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열 그루 반의 나무가 있는

해선녀 2004. 2. 1. 02:42



Ten and a Half TreesPeterhof, Russia, 2000
 
그림을 보면서 종종 그 그림 속 어딘가로 숨어 들곤 하지요.
주로, 한 쪽 귀퉁이, 자그마한 존재로. 저 사진. 뚝방 위의 
열 그루 반의 나무 아래 그대도 숨어 계시는가요? 
 
나도 그 옆에 숨어서 나무처럼 서 있기도 하고
구름처럼 흘러가기도 하고 그 뿌리께를 붙들고 누워
꿈을 꿉니다. 어김없이,어릴 적 저 뚝방 아랫 동네
그 집 안방에서 나와 툇마루에 다리를 걸치고 앉았다가
감나무 아래 그네에 앉아 흔들다가 그 마당 한 모퉁이의 
평상 위에 벌러덩 눕습니다.
 
저 뚝방 위의 구름이 마당으로 쏟아져 내려와
홍수로 넘쳐흐른 적도 있었지요. 안방에까지 물이 차 올라
언덕 위의 학교로 피신했어요....아, 그 때,
저 뚝방 너머를 질주하던 성난 황톳물에는 사람도 지붕도 
소도 돼지도 떠내려 가고 있었어요.
떠내려 가는 사람을 따라 저렇게 줄 서 있는
 나무들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뛰어 갔었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던가...
 
그 흐려진 기억처럼 저 구름도 노도처럼 범람하던 
기억 다 잊고 다시 감나무 가지 사이로 흐르네요.
  
반짝이는 나뭇잎들이 그 어두운 구름의 읆조림에
작은 음표들로 장식음을 냅니다.
예. 그렇게 나는 또 저 뚝방 아래 그 집에서 
잠들어야겠어요.
  
지금은 새벽 네 시. 그렇지요. 내게 삶은 
아직은 더 오래 세어 가면서 걷고 싶은 
저 열 그루 반의 나무가 있는,
그 뚝방 아랫동네의 꿈 같은 아름다운 여운입니다...
 
 
 
 
                    03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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