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콘닥터와 꼰대, 그리고...

해선녀 2017. 8. 24. 14:01


언젠가, 오래 전, 이제 막 오케스트라 연주자에서 지휘로 진로를 바꾼 태오에비와 지휘자에 대해 한참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나같은 문회한이 보기엔 카라얀 못지 않게 멋있어 보이는 어떤 지휘자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에, 그런 지휘자를 빗대어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Asshole이라고부른다고 했다.  그것도  그 hole이 ass의 뒤가 아니고 앞에 달려 있는 Asshole.  단원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알려 주느라고 앞에 서서 쓸데없이 지휘봉을 흔들며 폼만 잡는다는 것. 그런 지휘자가 될까봐 두렵다는 뜻이었겠지, 에비는 그 때, 페북의 자기소개란에 '막대기 하나 들고 음악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며 휘젓고 있는 사람'이라고 써 놓지를 않나, 학교란에는  '술과 비디오 게임  전공', '골프와 포커 전공', 이런 말들을  써놓았는데, 지금도 그렇게 떠 있다.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자신감이 있다는 듯'이라고 했지만, 거기엔 아직도, 겸손이나 유머 이전에, 자괴감도 분명 들어 있다. 자신감과 자괴감은 어쩌면 영원히 함께 가는  한 덩어리일까? 


하지만, 상대방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자기만 아는 척, 앞에 서서, 그나마도, 잘못된 싸인을 주며 혼자서 춤추고 있는 것으로만 보이는 지휘자라면, 그야말로 얼마나 무엇 같을까? 콘닥터인지, 꼰닥터인지,  정말, 그렇기만 하다면, 이 앞글에서 내가 썼던 '꼰대'일 수도 있겠다.  '지휘자'나, '지도자'나, 시시콜콜이 절차나 순서만 따따부타 따지면서  '지적질만 하고, 정작,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하려고 자기가 그 자리에  있는지를 모르면서 목에 힘주고 대장놀이만 하고 있다면, 그  어느 시대도 이젠 더 이상 아니고, 알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그 단원들이나 국민들은 그와 호흡을 함께할 이유도 방향감도 잃고,  결국, 자존감마저 잃고  말 지도 모른다.  Asshole이라는 말은 사실, 자조적이다. 그런 지휘자를  욕하면서, 자신들도 바로 그 hole을어쩔 수 없이 앞에 두게 된 그 Ass에 불과하다는, 순전히 ' 남탓성'의 위험한  자괴감.  지지휘자와 단원들, 지도자와 국민,교사와 학생,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나도 젊었을 적, 엔간한 꼰대선생, 꼰대엄마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면서..아니, 그럼, 지금은 아니라는 거야? 또 생각하면서... ㅎ


일전에, 태오에비가 페북에 지휘자에 관한 글을 올려 놓았길래,  새삼, 다시 공감이  가서, 이 띌딀한 엄마가 또 번역해 올려 본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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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가 좀 띌띌한 소리를 하려고 하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제가 지난 몇 년 동안 생각해 온 것인데, 산더미같은 정보들이라도 읽는 일을 그리 마다하지 않을 분이시라면 나누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제 직업은요...혹시, 당신의 직업도? "

제가 지금 보여 드리려는 이 짧막한 비디오 한 편이 참 재미있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지휘자란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그들이 지휘대 위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려는 시도가 그 동안 계속 진전되어 왔지요.  음악분야에서 지휘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지휘란 무엇인가에 대해 열명의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열 한 개의 대답이 나올 거라고 해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이 비디오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지휘자(우연히도, 현째까지 존재한 지휘자들 중에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만)가 지휘자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 주고 있는 장면을 보았습니다.그것은 보통의 다른 지휘자들이 제시할 것 같은 것과는 아주 다른 답이었지요. 저의 멘토 중의 한 분도, 여러가지로 그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던 중에,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지휘자는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타당하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 그는 단원들에게,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 해야 하는지를, 그리고,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정보까지도 알려 준다고요.  지휘자 공부를 시작하기 전, 오랫동안 오케스트라에서 연주자 생활을 했던 경험을 통하여, 그리고, 실내악 에 대한 강한 열망과 열정 덕분에, 저는 연주자들이 얻는 저런 정보들 중의 어떤 것들은  단원들 앞에서 지휘봉을 흔들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보다 연주자들끼리, 자기 옆에 앉아서 연주하고 있는 동료들로부터 얻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언제"에 관한 정보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 비디오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실행이 되는지를 잘 보여 주는 한 예입니다.  

