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꼰대 2

해선녀 2017. 8. 20. 17:38

이어서 더 쓸게요. 아니, 끄적거릴게요. 토론 아니고, 순 수다요. 지금, 한밤중. 어제 마시다 남은 포도주를 오늘 다 비워야지요. 너트도 있어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도 좀 하려구요...ㅎ
 
일전에, 우리, 장군 이야기하다 얼굴 붉힐 뻔했죠? 정말, 난 장군들에 대해 잘 모르지만, 맥아더 장군은 좀 생각해 본 적 있어요. 그  옛날, 뜻도 모르고 오빠들이 부르던 노래, "Old Soldiers Never die, never die, never die, ...but they just fade away~~~~" 이런 노래가 있었지요. 한밤중에라도, 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것을 절대로 뭐라 안 하시던 울아버지가 몇몇 노래는 못부르게 하셨는데, 이 노래도 그 중의 하나였지요.  여자애가 군가를 부르면 안된다고.  하지만, 툇마루에 앉아 지는 노을을 바라 보며 그 마지막 부분, Fade away~~~~하는 부분을 부르면서, 괜히  슬프고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던 기억이 종종 떠올라요.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이건 무슨 뜻이었을까요? 그건, 그가 퇴임하면서 했던 연설문의 제목이었더군요. 군인은 그저, 살아지는 데까지 그냥 살다 가는 인생이기보다, 한 걸음, 한 걸음, 의지를 가지고 자기답게 살다가 사라져 가는 자존적인 인간이라는 뜻인가 보다 했는데, 거기다 저 꼰대론을 좀 입히고 싶어졌어요.  '꼰대로 살다가 꼰대로 뻗대며 꺾여서 가지 않고, 나의 판단과 의지로 조용히 사라져 가겠다'로요. 적이나 어떤 타인에 의해서, 떼밀려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삶의 의미를 내가 완성하고 마무리하겠다는 것. 이 세상에서 뜻을 세워 하고자 했던 일을 최선을 다해서 했으면, 그 뜻이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뒷사람들에게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전하며 가볍게 무대를 떠나 가겠다는 것. 활활 타오르던 모닥불이 마지막엔 고운 재만 남기고 스러져 가듯...이거 아름답지 않나요?  

3년전, 93세의 거장 바이얼리니스트 이브리 기틀리스의 연주회도 인상깊었어요. 전날, 그는 한강변을 산책하다가 계단에서 넘어져서 콧등과 어깨를 다쳤지요. 마지막 순간까지 고심하던 그는 자신의 현재 상태 그대로, 무대에 오르기로 했지요. 준비했던 베토번 소나타가 너무 어깨에 무리가 가서, 크라이슬러 등의 그의 연주로 잘 알려진 소품들 몇 개로 대치했지요. 아픈 어깨를 피아노 위에 올려 놓기도 하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연주하는 그 모습은 아름다웠어요.가진 모든 것을 다 태우고 가겠다는 것처럼. 그러면서도 그는 여유롭고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음악의 순간들을 즐기는 듯 보였어요. 인터미션때, 젊은 몇 사람들이 티켇값을 환불하라고 요청하기도 했어요. 현세기를 풍이한 93세의 거장의 연주를 들으러 올 때는, 그의 젊은 시절, 가장 빛나던 연주를 다시 듣고 싶어서 오는 걸까요? 그 대가의 삶과 음악이 어떻게 하나의 전체로 존재해 왔는지, 그것을 느끼고 만나기 위해 오는 게 아니고? 


 마지막엔 모짜르트의 작은별 변주곡을 연주하며, 무대 위의 의자에 앉기도 하고 문에 기대기도 하면서 그는 천천히 무대 뒤로 사라져 갔지요. 바이얼린을 배우기 시작하면 누구나 키게 되는 그 곡을 그는 우리들에게 마지막 따뜻한 신뢰와 사랑의 선물로 전하면서 사라져 갔지요.  그것은,삶의 모든 틀을 뛰어 넘은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유머가 넘치는 한 친절한 할아버지의 모습이자, 그가 어린 시절, 유대인 어머니가 바깥에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방안에서 혼자 그 곡에 빠져서 연습하고 있었던 그 천진한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로였어요.  젊은 날, 녹음한 그의  연주들은 참으로 섬세하고 예리한 빛을 가진 보석들 같지요.  그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마치, 그의 깊고도 따뜻한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있는 듯하지요.  연주회 전전날, 그의 마스터 클래스에서, 그는 끊임없이, 말하더군요. '노래를 불러요, 당신의 노래를 불러요..당신의 테크닉은 아무도 더 이상 잘 해낼 수 없을 만큼 좋아요. 그런데, 음악은 기교가 아니예요. 노래예요...'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 이 노래를 즐겨 불렀지요? 아, 그 때 우리가 지금 이렇게 70대가 되어 있는 모습을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열심히, 열심히, 자신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며 인생을 살아온 우리들, 이제는 다 내려 놓고 조용히 사라져 가야 할 때가 다 된 거 맞죠? 하하,아직, 멀었다고요? 그래도, 오늘밤은 그 노래를 부르고 싶네요.  '...인생은 연기 속에 재만 남기고 말없이 사라져 가는 모닥불 같은 것...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언제 불러도, 결코, 슬프지만은 않은, 아름다운 그 노래...모닥불에서 날아 나오는 재들처럼이나 많은 우리들의 수다들이 하얗게 쌓이겠지요. 에이, 너무 멜랑코리다. 포도주, 고만 마셔야겠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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