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오래 된 집, 마당 넓은 집

해선녀 2005. 2. 10.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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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생 / 0.1 에이커

 

 

주부들은 모두 한창 바쁠 구정 연휴에, 신정을 쇠었다는 느긋함으로 겨우 떡국이나 끓여 먹고는 만판으로 한가해진 나는 괜히, 컴퓨터를 붙들고 큰아들이 가게 될 듯 싶은 학교가 있는 볼티모어를 검색해서 여기 저기 쑤시고 다녔다. 그 학교는 물론이고, 월세 아파트들을 살펴 보다가 그 주변의 주택가의 문화와 경재수준, 평균연령과 범죄발생율까지 들어 있는 부동산 싸이트들을 기웃기웃 들여다 본다.

 

새 집들은 여기와 마찬가지로, 크기는 작아도 매우 비싸고 있던 집들은 15년 20년은 보통이고 50년, 70년 된 집들도 많았다. 반들반들한 신형의 설비들이 부착된 내부 인테리어까지 자세히 동영상으로 보여 주는 작고 깔끔한 새 집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면서도 나는 왜 자꾸 오래된, 마당 넓은 집에 눈이 가는 것일까? 돈문제만이 아닌, 생리적으로 이끌리는 무엇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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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64년생 / 0.12

..

 

그렇다. 나는 어린 시절의 우리집을 생각했다. 기와가 오래 되어 자꾸 비가 새고 부엌엔 쥐가 들랑거리고 안방이나 마루에 돈벌레, 풍뎅이 들어 오고, 여치와 귀뚜라미까지 들어 와서 어느 구석에서 울곤 하던 그 집, 마당엔 감나무가 네 그루,  그네, 탁구대와 씨름장, 평행봉과, 이단봉에 역기들이 굴러 다니고 봉숭아, 채송화 맨드라미와 나리꽃이 피는 장독대 앺 텃밭에선 도라지꽃과 더덕냄새가 풍겨 오고 강아지가 뛰어 놀고 알을 낳은 닭이 울던, 평상을 펴 놓고 별을 헤며 수박을 먹던 마당, 칼국수를 먹던 마당, 장기를 두는 오빠들 옆에 어떻게든 비집고 앉아 장갑을 뜨고 수를 놓던...이젠 아파트 테니스장으로 바뀌어 버린, 내게 꿈과 놀이와 먹을 것을  주었던 그 마당집...나는 이미, 이 아이들이 있을 곳을 찾아 보려 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내가 원하는 집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오래 된 집은, 같은 지역이라도,한 이삼십 년 차이가 나도 값은 거기서 거기이다. 대지가 근 사백평되는 0.31 에이커의 집이나, 0.1 에이커의 집이나. 물론,.수리한 정도에 따라서도 다르겠지. 무엇보다도 마당이 넓은 집엔 대개 커다란 나무가 있다.나는 그것이 좋다. 거실에서도 나무를 바라보고 마당에 나가면 나무 밑에 앉을 것이다..손자는 제 덩치만큼 큰 개와 함께 마당에서 뛰놀 것이다.앞마당보다는, 흙바닥 위에서 그네가 흔들리고 텃밭엔 청량고추가 자라고 있는, 여름이면 식구들이 서늘한 그늘 아래에서 바베뮤를 해먹으며 담소할 수 있는 뒷마당은 더 좋을 것이다.저녁엔 벽난로 앞에서 손자가 동화책을 읽고 있는 동안, 며느리는 이웃집 눈치 보지 않고 악기 연습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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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생 / 0.14

 

 

뉴저지의 오래된 집에 산다는 친구한테 멜을 보냈다. 숲이 우거져서인지 남편의 천식이 낫지 않아 이젠 그런 오래 된 집으로부터 탈출할 생각도 한다는 친구...그래, 그녀는 나보다도 현실적인 의견이 있을 거야. 도대체, 요즘처럼 금리도 오르는 판국에 모게지 론을 얻어 집을 사는 것이 유리할까, 우선 그것부터 물었다. 친구는 일단, 두 아이들 아파트 랜트를 따로 내는 것보다는 아직은 그게 나을 거라고 내 생각에는 동의해 준다. 어차피 두 아이들에게 보조금을 보내야 한다면, 그 돈으로 랜트 대신 집값을 갚아 나가게 하고 아이들이 독립하면 저네들이 집값을 넣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그렇게 오래 된 집 이야기는 하지도 못했다.

...

부동산에 회원등록을 하고 서둘러 메일을 보내 본다. 후다닥, 이것 저것 물어 보니 대답이 곧바로 온다. 1에이커가 도대체 몇 평방 미터냐, 이런 것에부터, 부동산과 대출관계 용어들을 잘 알지 못하니 우선은 우리집과 아이들 사정을 말하고 최저 기본금과 최저리 이율과 최장기 상환으로 집을 살 수 있는 방안을 물어 볼 수 밖에...아마, 한동안은 멜이 왓다 갔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조건이 여간 까다롭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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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생 / 0.31

 

 

아직 꿈을 꾸어 보는 일에 불과한데도 나는 갑자기 불이 난 사람처럼 마음이 바빠졌다. 단순히, 두 아이가 방값을 따로 내는 것이 매달 붓는 집값과 맞먹을 수 있다는 그 막연한 생각에서 시작해서, 그 하나에 모든 다른 조건들을 다 맞출 수 있을까?.당장, 금리가 오르면서 집값이 내릴 것도 생각해야지...아직, 볼티모어로 간다는 것조차 확정된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렇게 이틀 동안을 꼬박 정신없이 그 생각에 붙들려 있었을까? 열병처럼...어쨌거나, ,덕분에 부동산 공부는 좀 되었다. 아직 아무 것도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도 거의 가정법으로 현실을 탐사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아닌가.말이다. 단지, 내가 이런 상태라는 것을 그 상담해 준 부동산에서도 잊지 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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