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숲길로 가다

해선녀 2004. 1. 26. 15:38

 

단추알 같은 단어 몇 개로라도 
우리는 자꾸만 옆구리가 터져 나가는 
영혼의 솔기들을 여미고 싶었어.
새보다도 작은 눈을 가진 
난분하던 언설들은 스스로 지쳐
낙엽처럼 길바닥에 떨어져 내리고
호숫가 벤치에 앉았지.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는 아파트 불빛들이 
수면 속에서 깊은 하늘 속 별들처럼 너울거렸지.
저 길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길이 가긴 어디로 가
누군가가 가면 그게 길이지
길은 언제나, 지금, 여기. 
내 안에 있지.
억새처럼 부스스한 소리라도 
자꾸 주고받다 보면
깨달음같은 것이 오기도 할까?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실어증에 걸린 낙엽들이 융단처럼 가라앉은 
숲길로 들어간다.
나도 언젠가는 잎들을 벗어내린 나무들처럼
실어증이라거니, 마음을 비우겠다거니
그런 말들조차 그만 두게 되겠지. 
스스로 길을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하지 않는 
어느 유유한 빈터에서 
느리게 느리게 심호흡을 한다.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어.
엄마 품에 안긴 아기가 젖을 빨며 
엄마 얼굴을 응시하듯 
우리도 높다란 가을 숲에 안겨
저물어 가는 하늘에 빈 손을 흔들고 선
나무가지들을 오래오래 올려다 보았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를
겨울이 오고 있는 소리였을까?
깊어져 가는 숲의 숨소리만 웅웅
우리들의 심장에 전해지고 있었어. 
 
 
0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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