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새에게서 나무에게로

해선녀 2013. 6. 28. 19:37

 

 

 

아이들이 버밀리언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태평양을 건너 가는 그 긴 비행시간을 또 어떻게 견딜까, 걱정했는데, 올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잘 견뎌냈다고 한다. 개구쟁이 손주녀석들은 동네 놀이터에도 매일 나가서 신나게 놀았지만, 집안에서도 던지고 구르며 법석하며 노는 통에, 이번에는 침대 모서리에 서 있던 기둥 하나가 기울어지고 아랫집 아저씨가 층간소음 문제로 두 번이나 올라 오신 사고?도 있었다. 몇 년전, 태오가 더 어려서 왔을 땐, 문갑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노느라고 장석 나사가 어디론가 달아나고 장식장 문에 매달려 노니라고 문짝이 찌그려져 버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그런 일들로 아이들과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하고 타이르고 할 수 있는 꺼리라도 있는 지금이 낫지, 다음에 얘네들이 올 땐 그런 장난들은 시시해져서 하지도 않을 거고, 나는 알아 듣지도 못할 싸이버 게임 이야기들만 하고 있을 것 아닌가 생각하니 벌써부터 세대격차를 느낀다. 어쨌든, 난 이제, 삶의 작은 고개 한 둘이나 남았을까, 중허리는 넘은 지 오래고, 곱게, 땅으로 잘 흘러 내려갈 일만 남은 나이이다. 

 

처음으로 할아버지 나무가 서있는 양평숲에 가서 나무에 절을 올린 후, 양평집에 갔을 때부터 아이들은 좋아라 하였다. 높은 아파트들로 둘러 싸인 외할머니댁보다도, 다세대와 단독주택들이 오밀조밀 붙어 있는 우리 동네보다도 툭 트인 넓은 들판과 앞산을 바라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트였을 거라. 할머니, 여긴 왜 집들이 별로 없죠? 할머니는 왜 집이 둘이죠? 아, 난 서울서 좀더 살아야 해서 남의 집을 빌려서 있지만, 내 진짜 집은 여기란다..아, 여기가 제일 좋아요. 녀석들은 가자 마자, 마음놓고 소리 지르며 뛰어 놀았다. 옆집 개들도 고양이들도  닭장 속의 닭들도 모두 친구가 되었고 옆집의 텃밭에서 상추도 따고 깻잎도 따는 것을 재미있어 했다. 한 학년 위인 옆집의 지민이를 지미, 지미 부르고 지민이도 태오, 주노 부르면서 수없이 오가며 뒷동산에도 올라 가고 앞뒤 마당을 뛰어 다니며 온몸이 홈빡 젖도록 물호스 장난을 치는 걸 그리 좋아하더니, 서울로 돌아 오자마자, 양평, 양평 하면서 다시 가고 싶어 했다.

 

두 번째로, 녀석들만 데리고 갔을 땐 처음부터 끝까지 지민이와 함께 놀았다. 잠도 같이 자고, 지민이네는 아이들을 교회에도 데리고 가고, 근처 개울로도 데리고 나가서  바베큐와 물놀이를 즐기게 해주었다. 처음 갔을 때 마당의 새집 한 곳에서 발견했던 어린새 네마리는 이젠 털이 조금 나있었지만 아직 날지는 못하고 있었는데, 다음 번 내가 갈 때면 적어도 3주일 이상은 되었을 테니 날 수 있을 것 같다. 예쁘장한 어미새가 부지런히 들락거리며 먹이를 가져다 먹이고 있었는데, 저 어린 것들도 다 크면 둥지를 떠나 버릴까? 내내 우리집의 새집들을 보금자리로 써 주면 좋겠다.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새집 안에 작은 티끌들을 쌓아 놓아 폭신한 이부자리를 해놓은 것 같단다. 얘들아, 이 집엔 우리들이 마음놓고 살 수 있는 새집들이 많단다. 너희들도 여기 와서 함께 살자 하며, 더 많은 새들을 불러 들이면 좋겠다...ㅎ

