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봄병 끝에 봄편지

해선녀 2017. 3. 4. 13:31


삼일절이네요. 양측 집회는 오늘 클라이막스. 무슨 일은 없겠지요? 이즈음이야말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본궤도에 돌라가게 해 주는 대변혁의 날들이 아닌가 해요. 이제, 어느쪽이든, 판결이 나면, 소용돌이가 없지 않겠지만, 다 견뎌 넘어야지요...

양평의 겨울나기가 힘드셨지요?  저는 덕분에, '칩거'네 하면서 딴엔, '겨울의 낭만'을 즐긴 셈이지만, 눈 치우랴, 동파 걱정하시랴, 너무 힘들게 지내셔서 질리지 않으셨을까, 은근히 걱정입니다. 

그래도, 이제 봄은 오고 있어요. 우리집 거실에도 아침 내내 햇살이 밝고, 단지 내를 조금만 걸어도, 몸이 더워지는 정도네요.  양평집에도 봄기운이 돌고 있지 않을까, 집앞 풍경을 눈에 선해합니다.  참, 저번에, 데크 앞을 텃밭으로 가꾸고 싶다고 하셨는데, 어디든지, 생각대로 하세요. 윗집 데크 앞, 그네 옆이나 수도 옆에도 조금 만듦 수도 있겠네요. 모쪼록, 그 집을 사모님 뜻에 맞게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건강하시교요...^^                   




만날 때마다 늘 따뜻하고 차분한 모습에 내 옷깃을 다시 여미게 하는 사모님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갈수록 어두워지는 내 눈으로 혼자서는 더 이상 양평집을 관리하기 어려워서 지금 거의 일년 째, 세를 놓고 있다. 양평이 너무 추워서  진주에 가계셨던지,상경길에 찍으신 봄나물 사진과 함게. 진주에서 교장 은퇴하신 부부인데, 아들 집이 천호동이라, 가까이  오가며 전원주택을 일단 체험삼아 살아 보겠다는 분들이시다. 아주 꼼꼼히 집을 돌봐 주셔서 너무 고맙지만, 내 욕심이지,  아무래도,계속 사시기엔 너무 불편한 점이 많으신 것 같다.  






상경길이예요.

답장이 늦었네요
겨울 낭만을 즐기시고 봄의 향연을 기다리신다는 소식 반가웠어요

진주남강변에도 벌써 봄이왔어요
 쑥캐는 아지매,  버들강아지, 보라빛 봄까치꽃, 꽃분홍 광대나물도 보이던데^^
와~~ 이게 왠일?
함양,장수, 무주 들어서니  산과 들판에 눈이 쌓여 한겨울 풍경이네요
양평은 아니겠지요

나라가 어서 중심을 잡고 세계적 위기에 대처했음 좋겠지요

꿈만 같을 전원주택 생활이 만만치가 않네요
아름다운 풍광. 예쁜집, 한적함이 있어 좋지만 집안에 벌레들, 추위, 눈, 물과 전쟁을^^

그래도 나름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놓으세요
텃밭은 정원 잔디 풀뽑기로 족한거 같아요
여러모로 챙겨 주시어 고맙습니다




어제, 금요일엔 칩거를 털고 일어나 미루던 바이얼린 수리를 하러 서울로 갔다.  며칠 전, 복지관 새학기 오디션에 또 탈이 난 줄 알면서도 그냥 들고 나갔던 건데, 역시, 옆구리가 또 조금 터지고 브릿지가 기울어지고 무슨 금속이 바닥에 닿아 가느다랗게 떨리는 소리까지 난다. 이번에는 그냥 손봐 주겠단다. 태오애비가 예고 들어갈 때 샀으니, 27년?을 우리집에서 같이 지내 온, 태오애비를 닮은 배똥똥이 녀석. 이젠, 내곁에 마지막 남은 막내아들같이 느껴지는 이 고악기. 비싼 건 아니지만, .1754년생이니, 오랜 세월 동안 이 녀석을 거쳐간  사람들이 나보다 얼마나 더 아끼며 연주해 주었을까를 생각하면서 늘 미안하고 기특한 이 녀석. 나 자신을 위해서는 그러지도 않았을 최신형 가습기까지 새로사서 매일 몰을 갈아 주고 뎀핏도 갈아 주며 딴엔, 관리한다고 했는데도, 윗면을 완전히 뜯어 내고 새로 붙이는 대수술을 지금까지 네 번이나 했었다. 


