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우울 예찬

해선녀 2004. 3. 3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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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놈은 접시 물에 빠져서도 죽는다던가. 나는 질퍽거리는 바닥의 물에 넙죽 드러누워 보았다. 차 안의 내 이마만 앞으로 내달을 뿐, 내 몸뚱이는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골똘히,또 어떤 우울에 빠져 있었다.  여기가 어디 쯤일까? 방금 그 상상을 얼른 떨쳐내려고, 혼자서 소리내어 물었지만, 아마 누가 대답했어도 그 대답, 내 귀에 들어 오지도 않았을 것이디. 와이퍼가 천천히,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다가는 서고, 또 움직이고 한다. 앞이 말갛게 보이다가 뿌애졌다가,내 의식도 켜젔다, 꺼졌다 한다. 이대로 차가 어디에 갖다 쳐박힌다면? 다 끝내버려?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낭자한 내 피가 도로에 빗물과 함께 퍼져 나간다. 붉은 글라디오라스처럼 위로 솟던 붉은 분수같은 피의 영상이 겹친다. 그 붉은색만 보면 미치던, 고3때 도둑구경 가서 보았던 그  007 영화의 여인....  대학시절, 그래. 그 때도 그랬어... 그 택시기사의 피는 분명,. 그 비오는 날, 그의 그 노오란 모범 운전사 완장이 흥건히 흘러내리는 피 위에 나뒹굴었잖아...분명히..커다란 노란 꽃이 떨어지듯...아, 그건 틀림없어, 그 때, 내 모가지가 그렇게 뎅겅 짤려서 딩굴었던 거야...삼십년 전에, 목격했던 죽음의 현장. 그 피아노 학원의 바로 아래에서 총성이 울렸었지. 장작을 패대기는 듯한 소리였어. 그렇게, 그 모범기사는,택시값도 없이 탈영한 병사의 총에 뜻없이 죽어갔어. 변심한 애인을 찾아 무작정 나온 그 병사의 손에...아무런 이유없이. 그가, 내가, 그렇게 죽어갔던 거야...


그 생각을 .잊은 지 오래였었는데, 지금, 나는 왜 또 그 생각이 났을까? 잊은 게 아니야.의식의 저 밑바닥에 깔려 있었겠지. 와이퍼 밑으로 밀려 떨어지는 빗물처럼...나는, 내 의식은, 무자비하게 추락한다... 그러나 비는 또 내리고, 내리고...죽음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찾아 오는 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저 빗속을 걸어 나갈지 모른다. 우산도 없이, 그냥, 기다렸다는 듯이...바로 그 삼십 년전에, 그 때, 어느 소설가도 강연 중에 말했지. 운전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어느 순간이고 잡념을 놓지 않으므로.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에,  죽음 속으로 달려들어 갈 수 있다고.  나는 그 작가가 아직 살아 있는 것으로 안다. 아마, 누구나 그렇듯이, 아찔하게, 죽음의 소슬대문 앞에 수없이 섰다가도, 지금도 그냥,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우울하지 않은 사람 어디 있을까? 의식의 밑바닥은 늪처럼 어둡다.어쩌다 손전등으로 그 안을 비춰 보면, 흐린 물 속에 부유물과 함께 온갖 생명체들이 어두워진 눈으로 수초 사이를 골골이 떠돌고 있다. 많고 적고 간에, 그 중 어느 것이 어떤 계기로 수면 위로 몸을 드러낼 지는 아무도 모른다.눈부신 햇살에 갑자기 어디론가 그것이 튀어 나갈 지도...억지로 그 머리를 쳐서 집어 넣어봐도, "여보세요, 잠깐만요" 하고 길거리에서 옷깃을 붙드는 괴물 게임기처럼, 불시에 나를 엄습하는 것. 그것이 우울이라는 놈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 놈을 자주 만나는 사람을, 간단히, '우울증' 환자라고. 어느 순간에, 어디선가 몰려 온 그 '우울증'에 덜미를 잡혀서 누군가가 죽었다면 그것은 사고일까, 자살일까? 사람들은 조목 조목, 우울의 양을 자기 바구니로 건져 올려 자기 저울에 달아서 그 질량을 증명해 보일 것이다.내가 어떤 일로 죽어도, 우울증 '때문에' 그리 되었다고 판정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말했다. 강가에서 강을 바라보면서 살면 우울증에 걸린다. 산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한다. 그럴까, 참, 세상 사는 원리는 간단하다. 그런 법칙들이 있었네. 강을 가까이 하고 살면 우울하다. 왜냐, 생각을 많이 하니까, 삶에 대해서, 삶에 코쳐박고 아무 생각없이 사는 대신에, 이것 저것, 무엇인가를 곰곰이 들여다 보고 생각하니까...그런데, 산 가까이는? 산에는 생명들이 눈에 보여서?  어쨌거나, 나는 이런 말들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잘못된 논리이다.  하기야, 생각하지 않으면 우울할 수가 있겠는가마는, 그렇다고 해서 생각하면 다 우울하다는 그런 논리가 어디 있는가. 그건 마치, 어떤 병을 앓는 환자이건 간에, 끝에는 심장이 멎어서 죽는다고 해서 그의 죽음의 원인을 심장마비라고만 하는 경우와도 같다.그건 생물학적인 진단이고, 우울증이 자살이라는 행위의 원인일 수 없다. 그 사람이 자살로 삶을 마감할 결단을 내린 그 생각 자체가 문제일 뿐이다.

