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다 그런 것이라며 이제는 다 벗어버린 시늉도 해보지만, 사실은 아직도 미련한 우울이라는 놈을 끌어안고 있을 때가 너무 많습니다. 천의무봉은 못되어도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는, 척하면 삼천리는 되어야지. 뻔히 알면서도 때로는 꼬불꼬불 골골이, 일부러 들여다 보며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하듯 오래 된 슬픔의 기억들을 이불처럼 끌어 당겨 뒤집어씁니다. 그래, 난 지금부터 우울이다. 어쩔 수 없이, 우울 중인 거야, 외치며 신 부르듯 통증을 부릅니다. 참으로 허무를 깨달았다면 통증같은 것도 없어야지 . 그러나 주체할 수 없는 통증이 꾸역꾸역 몰려듭니다. 허무는 아직 말 뿐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묘한 전율을 느끼겠는 것이, 이렇게 '우울기'로라도 내가 아직 한 덩어리 솜처럼 우울에 적셔져서 온몸에 그 울즙이 돌고 있을 때, 그 때, 진하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지요. 아, 이쯤 되면 병이지요. 정말이지, 이쯤 되면 자학증이지. 이 진득거리는 울즙을 좌악 쏟아내버리고, 레몬즙처럼 신 맛. 상큼한 맛, 뭐 좀 그런 맛 없겠니? 몸을 일으켜서 우울의 병실을 훌쩍,빠져 나가 봐. 푸르스름한 새벽이 밝아 올 때, 그 때에야, 아직도 곤한 잠에 빠진 다른 환자들의 코를 고는 소리가 어쩌면 네 단잠처럼 정답게 들릴 지도 몰라...그래, 그렇잖니? 삶은 어쨌거나 그렇게 정겨운 거라고. 저렇게 흔곤히 숨소리를 내며 살 수 있다는 것이 모두 어랜애처럼 아름다운 거라고...사랑에 다시 잠들지어다. 우울이여. 너는 이제 떠나라. 그러나, 영 아닙니다. 그래 보았자, 옆구리에서 일없이 비져 나오는 고슴도치 털 같은 우울의 촉수를 다시 세고 앉았는, 이 미련하고 답답한, 못말릴 내 몰골을 나는 또 다시 보고야 맙니다. 아무래도 내 삶은 그저, 때가 오면 저절로, 고운 움 돋아날 줄 알고 때가 되면 낙엽 질 줄도 아는 나무 같은, 유순한 사랑, 그런 삶은 못될 것 같습니다. 못말릴 이 병, 이 우울이라는 놈을 어째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