저는 종종, 친구들이나 학생들에게 이 비디오의 마지막 음을 소리내어야 할 순간에 박수를 쳐보라고 합니다. 재생시점 2:10 쯤에서부터, 지휘자 앞에 실제로 앉아서 그를 바라 보며 연주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연주의 마지막 음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그 정확한 순간에 박수를 쳐보라는 것이지요.  처음엔 소리를 끈 상태에서 한 번 해 보고, 그 다음엔 소리를 켜 놓고 해 보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해 보았을 때 한 30분은 빨리 박수를 쳐버렸더라구요. ㅎ  제가 그 오케스트라에 진짜로 앉아 있었다면, 아마, 다음 날 아침에 바로 해고를 당했을 겁니다. 당신도,만약, 저 지휘자가  '박자 받침'(beat plane)을 깔아 주기 위해 소리의 밑으로 그의 왼손을 내리 누르는 그 순간이 소리가 날 때라고 생각하고 박수를 쳤다면, 혹은, 대개의 오케스트라가 종종 그러듯이, 그보다 조금만 늦게 해서 박수를 쳤다면, 당신도 아마, 저와 함께 사직서에 싸인을 해야 할 겁니다.ㅎ
  
자, 그러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요?  저 지휘자는 단원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특히, "언제"라는 면에에서  거의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던 건데도, 단원들은 거의 동시에 마지막 음을 내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저 지휘자가 실력이 없는 건가요? 그러므로, 그는 저 직업에맞지 않는 건가요?  아니면, 단원들이 저 지회자의 말대로" 따르지' 못했으니  단원들이 실력이 없는 건가요? 아니면, 오디오와 비디오가 뭔가 좀 맞지 않는 상태았던 건가요? 

 
여기서 제가 생각하는 건 다음과 같습니다.   

1.   단원들은 서로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소리를 그렇게 거의 동시에 낼 수 있었다.  그들은 트럼펫이 마지막 음을 내기 전에 숨을 쉬는 것을 들었었고, 그래서,  트럼펫이 그렇게 마지막 소리를 내기 전에 한 번 숨을 쉴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즉, 적어도 한 번쯤은 있었을 리허설에서 그가 그러는 것을 들었거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그 마지막 음 직전의 프레이즈가 너무 길어서, 트럼펫이 거기서 숨을 한 번 쉬어야 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2. 지휘자도 분명히, 그 트럼펫의 소리를 듣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단원들이 모두 서로의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랜 경험과 지식에 의해, 어느 정도의 신뢰감(자신이 맡은 파트에 대한 지식과 이해 이상으로)이, 지휘자를 포함한 모든 단원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과 신뢰를 바탕으로, 지휘자는 단원 중 아무도, 트럼펫보다 먼저 소리를 내고 튀어 나가는 사람이 없을 것을 알고 있다. 단원들이 필요하고 그에게 요구하고 있는 정보는 "언제"에 관한 것이기보다 "어떻게"에 관한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도 그는 알고 있다. 사실상, 일어나고 있었던 일들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언제"에 대한 것은 지휘라는 것을 설명하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적혀 있다고 해도, 그것은 단원들이  다 아는 것이다.  

 

단원들이 정작 알고 싶은 건, 연주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크게 하라고요? 얼마나 크게요? 어떻게 크게요? 그냥, 큰소리로?  거칠게? 무겁게? 무섭고 음침하게? 영광스럽게 혹은, 승리감에 넘쳐서?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의 반짝이는 눈빛 속에서 그의 "존재"와 만난다.  의 아우라를 느끼며 그를 통해서 음악적 영혼을 만나는 것이다.  지난 몇 세기 동안,바흐를  b단조에서부터 D장조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다르게 연주해 왔는지는 여러 자료들에 기록되어 있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지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다해서 그렇게 다르게 지휘햇기 때문이었다. 지휘자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3. 진실로, 나는 훌륭한 지휘자는 단원들에게 "언제"에 관한 정보를 포함하여 많은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템포와 템포의 변화, 그리고 그것들 간의 관계, 뿐만 아니라, 리듬에 대한 정보까지도. 하지만, 음악을 만드는 데는 , 여러 사람이 똑같은 순간에 똑같은 소리를낸다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측면들과 요소들이 있다.  이 비디오에서, 카라얀은 "언제"의 부분은 단원들에게 책임을 맡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어떻게'와 "무엇을"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왜"에까지도.  나는 좋은 연주는 그 지휘자가 지휘를 잘 해서가 아니라,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잘 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여기서, 보면, 누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런 것을 구별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을 정도로, 그들은 완전히, 음악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되어 있다. 이것은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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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excuse me for being a nerd today...been thinking about this for the past few years and would like to share with those who wouldn't mind reading this huge block of text.

