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나무 앞에 서서

해선녀 2013. 7. 10. 01:43

 

 

나는 네가 좋다.

바람에 살랑이는 너의 잎들도 좋고

새들이 앉아 지저귀는 너의 가지들도 좋고,

버티고 섰던 내 젊은 날같은 너의 기둥도 좋고

대지에 뿌리 박고 선 네가 나는 좋다.

 

너의 그림자도 나는 좋다.

새소리마저 그친 한낮의 땡볕을 이고도

처음 왔던 곳에서 다시 떠나기 위하여

흘러가는 네 안의 물소리가 땅을 적시고

나를 적셔 주는 네 그늘이 좋다.

 

나무라는 이름만 들어도 나는 좋다.

나무라는 말을 누가 처음 했을까?

 

Tree는, 햇빛에 반짝이며 살랑대는 이파리들,

바이얼린의 트릴처럼 예쁜 말이지만,

나무라는 말은, 나아- 므우-, 나아무우--,

뿌리에서 울려 오는 거문고의 명상을 닮았다.

 

나 이제, 뿌리에로 돌아가리라. 

너 앞에 서서 천상병처럼 나도 빌어 본다.

뭇 이파리들의 반짝임에 내주었던 눈을 이제 감고

뿌리의 낮은 읊조림에 귀기울이기를.

침묵의 소리에 귀가 열리기를.

 

 

 

 

 

42023

 

'노을 비낀 숲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악에  (0) 2013.07.28
비 오는 날의 끄적거림  (0) 2013.07.18
새에게서 나무에게로  (0) 2013.06.28
형용사적 존재 -재론  (0) 2013.06.20
시와 에드벌룬과 뾰루지가 있는 풍경  (0) 2013.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