 무대를 중심으로 사방에 여러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빠져서 열심히 떠들면서 일을 하고 있는 사이를 혼자 떠돌면서 대화이자, 사실은 독백을 하고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였습니다. 주인공은 결국, 자신이 그 어느 일에서도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로지 유일한 자신을 찾아 떠난다는,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한 모노 드라마입니다.
나는 그 때, Thornton Wilder의 희곡에 심취해 있었지요. Wilder는 영혼의 문제를 많이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불교적인 윤회의 사상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누구에게 보여 준 적도 없고 물론 공연된 적도 없었던, 막연하게, Wilder의 작품을 흉내내면서 그 영혼 한 자락처럼 떠돌기를 좋아했던 그 때의 그 생각이 지금까지 내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왜 그럴까요....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결국 나는 그렇게 살기를은근히 종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답니다. 그걸 굳이 말로 하자면, 진부한 것이지만, 이런 것이겠지요. '무엇을 하든지, 일에 빠져서 살되, 그 일의 노예는 되지 말아라. 밥벌이 정도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진실로 그 일을 사랑하면서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일을 잘 하는 사람을 존경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을 찾고 영혼을 담아야 한다....'
요즈음, 이 곳 조지아 주에서 어느 화장장에서 삼백 구가 넘는 시신을 화장비를 받고 야산과 호수에 묻어버린 사건, 그것으로 많이 시끄럽습니다.. 그 유족들이 받아서 보관하고 있었던 재가 알고 보니 시맨트와 자갈 가루였다고 합니다. 유족들은 망자들의 평안을 위해 다시 영원한 안식처에 유골을 재장할 생각들을 하면서 슬픔에 차 있습니다. 저 몰염치한 화장장 주인에 의해 모차르트보다도 더 험한 흙 속에 화장도 되지 않은 채로 내던져진 많은 영혼들,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기가 막힙니다. 아, 그렇게 버려진 몸을 버리고 그 영혼들은 어디로 돌아갔을까요?
한동안 고갱의 그림,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컴퓨터의 배경화면으로 올려놓았었지요. 싸이버 칼럼들과 까페들 덕분에, 요즘 나는 마치, 내가 그것을 믿거나, 말거나, 그 윤회의 고리를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반복하면서 살고 있는 듯이 느껴진답니다. 오늘은 청초한 꽃을 피워 올렸다가 내일은 다시 피카소의 늙은 기타리스트가 되었다가... 그렇게 온갖 삶들을 빌려다가 며칠 동안 올려놓고, 그 삶들을 살아보는 것, 아닌게 아니라, 글이든, 그림이든, 싸이버를 제대로 이용만 한다면, 현실에서보다 조금도 덜할 것이 없이 리얼하고 자유롭게, 그리고 더 진실하게 자신을 둘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지요. 적어도, 언제 어디서나,자신이 원하는 만큼 멈춰 서서, 혹은, 자리를 훌쩍 떠나면서,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들여다 볼 수 있으므로, 타인이 만든 상황논리나 시간적 공간적 순서에 본의 아니게 내 영혼이 갇히고 묶이고 휩쓸려 가는 일은 없으니까요. .
'내가 이 세상을 마지막 떠나는 시간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잇게 될까?’그 시간적인 순서는, 반드시 내가 원하는 종국적인 마음의 순서, 논리적인 순서대로는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지요. 떠나는 마지막 시간까지, 치매의 무서운 늪을 피해갈 수 있다는 그런 장담을 누가 할 수 있을까요..천 상병 시인이 만나는 친구마다 "나 돈 좀 줘." 그랬다던가, 그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런 천진한 모습도 아니고, 나는 어느 병상에 누워, 치매의 늪을 허우적거리면서 그 영화 아마데우스에서의 살리에리처럼 마음의 고통에 울부짖는 모습으로 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두렵기도 합니다. 어쩌겠어요.... 그리 된다면, 그야, 어쩌겠어요....
요즘은 교회에 가서, 이제 그 '마음의 순서'에 줄을 서보곤 합니다. 나도 하나님의 눈 안에서 세상을 보는 그 종국적인 마음의 순서에 도달하게 해달라는, 염원을 해봅니다. '교만한 말과 생각으로만 머물지 않고 그렇게 순서대로 이루어지이다', 두 손 모으고 기도하지요. 여기는 절은 없고 많은 한인들이 한인교회에 모입니다. 오랜 이민생활에서 다져진 그들의 성실하고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사는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렇게, 가장 소박한, 모습으로 그들은 오래 전부터, 그 마음의 마지막 순서에 이미 들어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젊은 나이에 처음부터 그 길에 들어선 아이들도 있어 보입니다. 매우 존경스럽습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간에, 그 맑고 겸허한 삶의 자세가 거의 체질처럼 보입니다.내가 이 나이까지 살아서 도달하지 못한 그런 모습을 그 젊은이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미 다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더 이상 잠시 빌려 온 것이 아니게요 그런 그들을 봎 때, 나는 다만 부끄럽습니다....
020308
신시내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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