 

어미새가 앞산과 들판에 나가 먹이를 구해 오는 게 참 신기하다. 어디 좋은 곳을 발견했을까? 맛있는 알곡이나 벌레들이 있는 곳을 알아냈으면, 혼자서만 숨겨 놓지 말고 함께 오가며 나누면 좋겠다. 농부들의 수고로 저들도 먹고 산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농부들도 농사를 지을 줄 아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새들에게도 알곡을 조금 나누어 줄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새들을 너무 미워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들은 자기들이 농부였더라도 미운 마음도 될 수 있음을 이해하고, 들판에서 땀흘리리며 일하는 농부들이 고맙고 아름답게 보였으면 좋겠다. 농부들은 땀을 식히며,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새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겁고 힙들지만,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꿈이 많았던 젊은 시절, 병원에 갈 돈도 없어서 둘째 아이를 집에서 낳고 누워 있던 어느날 문득, 창가에 날아와 앉아 나를 바라 보던 붉은새, 카디날이 있었다. 나는 그 새를 20년 동안 기억하고 지내다가 '붉은새'라는 글을 썼고 그 후 미국에 다시 갔을 때는 그 새를 만나기 위하여 테라스에 새집을 하나 매달아 놓고 카디날용 새먹이를 사다 넣고 기다리곤 했었다. 알 수 없는 운명처럼 두렵고도 경이로운 그 새는 한국에서는 볼 수도 없었고 그 후 점점 잊혀져 갔지만, 미루님 말씀마따나, 내 글에 새가 유난히 많이 등장하게 한 첫새였다. 

 

아닌게 아니라, 남편이 가고 혼자가 된 후에도, 나는 '새처럼 자유로워라...'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의 가족 이야기가 들어 있어서 비공개로 남겨 두었지만,그 동안 온정신을 옹죄며 가지고 살던 모든 집착들을 퉁, 날려 버리고, 가볍게 날 수 있기를 기원하는 글이었다. 새처럼 자유로운 비상은 누구에게나 영원한 꿈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생각해 보면, 남편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대와 바램이 있었던 그만큼의 짐도 덜어졌던 것이 사실이고, 혼자서 지고 가야 할 짐도 그가 그리 많이 남기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런 기도가 영 비현실적인 건 아니기도 했다. 내 눈은 더 어두워져 가고, 아이들은 아직 안정되지도 않았고, 혼자서 가는 길이 더 힘들 건 뻔했지만, 내가 아무리 허리끈을 졸라맨들, 아이들에게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얼마나 되겠는가? 그저, 너희들도 스스로의 힘으로 잘 날 수 있지? 바라보며 믿어 주는 것, 이젠 그게 더 큰 나의 일로 남은 것 아니겠는가? 양평집에 새집들을 잔뜩 걸어 놓고 그네도 매단 것은 그런 생각에서였다. 그의 영혼도 나도, 내 아이들도, 우리집에 날아들 새들도 모두 자유로이 날자고...

 

하지만, 내 눈길은 이제 새에게서 나무에게로 더 자주 옮겨 가는 것 같다. 아니, 원래부터도, 나는 안으로만 자유롭기를 좋아하였지, 남편처럼 밖으로 잘 날아 다니는 '역마살'은 별로 없었다.ㅎ 한 그루, 듬직한 느티나무는 못되어도, 감히, 봄이면 아직은 새잎 돋아나고, 가을이면, 고운 색으로 물든 낙엽을 떨어트리고 빈가지로 설 줄 아는 작은 단풍이나 목련이라면 어떨지? 이제, 알곡을 찾아 나설 힘은 없어도, 향기로운 꽃이나 열매도 별로 맺지 못하여도, 수많은 세월, 알아온대로 소박하게 행하며 살 줄 아는 나무.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지만, 햇빛과 공기와 물을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빨아 들일 줄 아는 나무.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그에 순응하면서 새들에게 쉼터가 되어 주는 나무...나는 이제 가는 날까지, 유순한 한 그루 나무처럼 대지에 서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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