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네 집

막내의 미국동부 여행기 3 / 보스톤 가는 길

해선녀 2005. 9. 15. 18:21

 

 

셋째 날이 밝기 전, 둘째 날 밤에 모텔을 찾아 들어가기 전, 새벽 1시 경에 있었던 일이다. 그 인적이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국도를 달리는 중,(선한이가 운전하고 있었다.) 뒤에 차가 한대 따라 붙었다. 꼬불꼬불한 산길이고 속도제한은 35마일이었는데, 뒤에 정체불명의 차가 따라오자 선한이는 속도를 높여 약 45-50마일 쯤으로 달렸다. 속도가 좀 빠르다 싶어 불안하던 찰나에, 갑자기 뒤의 차가 환한 불빛을 내며, 싸이렌 소리가 들렸다. 경찰이었다. 큰일이었다. 일단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백미러를 보니 뒷차의 상황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미국 경찰들은 야간에 앞차를 세우는 경우, 앞 차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게끔 강한 서치라이트를 비춘다. 앞 차에서는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그러지 않으면, 앞 차에 탄 사람이 경찰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 밤중에 그런 곳에서 차를 세우는 경찰도 무서웠으리라.)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먼저, 경찰이 차량의 번호를 확인하고, 조회를 한다.) 우리는 답답한 마음에 최대한 순진한 표정(“우리는 죄 없어요라고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ㅋㅋ)으로 차창을 통해 뒤를 흘끗흘끗 내다보며 기다렸다. 곧 경찰 한명이 운전석 쪽으로 다가왔고, 우리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Policeman : Where are you going?

Sun : We’re going to Boston.

P : The speed limit is 35. You’re on almost 50, sir.

Sun : 뭐라뭐라 했으나, 잘 기억이 안난다.(동문서답이었다. ㅡㅡ;;)

P : I mean, you were too fast! You need to slow down.

Sun : OK. Slow down!! We’ll slow down. OKOK.

P : May I look at your I.D. and car registration?

 

우리의 신분증을 보여주고, 내가 자동차 등록증을 찾는 동안 선한과 경찰의 대화가 이어졌다.

 

P : Are you going to Boston? I don’t understand why you’re on this road. Why don’t you take on the Highway?(그 고속도로는 유료다.ㅡㅡ;;) There’s a ramp onto the highway to Boston near here. Do you guys have any friend in Boston?

Sun : Yes! We are friends!(자신있는 목소리로 동문서답ㅋㅋㅋ)

 

말이 안통한다는 걸 깨달은 경찰관은 그냥 조심해서 가라는 말과 함께 우리를 보내줬다. ㅋㅋㅋ 일부러 그런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선한이의 어리버리 작전으로 우리는 위기를 넘겼다. ㅎㅎ 사실, 이때 말고도 선한이가 운전하는 도중에만 우리는 무려 세번이나 경찰을 마주했다. 그때마다 운전석의 선한이는 너무나도 순수한 표정을 지었고, 모든 경찰관이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친절하게 보내주었다. ㅡㅡ;;(참고로, 선한이의 면허증은 필기시험만 통과한 임시면허다. 오하이오주에서 임시면허자는 옆 좌석에 차주이자 면허 소지자가 타고 있으면 운전을 할 수가 있다.) 물론 선한이의 운전실력은 프로다. 그리고 경찰관을 마주했을 때 대응책도 프로인 것 같다. ㅋㅋㅋ

 

그 위기를 넘기고 찾아 들어간 모텔에서 잠을 잔 뒤, 셋째 날을 맞이했다. 장거리 운전은 거의 처음 해보는 나는 날마다 나의 단일 최장시간 운전 기록 및 최장거리 운전 기록을 갈아치웠다. 처음으로 운전이 힘든 노동이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기회였다. 보스턴으로 가는 셋째 날도 운전 시간이 꽤 길었다. 밤 아홉시 경에 보스턴에 진입할 수 있었다. 막상 도착은 했는데 이미 해가 진 후라 막막했다. 일단은 바닷가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이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지도상에서 Lynn Beach라는 곳을 발견하고 찾아갔다. 한국 같으면 여름에는 밤이어도 해수욕장에 사람들이 가득하지만, 이 곳은 그렇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했다. 게다가 팔월 말이라 사실 피서철도 한풀 꺾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맥주를 살 수 조차 없는 건 좀 심했다. 구멍가게에 갔는데, 이놈의 도시는 밤 8시부터는 술을 안판다는 것이다. 오하이오 주에서 11시부터 안파는 것은 이해했지만, 8시는 좀 심했다.ㅡㅡ 선한 왈, “이것이 아이비 리그의 경쟁력이군.” 우리는 맥이 빠진 채 그래도 난생 처음 대서양 한번 보자는 집념으로 길을 몇번을 잘못들어 헤매면서도 밤 12시가 거의 다 되어 Lynn 해변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맥주는 없이 통닭만 사서 허기만 달랬다.

 

그러던 와중에 한국에 있는 한 대학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생일 축하한다고. 그러고 보니 한국시간은 8 28, 내 생일이었고, 여기도 막 28일이 되어 있었다. 전화를 받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내가 태어난 나라에서 맞는 첫번째 생일인 셈이었다. ㅎ 동시에 집이 그리워지기도 하고(부모님이 계신 한국 집과 내가 사는 미국 집 둘 다), 그리고 여행의 설레임과 흥분으로 보냈던 이틀째까지와는 좀 다른 기분이 들었다. 피로감도 몰려오고 해서 그대로 그날은 마감하기로 했다. 모텔까지 찾아가는 시간과 노력과 예산 절감 차원에서 우리는 바닷가 근처의 안전해 보이는(돈 좀 있는 사람들이 사람들이 살 것 같은 좋은 동네) 곳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