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눈이 내린 5월 첫날에.../촌촌님께 드리는 답글

해선녀 2013. 5. 2. 05:39

 

아, 그렇군요. 화해와 희생과 용서...호세이니가 전하고자 한 메쎄지는 바로 그런 것들이었군요. .그런데, 난 그걸 꼭히 기독교만의 가치들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네요.  사실, 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에서는 그런 메쎄지가 더 강했던 것 같아요. 두 책 모두에서,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기독교 이야기는 전혀 없으니까, 나는 이슬람의 근본정신도 인간보편의 가치와 다를 게 없구나, 생각하며 읽었지요.  

 

그렇지요. 호세이니는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로, 미국으로 다니면서 살았으니까, 서방세계의 가치관에 일찌기 익숙해졌겠지요. 문학지망생이었지만, 미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선 의학을 공부했고 의사가 된 후에 틈틈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지요. 그는 저 책에서, 탈레반이 된 아세프로 하여금, 아미르에게 그런 지적을 하게 하지요. '전란을 겪고 있는 민족의 아픔을 외면하고 외국에 나가 있다가 이제 안정이 되어 가니 재산도 챙겨 가고, 잘 하면, 한 자리라 얻어 걸리려고 슬슬 기어들어 오는 자들' 아니냐고요. 이건 당시 국내에 남아 처절하게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공통된 정서였고, 탈레반은 그 폐허화된 나라에서, 강간과 절도, 거짓과 배반 등의 범죄로 코란의 정신을 더럽힌 자들을 깨끗이 청소하여 엄격한 율법의 나라를 다시 세우겠다는 근본주의자들이었지요. 그 책에서도, 테레반은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정당화되고도 있었어요.

.

미국인들 입장에서는 쾌락과 안정을 추구하는 김정은보다도, 절대적 진리 같은 것을 추구하는 오사마 빈 라덴에게서 더 모욕감을 느꼈다는데 동의해요. 그런데, '성스러운 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며, 축구경기장에 관중들을 모아 놓고, 율법사가 코란을 읽은 후, 구덩이 속에 '죄인'들을 넣고 돌로 쳐죽이거나 대량살상을 저지르는 것을 바라 보며 모욕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분노와 더불어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비애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그게 보통사람들의 정서이고, 아무리, 그들이 금욕과 고행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그리한다고 해도, 그 자체로서 납득이 안되는 거죠. 그런 분노나 슬픔만 묘사하고 있는 문학이 독자에게는 '또 그거냐?' 하고, 진부하고 상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현실인 사람에게는 그렇지가 않은 거죠. 그 책은 문학적 가치도 가치지만, 작가의 배경과 당장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적 현실을 바탕으로 쓴 것이어서 더 돌풍을 일으켰던 것이겟지요.  

 

라힌 칸이 죽음을 앞두고 그에게 아버지의 비밀을 털어 놓으면서 핫산의 아들을 미국으로 데려 가라는 마지막 말을 전하며 알라신에게 기도하는 모습이나, 이슬람에 대해 냉담했던 그가 수술실 앞에서 알라신에게 평생 코란을 섬길 것을 맹세하는 절절한 기도를 하는 모습도 상투적이라면 상투적일 뿐인, 그래서 또 모욕감마저 드는 속죄의 일반적인 패턴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실제로, 나도, 기독교에 대해 그토록 냉담했던 내 동생과 아즈버님이 예수를 '영접'하고 가던 마지막 모습들을 보면서, 그런 모욕감이 들기도 했어요. 저렇게 마지막에야 나약한 모습을 보이며 가고 있는 자신에 대해 스스로도 모욕감을 느끼겠구나, 하며...그러느니, 우리는 왜 생전에 어느 신앞에서든, 두 손을 들고 미리 항복하지 못할까요? 나도 막상 죽음 앞에서는 그렇게 될 것 같은 생각도 하면서 말이지요. 살아 있는 우리가 사랑하던 사람이 관속에 누워 있는 것을 바라 보는 것,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현실 자체가 모두 모욕스럽기도 하지요. 나도 그랬고, 죽은 사람도 영혼이 있어 바라 보고 있다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런 보통사람, 어쩌면 보통사람도 못되고, '나약하고 비겁한' 아미르가 바로 호세이니였고, 우리들이 아니었던지...