 

그 말은, 우리의 모든 생각들은 다 물리화학적인 신체기능의 작동의 결과라는 소리에 가깝다. 실제로 많은 정신심리적 증상들이 화학적인 약물치료범으로 조절되는 것을 본다.  화학반응의 고리 속에서 조정되는 물상들이다. 어둡고 무거운 생각들 대신에 밝고 건전한 생각을 하도록 약물로 조절되기도 한다 램프의 조도를 조절하듯이. 아주 적당한 양의 빛과 어둠을 우리들 마음에 조사하면 우리는 생각의 수렁에 빠지지도 않고 경망한 오류를 저지르지도 않고...삶의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간다. 그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밝고 어두움만으로 우리들의 생각이, 성격이, 인격이 판가름되는 국면이다...

 

그러나, 우울증은 '우울한 생각'과 별도로 있는 몸의 증세만이 아니다. 그러므로, 화학치료는 상담치료와 병행되어야지, 그것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는 없다, 그것은 마치, 인터넷 중독이 인터넷 작업의 내용과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인터넷을 한다는 것은 그것으로 그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이다.그런데도, 많은 경우에 우리는 인터넷 중독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인터넷 작업이 증세화되는 것을 본다. 일중독도 아니고 공부 중독도 아니고 돈벌이 중독도 아니고 게임 중독도 아닌, 인터넷 중독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대개는 인터넷 게임 중독을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만, 인터넷으로 무엇을 하는가와는 상관없이...

 

자살에 대한 생각은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생각이 마침내 이른 결과일 뿐이다. 한 순간에 운전대를 돌리듯 마음을 돌려 가지게 된 그 겨자씨만한 생각, 우울증, .그것은 자살의 원인이라기보다 자살의 이유이자,  존재이유의 연장선이다.  '인터넷 중독'도 마찬가지, 그것은 어떤 마음의 상태가 그리로 이끈 결과인 것이다. 존재와 행위는 인과관계로 관찰되기 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유에서 이유로 이해되고 해석되는 통찰의 대상이다. 적어도 우울을 그 사람의 마음의 내용, 존재이유와는 무관한 병증으로만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무엇이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식의, 소위 '적당주의',  어중떼기 중용론이거나, 잘 해야, 병의 원인은 제쳐 두고증세만 돌보는 대증요법일 뿐이다. 우울증을 이유막론하고 신체적인 원인으로 취급하면서도말이다.

 

우리는, 강가에서, 또는 산에서, 또는 집안에 쳐박혀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움트는 가지들을 보며, 인터넷을 하며, 삶에 대한 생각을 통해서 존재이유를 확인하는 일을 그칠 수가 없다. 내가 의식하고 못하고 간에, 나는 그 결과가 우울일 수도 더한 삶의 욕구일 수도, 또는 멍청한 상상일 수도 있는일을 계속하고 잇는 것이다.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라지만, 약동만 하다가는 우리는 곧장 지쳐 나가 떨어진다. 분수처럼, 올라가다가는 다시 밑으로 떨어지는, 조와 울을 반복하는 것이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존재의 본질이자 실상이 아니겠는가? 삶이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생각에 잠기면, 온갖 많은 아름다운 생각은 사라지고, 우울이라는 놈만 유독히  찾아온다는 건 거짓말이다. 삶이 너무 절박해서 더욱 열심히 사는 놈도 있고, 삶이 너무 편안해서 우울한 놈도 있다...

 

우울은 그냥 단순한 어둠이 아니다. 이불 속에서 슬픔 속을 둟고 들여다 보고 견져내려는  것은 결국, 더 깊은 곳에 있는 생의 이유이다. 어둠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다시 균형을 이루며 나를 받쳐 줄, 반대편에서 대기중인 빛을 의식한, 그래서 그것을 향해 나가기 위한, 울창한 생각들이 살고 있는 숲의 한 모퉁이이다. 그런 숲그늘이 잇는 모퉁이도 없이 늘 햇살이 밝고 곧기만 한 길은 우리의 영혼을 쉬지도 못하게 한다.  그 모퉁이를 에돌아가든, 혹은  덤불을 뚫고 나가든, 길을 영영 찾지 못하고 내가 노중에 주저않는가, 넘어서는가, 그것이 문제일 뿐이다. 그러니, 나에게 언제고 밝고 화창한 봄날 같은 생각만 하라고 요구하지 말라. 우울은 내가 사랑하는 두 친구중의 한 놈이다. 나는 지금 충분히, 우울을 즐기고 싶은 중이다. 싸우나를 하듯, 숨을 곳도 없는 판판한 대로를 좀 비켜나서  우울의 우산 밑으로 들어간다. 내가 너무 오래 주저앉아 있거든, 그 때, 나를 불러다오. 내 다른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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