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악몽

해선녀 2004. 4. 29. 08:46

  

 

외눈박이 도둑고양이가 몸을 웅크리고 어디론가 들어갔습니다. 도둑 고양이들이 우글거리는 어느 빈 집, 찌그러진 문. 문틈으로 동정을 살폈습니다. 아, 거기에는 모두 외눈 뿐인 고양이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살이 찐 검은 숫컷 고양이 한 마리가 그 강렿한 한쪽 눈에서 불을 내뿜으며 이 쪽으로 쳐다 봅니다. 이 쪽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아는 듯, 눈길을 멈추지 않습니다.


저 불길을 피해서 도망갈 것인가, 아니면, 그 불길 앞으로 걸어 들어가야 할까, 망서렸습니다.아아, 어느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구부린 등에서 진땀이 흐릅니다. 새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몇 마리였던지, 기억도 안납니다. 그래도, 보고 싶습니다.

 

밤마다 혼자서 돌아다니며 고깃조각을 탐한 죄값을 결국, 이렇게 받아야 하나요?. 어두운 골목을 헤매며 새끼들을 걷어 먹였습니다. 폐허의 가시철망에 찔려 한 눈을 잃었어요. 남들은 도둑 고양이인 줄도 몰랐었지요. 노오란 깃털이 제법 고운, 꽤 아름다운 암코양이였거든요. 

 

희뿌옇게 창문이 밝아 오는 새벽이 올 때까지 그 고양이 소굴을 기웃거리기만 했습니다. 슬쓸히 돌아가서 이제는 정말 혼자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아갈 것인지, 저 불길 앞으로 걸어 들어가 혼쭐이 난 후에 목숨만 살아남아서 저 고양이들과 함께 연명하며 살 것인지...


아아, 꿈을 깨니, 식은 땀이 흐르고 새벽이 오고 있었습니다. 무슨 이런 꿈을 다 꾸었는지, 내가 하나님처럼 골목을 따라 다니며 내려다 보고 있었던 그 외눈박이 도둑 고양이가 바로 나란 말인가?

 

요즘, 컴퓨터를 너무 많이 한 탓이 아닐까, 그리 생각해 봅니다. 한쪽 눈이 특히 심하게 아물거기거든요. 좀 삼가야겠어요. 그래도 나는 나처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이 동네가 좋습니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너무 답답하잖아요. 그런 무서운 숫코양이가 어디 있다고, 내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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