악기탓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오디션엔 떨어졌다. 내가 생각해도, 이번엔 너무 못했다. 차라리, 좀 편안한 곡을 할 것을, 내 수준으로는 무리인 줄 알면서도, 지난 학기 마지막에 처음 도전해 본 비발디, 탬포가 너무 빠른 곡을 흉내라도 내려 한 것이 잘못이었다. 다시 개인렛슨으로 더 버텨 볼 것인지, 일년 째 또 버려 두다시피 하고 있는 플륫을 다시 잡을 것인지는 이 녀석을 찾아 온 후에 또 생각해 볼 일이다. 플륫도, 너무 오래 안 불면 점점 떨어지는 폐활량과 뱃심 때문에 영영 멀리하게 될 것 같다. 노익장을 과시하려고 젊은이들과의 체력경쟁을 마다하지 않는 남정네들이나  주름진 피부를 거부하며 온갖 수술에 공들이는 여인들이나, 바닥으로 거의 다 내려간 시력을 모른 척, 택도 없이 이 늘그막에 가로늦게 악기를 탐하고 있는 나나, 모두 못말리는 생명력들, '사랑스런' 고집쟁이들이다. 봄이 되면 자갈밭도 둟고 올라 오는 쑥부쟁이 같은 고집이 나에게도 아직은 있다는 것이 스스로도 기특하다 .이 고집을 놓고 나면 나는 또 무슨 고집을 스스로 애틋해 하며 살아 가게 될까?  17억짜리라던가? 과르네리 수리도 척척 맡아서 해내는 마애스트로 박선생은 어벙거리며 악기점을 들락거리는 내가 용하다면서도 못내 안쓰러운지, 악기점앞에서 꼭 택시를 기다렸다가 나를 태워 준다. 


내가 언제 이리 봄을 기다렸던가? 열 다섯, 소녀 적에도 이런 것 같진 않다. 봄병이다. 그저, 늘 어정어정, 계절을 뒤쳐져서나 따라가던 내가 하루에도 몇 번을 거실앞 풍경을 내다 보며 봄인가, 봄인가 한다. 그래, 저 노화 탓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내게 남은 봄들은 툇마루에 오두마니 앉아 햇볕을 아끼고 있는 고양이와 할머니나 연상되는 그런 나른한 봄뿐이라도, 그래도, 그런 봄이 그립다. 하지만, 겨우내 하루같이 온국민의 마음을 너무 오래 조리게 한 시국 탓도 크다. 이 겨울은 정말, 온국민을 너무 숨차게 했다. 국민은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통령이 누구인지도 관심없는 그런 정치가 좋은 정치다. 스위스처럼, 내각이 돌아가며 일년씩? 대통령을 맡는 그런 세월은 우리에겐 낭만도 아닌 농담일 뿐일까? 며칠 후면, 헌재도 어느 쪽으로든 결판이 날 것이다. 어떤 판결이든, 잠시 소용돌이는 겪더라도, 결국, 올 것이 오고,갈 것은 갈 것이다. 봄이 오고 가면, 여름이 오고 또 가듯이, 잠시, 꽃샘추위같은 되돌림이 있더라도, 역사발전의 수레바퀴는 결국, 다시 제대로 돌아갈 것이다.


'노을 비낀 숲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날은 간다...그리고 아름다운 인연들  (0) 2017.05.01
내를 건너서 숲으로  (0) 2017.04.25
봄이야.  (0) 2017.02.20
나이듦의 미학  (0) 2017.02.13
어떤 영혼분석  (0) 2017.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