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어느 4계 리허설에서

해선녀 2017. 12. 3. 11:33



그건, 리허설이 아니었어.

바로, 내 삶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보여 주려고

나를 강하게 임팩트하고 있었어.

이젠 더 이상, 연습이 아니고,

지금 당장, 너는 너를 찾아야 한다고. 

그런데, 나는 지금,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겨울의 문턱에서 연주는 여름을 달리고 있었어.

높은 교회의 천정에서부터 폭풍우가 쏟아져 내리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천배 만배의 큰 울림으로 

나를 마구 마구 엄습하고 있었어.


내 지팡이는 길을 잃고 말았네.

철퍼덕, 그 떨어지는 소리는 

음악소리보다도 더 크게 나를 흔들었어.


지금은 내 인생의 11월, 

지나간 4계를 되돌아 보며

이제는 눈앞에 보이는 저 버스종점의 불빛이 있는 곳까지 

이 험블한 지팡이를 잡고  순순히 따라만 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 지팡이는 어지러워 비틀거리고 있어.

내가 그것을 다시 붙들고 간다면, 

나의 4계는 내 마지막 그 날까지

리허설 중이어도 좋다는 그 위로를 다시 찾은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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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acebook.com/maryanne.pendergast/videos/10155073125512314/?hc_ref=ARQ0iuGvvump9evDLpGyFgj4ESbYQYpgVrhyPvBCVwN6ZrVSkAv-l-5p4O653hrWFFo&fref=nf


태오에비가 11월 19일, 지휘한 어느 쳄버 오케스트라 1비발디 4계 연주회의 리허설 동영상입니다.

마, 스마폰인 듯? 누가 '여름'의 한 부분을 찍어 올렸네요. 클래식 음악은 점점 대중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어서, 거의 재단의 기금과 애호가들의 지원으로 겨우 연명하다시피하고 있지요. 음향장치가 안된 공간이라, 좀 시끄럽지만, 마지막 장면까지 좀 보세요. 리허설까지 와서 보는 저 분은 여간, 애정이 깊은 분이 아니겠지요. 현역 주류사회의 애호가들도 그렇지만, 예전의 바이얼리니스트, 성악가들이 리셉션에 와서 기부금을 내는 모습, 특히, 저렇게 휠체어, 워커들에 의지하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와서 기부하고 환하게 웃는 모습들이 참 아름답지요. 


며칠 전, 눈이 온다기에, 처음으로 지팡이를 들고 서울에 갔다 왔어요. 5년 전에, 태오들과 눈쌓인 집앞 주차장에서 놀고 있는 나를 보고 위험하다고 하나 사다 주었던 것인데, 한국에 가져 와서 내내 저걸 내가 언제 쓰나 하고 있었던 거지요. 진작, 들고 다닐 걸.큰 의지가 되더군요. 사실은 여닐곱 개는 되던울양반 등산용 스틱을 두어 개 남겨 뒀다가 몇 번 들고 다니기도 했는데, 아직은, 지팡이를 들기는 좀 챙피해서 그랬던 거지요. 글쎄, 언젠가는 흰지팡이도 들게 될 지 모르지만, 그건, 너무 가늘어서, 노인이 몸을 의지할 정도는 못되지요. 동병상린인가,  아기를 처음 낳았을 땐, 맨 아기와 그 엄마람만 보이더니, 이젠, 여러 형태의 지팡이들과 그에 의지한 노인들만 보입니다. 전동 휠체어에, 방향과 속도를 자동감지하고 스스로 운전하는 기능도 이제 곧 장착되지 않을까요? 차도만 말고, 시각장애인이 보도와 건물 안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와, 그럴 수 있으면 정말 좋겠는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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