 

아세프와의 인간적인 공감도 있긴 있었어요. 그가 마지막으로 아세프에게 쇠장갑을 낀 주먹으로 얻어 맞으면서 내내 웃음이 터져 나오는 장면...아세프가 그 직전에 자신이 탈레반이 된 이유를 설명했었지요. 그가 어느 반군에게 혹독한 매질을 당하고 있는 동안에 몸안의 결석이 튕겨 나가면서 그고통이 사라져서 그렇게 웃음이 터져 나와서 계속 웃다가 더 심한 매질을 당했지만 그칠 수가 없었다고, 그게 신의 은총이었다고... 그래서 탈레반이 되었다고...아미르는 아세프의 고통을 신체적인 결석으로만 표현했지만, 그건 결국, 그 잘난 우리는 모두 자신의 죄를 스스로 씻지 못한다는 메세지가 아니었을지...무의식 중에서라도 잠재되어 있던 참회를 터뜨려 줄 어떤 타자가 있어야, 카타르시스의 눈물이든 웃음이든 비로소 터져 나온다는...죽지 않고는 도저히 빠져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마지막 장면에서 그 아이의 새총과 쇠공은 정말, 절묘한 운명이었지요. 아세프 자신이 밀어부친 그 아이가 탁자에 부딪쳐 뒤집혀지면서 그 쇠공이 떨어졌던 것...바로  그렇게, 반공영화나 할리우드극 같았다고요? 영화도 나왔다던 듯... '실미도'같았을까요...ㅎ


 아, 참, 저 보스턴 사건이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저 사건이 표면상으로는 종교문제이기도 하지만, 이 사회의 소수자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이야기였고, 소수 이민자들이 늘고 있는 우리에게도 교훈이 될 거라는 이야기였어요. 물론, 우리는 결혼이민이 많아서 좀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들과 그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아직 너무 미미하잖아요...어제, NPR의 워싱턴 포스트 마크 피셔와의 대담을 들어 보니, 그 아버지는 1991년이라던가, 소련의 체첸 점령과 함께 탄압이 시작되면서 고향을 버리고 탈출하여 유럽과 아시아, 캐나다 등지로 흩어져 살기 시작한 체첸 디아스포라들 중의 한 사람으로, 극히 소수였지만, 미국으로 먼저 와서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속했던 형제들과 친구들을 따라 와서 자동차 수리공으로 일했다는군요.

 

그럭저럭 벌어 먹고 살 만도 했지만, 스파에서 일하던 그 부인이 점점 상점에서 옷도 훔치고 다른 형제들과의 불화도 심해지던 끝에, 경제사정도 극히 나빠지고 이혼도 하게 되면서, 복싱선수로 제법 잘 나가던 큰아들은 술과 마약을 하고 아버지는 암에 걸려서 결국 귀국하고...가정파탄이 왔다네요. 미국에 둘만 남게 된 형제들의 문란해져 가는 생활을 바로잡기 위해, 그 엄마가 과격주의자들의 무슬림 사원으로 큰아들을 이끌었고, 형의 영향을 받은 쟈하르도 사건 바로 몇 주일 전부터, 친구들에게 '다들, 사기꾼들이 판치는 이 사회에서 의사 따위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말도 했는데, 그렇게 범죄자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네요... 사건 직후, 그 삼촌은 그 형제들을 '루저'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가슴아픈 것은, 폭발 직전, 큰아들이 어느 삼촌에게 전화해서 사과의 말을 전하며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는군요...ㅠ         

 

그러니까, 과격주의적 이슬람이 먼저가 아니고, 이 사회의 부적응자가 되었던 것이 먼저라는 거죠...소수자들을 개인적인 사회부적응자, 루저들로만 치부하지 않고, 집단과 계층으로 파악하고 그 인권과 교육에 힘쓰는 나라가 더 국민행복을 추구하는 선진국이 되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도 아는 만큼 실천해 가야겠지요...라고,

 

또 상투적인 말만 해서 죄송해요...ㅎ

촌촌님의 삐닥한 댓글이라는 말도 뭐, 상투적이잖아요. 사실, 이 나이가 되고 보면, 웬만한 현실이나 소설들이 다 상투적이고 진부해서 모욕감마저 느껴지는 때가 많지요. 우울증과도 같은... 그걸 회복하기 위해서는 아주 신기로운 대상을 만나지 못할 바엔, 일부러 연속극도 보고 소설책도 좀더 애완하며 읽어야 하는데, 서울 가면 또 맨날 딴짓일라나 모르지요..ㅎ  

 

튼, '삐딱한' 댓글 써주는 촌촌님이 난 늘 고맙기만 하답니다. 내친 김에, 주문 하나 더, 그 '일부러' 모욕감 주기 위한 예술작품들도 좀 소개해 주시기를...^^

 

근데, 오늘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상투적이지 못하지요? 오늘부터 5월인데도, 반팔소매를 입게 하던 그 화창한 날씨는 또 어디로 가고, 눈이 소복소복...아침에 학교 가면서 현관문을 열던 우리 큰손주 태오는 진지하게, '겨울이 다시 올 수도 있어요? '하더니, '웨-기 웨더' 라고 하고 나가더만요. ㅎ 어제만 해도, 반팔로 나가 놀았거든요...5월에도 눈이라...계절이 유머를 하고 있는지, 위협을 하고 있는지...에고, 눈이 좀 녹았나도 볼 겸,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니 나가 보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