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나이듦의 미학

해선녀 2017. 2. 13. 16:02

나이듦이  욕망과 좌절의 찌꺼기들만 쌓여 가는 것인가 싶을 때, 그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불이  고래고래 외치고 부르짖는 모습을 볼 때, 그들이 오로지, 가진 것을 지키고 못가진 것을 빼앗으려는 욕망에만 가득 차 있어 보일 때, 그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거짓과 왜곡도 불사하고 있는 듯이 보일 때, 그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리하여, 정의는 이긴 자의 것이 되어 버리고 말 것같은 두려움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는  배부른 돼지의 행복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자존심을 먹고 산다. 우리는 배를 불릴 밥그릇과 쾌락을 즐길 기회가 우리에게 얼마나 풍요롭게 주어졌는가 하는 것 이전에, 그것이 공정하고 정의롭게 주어졌다는 당당함으로 더 배가 부르다. 남의 밥그릇을 빼앗아서 내 배를 채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까? 우리 중에, 내 소중한 노력의 댓가가 남보다 수 천 분의 일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배가 부르면 됐지.' 하며 여전히 행복해 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유와 평등의식은 항상 상대적인 것. 그것은 그 구성원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확인되고 조정된다. 그것이 가능한 사회가 성숙한 사회이고, 그런 사회라야, 갈등과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해 나간다. 그런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욕망과 좌절의 찌꺼기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늙어가지 않도록, 독려하고 미리 챙긴다. 돈이 많고 적고 간에, 배부른 돼지로만 행복한 사람에게는, 나이듦은 절망일 뿐이다. 친구 간에,  집회 간에, 여야 간에, 청와대와 검찰 간에, 말은 통하지 않고 오로지, 눈치보기와  힘겨루기로 만 대적하고 있는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자신들이 정의의 편이라고 온갖 말로 내세우지만, 정의와 지성은  오로지 그 깃발의 장식물로만 허투로 쓰이고 있을 때, 그것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이 혼란한 시국에, 오,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 헌법재판소의 판결만은 우리를 더 이상 슬프게 하지 말기를. 우리가 동물왕국에서 잘 사육되고 있는 동물들이 아니고, 정의와 지성이 살아있는 사회를 향해 잘 나아가고 있는 자유민주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지키게  해주기를.  촛불과 태극기를 들고 광장으로 달려 가는 사람들이여, 제발, 우리 자신의 욕심과 무관심으로 인한 적폐부터 반성하자 그리고 외치자. 우리의 지성과 양심의 소리를. 어떤 세력의 부추김에도 부화내동하지 말고,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말고,  


한 개인이나 국가나, 나이듦이 욕망과 좌절의 뒤죽박죽 찌꺼기들이 아니라, 더 맑고 밝은 통찰력으로 희망을 보게 되는 일이라는, 고집 아닌 고집을 아직 버리고 싶지 않다. 희망이라는 것도, 하나의 욕망일 뿐?  아니다. 이 만큼 살고 보면, 그 희망은 이제는 더 이상, 나 하나만의 시간과 공간에 갇혀 있지 않는, 저 '높이 날고 멀리 보는 새', 알바트로스의 희망이 되어 간다.젊었을 때 근시안이던 사람도 늙으면 원시가 되는 것이 그래서가 아니었던가? 그것이 진짜 나이듦이다. 자주, 몸은  어벙어벙, 정신은 깜박깜,박할 수는 있어도, 우리의 영혼은 퇴락하지도 썩지도 않는다. 그 희망들을 내가 잠시 잠시 망각하고 그것들이 나를 망각하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면, 보고 싶지 않아도 자연히, 젊어서는 미처 못보던 것까지 보인다. 영혼의 지혜이자 능력이다. 소크라테스도 이것을 전생에서 배운 것이라고 하였지만, 누군가에게서 그 지혜를 발견할 때마다 감탄하고 고맙다.  아주 오래 전, 인류가 호모사피엔스로 살기 시작하였을 그 때부터, 아니, 그보다도 더 오래 전부터  우리 안에 전해져 온 인자로 인해,우리는 어떤 다른 동물들보다 더 밝게,우주보편의 가치와, 인간존중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 그 눈으로, 너와 나, 보수와 진보마저 넘어선 집단지력과 통찰을 높혀갈 일이다. 


이재용이 다시 특검에 불려 나왔다. 뇌물의 증거가 밝혀질까? 그는 '진싱를 말하겠다.'고 했다. 그 진실은 무엇일까? 뇌물여부가 밝혀지지 못하고 말더라도, 혹시, 이제부턴 더 이상, 절대로, 정경유착 같은 건 없는 깨끗하고 건강한, 진정한 세계기업으로 성장할 백년대계라도 세운 것일까? 아직, 젊었지만, 젊었으니까 더욱, 자신과 조국을 위하여 그가 할 일은 이제, 그것뿐이라는 걸 알고 용기있게 실천했으면 좋겠다. 그가 감방에 얼마를  들어가 있게 되든 않든, 그는 결국, 그렇게 갈 것을 우리는  믿고 희망한다. 아니, 그 전에, 다음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기업들에게  더 이상 뇌물을 바라지 않기를 바란다. 이젠,많이 맑아질 것이다. 이번에, 우리 모두, 그것 하나는 깨닫지 않았을까?  그런 어리석은 기대는 하지도 말라고? 오, 제발...나이듦의 미학을 좀 믿어 달라. ㅎ 


개도 원숭이도, 이기적인 사람을 알아보고 가까이하기를 꺼린다고 한다. 그들도, 그 반면교사를 통해 도덕성을 깨우치는최소한의 능력, 지능을 가지고 있다. '나'라는 개인은 사라져 가도, 이 세상에 편재하는 지성의 빛은 여전히  이 세상을  밝혀 줄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이 있음에.우리는 더 이상 슬프지 않다. 모든 것은 , 때때로 뒤집히고 무너지더라도, 그 이성의 힘으로,종내는 될 것은 되고, 안 될 것은 안 될 것이라는 희망이 우리에게 있다. 헌재의 판결이 어떻게 나더라도, 혹시라도, 어떤 욕망의 그림자들이 다시 이 나라를 유신시대로 끌어내리려 하더라도,  지성의 빛은 해마다  봄이 오면 또 다시 대지를 뚫고 나오는 새싹들처럼, 개구리들처럼, 우리의 마음 속으로부터 비쳐 나올 것이다. 어떤 반복과 질곡이 있더라도, 역사는결국, 발전한다. 입춘대길이다. 곧 개구리들도 깨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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