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묵지빠 같은 삶

해선녀 2016. 8. 6. 14:50

 

 

 

산책길에

당신 앞에 밤 한 송이가 떨어지면,

당신은 가시가 무서워 피해 가는가,

발로 비비고 돌로 쳐서라도

그 알밤을 기어이 주머니에 넣고 가는가?

 

고슴도치 한 마리를 맞닥드려도

녀석의 바늘에 찔릴까 두려워 피해 가는 사람이 있고

녀석의 속살을 만져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나뭇잎처럼, 종이배처럼,

평생을 물결따라 순하게 흐르기만 하는 사람이 있을까?

삶은 제 생긴대로 내놓는 묵지빠 같은 것.

가위를 내놓으면서 바위를 놓치고

바위를 놓치면서 보를 잡는 것.

당신도 모르는 당신의 기미를 내가 먼저 알아 채고

하나, 둘,  셋, 나는 오늘도 내 손을 내밀어야 하네.

 

운명이란 그러므로,

그 옛날, 푸른다리 밑에서 냇물에

아비도 모를 아기 씻겨 젖먹여 재워 놓고도

동네 개구쟁이들과 물장난을 치며 놀던 금달래,

둥근 다리밑을 웅웅거리던 그녀의 깔깔웃음처럼

허허로이 사라졌다가도.

하필이면, 어느 장엄미사곡의 말미에서

거 봐, 하며 삑사리를 내며 돌아오기도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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