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유년의 오래된 집
내 뒷방 같은 이 불방이 좋다.
언제부턴지, 집은 지워지고 집터만 남아
아파트 테니스장이 되어 있지만
그 집은 지금도 내 꿈속에선
내 모든 짓거리의 무대가 된다.
트윗이니 페이스북이니 카카오톡들의 기세에
블로그가 인터넷 뒷방신세라는 건 문제도 아니다.
나 이 세상 떠나고 나면 어차피,이 방
우주 속 먼지 한 톨의 흔적도 남지 못하겠지만
가물가물해져 가는 내 의식을 밀어내며
어느날, 싹 걷어치우고 타박타박
신작로길을 걸어 떠나 버리고도 싶지만
나 아직 이 방을 내 손으로 지우지 못함은
살아 오는 동안 종알종알 두런두런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며
내가 저질러 온 나 자신을 버리지 못함이다.
그 옛날, 봉창문을 열면
뒷집 친구 봉녀가 어느새 달려 오고, .
밤새도록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잠든 새벽에도
새벽마다 새샘물을 긷는 두레박 소리에 잠을 깼지.
감꽃 하얗게 떨어져 있는 새벽 마당에선
살금살금 동네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도 들려 왔지.
감나무에 매단 그네를 타며 졸던 나는
감꽃 주렁주렁 목에 걸고 놀던 나는
이웃블로거들의 새글에 마음 설레며
댕글댕글 허공에 매단 댓글로 그네를 타며
멀었다 가까웠다, 불안한 내 존재를 볼 수 있었지.
.. .
귀뚜라미나 가끔 찾아 올까,
눌은 구둘목 장판 냄새에 문
문풍지 떨리는 소리만 가득한 날에도
봉창문 밖엔 푸른 하늘 푸른 숲
눈감으면 밀려 들어 오는 아카시아 냄새
귀기울이면, 톡, 톡, 감꽃 떨어지는 소리,
아직도 샘물을 긷는 두레박 소리에 잠을 깨는 방
나는 오롯이 내게 만 주어진 내 뒷방, 이 방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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