"My job or...your job?"

I find this short video clip fascinating. The attempt to define what conductors are as a profession and what it is that they do on the podium is something that is constantly evolving. It is not surprising to hear eleven different answers from ten different people when asked what good conducting is, especially considering how it is a relatively newer profession in the field of music.



At the very end of this video, there is a moment that made me realize that this conductor (who happens to be one of the greatest ever lived) has a job description that may look very different from what most other conductors think it should be. one of my mentors once told me the following in one of his many attempts trying to define what it is that a conductor's job really is; to provide relevant and useful information to the ensemble in front of you - who, when, how, what, where, and even why. Having played in orchestras for a long time before I started to conduct and due to the undying yearning and passion for chamber music, it is my strong belief that some of the above mentioned information is best when they come from within the group - from the people sitting next to you rather than the person waving a stick - it is especially true when it comes to "when." I think this video is an example of what this means and how it is done. I often ask students and friends to clap their hands when they think they should play the very last note of this video. Watch from around 2:10 and try it for yourself - try to clap at the precise moment you would play the very last note if you were sitting in the orchestra by looking at him in the video. It is even more interesting when you try with the sound turned off first, then again with the sound turned on. My first attempt...I was about half an hour early. If I was playing in that orchestra in that concert, I would have been fired the next morning. If you were expecting the sound to happen when his left hand came crashing down at the bottom of the so called "beat plane", or even after a slight delay, as it often is the case with many orchestras, you would probably be signing the resignation letter along with me.

So what happened here? How did the orchestra end up playing the last note (somewhat, mostly) together, even though the conductor was of little to no help in terms of "when"? Was he bad and failed at his job? Was the orchestra bad for not "following" him? Is the video/audio terribly out of sync?

Here's what I think;

1. The members of the orchestra were listening to each other. They played the last chord together because they listened to the trumpet take a breath before the last note, which also means that they knew the trumpet was going to take a breath before the last note - because they must have had at least one rehearsal and/or they knew that the previous phrase was long enough for the trumpeter to have to take a breath, both by listening and from experience.

2. The conductor, obviously, not only was listening to the trumpet, but also knew that the members of the orchestra were listening to each other. From years of experience and knowledge, a certain degree of trust (by knowing and understanding more than just their own parts on their stand) is formed among the members of the ensemble, including the conductor. With this foundation built on experience and trust, he knows that no one's going to walk all over the trumpet and play the last chord early, he knows that the piece of information that the orchestra needs and is asking of him is "how", much more so than "when." In fact, this has been the case all along; the "when" never has been on his job description, if at all. The orchestra knows when to play. They want to know how to play. Loud? How loud? What kind of loud? Big, harsh, heavy, scary and dark, glorious, and/or triumphant? The orchestra sees the sparkle in his eyes, senses his "being"; the aura, the spirit of the music through him. J.S. Bach showing the next few centuries of the world how it is done - The change from b minor to D major is not only written in the pages, but realized through his entire being. He is doing a great job.

3. In my mind, a good conductor really should convey a lot of information, including "when." The tempo, tempo changes, tempo relationships, and even rhythm. However, there are many other aspects/elements in music making that are far more important than just a group of people playing the notes precisely at the same time. In this video, Karajan seems to be holding the musicians in the orchestra responsible for the "when" part, and is more focused on the "how", "what", and maybe even "why". For me, a concert is good when the orchestra plays well, not when the conductor conducts well. Here...such distinction in who's who and what their job's are seems meaningless. They became one in the music and it is absolutely incred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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