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네 집

"Phobia-phobia (?)" / 다나에비 페북에서

해선녀 2017. 6. 3. 20:47

"Phobia-phobia (?)"


이미지: 줄무늬



포비아가 참 많기도 하다. 인종으로, 국적으로, 성별로, 성적 지향으로, 나이로, 직업으로, ...... 갖가지 기준으로 사람을 나누고 또 나눠 나랑 다른 특정 집단을 싫어하는 사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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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능적으로 다름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을 갖고 있으니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본능적 불안요소를 이성으로 이겨내고 함께 존중하며 살아갈 관용 없이는 사회의 존속이 어렵다.

...

한국사회에서도 위에 열거한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차별과 증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인권을 수호하고자, 문제점을 지적하고 공론화 시킴으로써 포비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커가는 걸 볼 때면 흐뭇하다.

그런데 동시에 포비아에 대한 포비아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포비아-포비아"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또 다른 갈등을 양산하고 싸움을 키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를 들면, 동성애 관련 기사 댓글에 대략 반 대 반으로 나뉘어 누가 더 악의적이랄 것도 없이 서로를 물고 뜯는다. 포비아들만 증오심을 가진 게 아니라, 포비아를 비판하여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결국엔 포비아가 되는 역설이 존재한다.


포비아를 비난하고 미워만 할 게 아니라, 치열하게 토론하고 설득하되 궁극에는 포용까지 할 수 있는 phil-phobia (?)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게 참 말처럼 쉽지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사실 phil-phobia라는 말을 만들어 놓고 보니 말 자체도 쉽지가 않다. 발음하려니 아랫입술이 너무 바빠진다).


인간은 본디 편 가르기를 좋아한다. 아니, 좋아한다기 보다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다. 인간이 외부자극을 통해 자연을 인지하고 개념화하는 학습의 과정 대부분이 편 가르기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편 가르기란,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외부자극의 구체적 연속성을 추상적 범주로 나누는 정신 활동을 뜻한다.


말소리 인지의 예를 들면, 일본어나 한국어 성인 화자들은 영어를 처음 배울 때 [l][r] 소리를 구분하는 데에 애를 먹는 culture-bound listener. 쉽게 말해, 모국어에서는 그 두 소리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구분하는 언어를 접할 때 새로운 학습의 장이 열리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우리 모두 갓 태어났을 때는 언어마다 존재하는 미세한 음성적 특질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차이를 인지할 수 있는 universal hearer였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증거는 차고 넘친다). 모든 소리에 열려 있던 우리의 귀는 애석하게도 (?) 첫 돌이 채 되기 전에 닫혀 버린다. 엄마의 목소리를 통해 익숙해진 범주 밖의 소리들은 맘마를 먹거나 기저귀를 제때 가는 데에 별 필요가 없음을 곧 눈치채기 때문이다. , 생존을 위해 도움이 되는 외부자극에 맞게 특화된 범주화를 하고 그렇지 않은 자극은 물리적으로 실재함에도 불구하고, 무시해 버리거나 심지어 우리의 뇌가 그것을 인지조차 못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외부의 소리를 들으며 진행 된다는 증거가 수두룩하다. 그만큼 본능적이고 자동적인, 유전자 안에 이미 프로그램 된 학습장치라는 뜻이다. 비단 언어뿐 아니라 인간의 전반적인 인지 체계는 범주화를 통해 외부자극을 이해하고 기억 속에 표상으로 저장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게 바로 "학습"이다. 연속성을 가진 외부자극의 미세한 차이에 관한 정보를 싸그리 기억 속에 저장하기에는 인간 뇌의 메모리가 부족하다. 비슷한 속성을 가진 개체들을 한 범주로 묶어 표상하고, 오래 되거나 필요가 없는 정보를 무시/망각함으로써 새로운 학습정보의 저장이 가능해진다.


물리학은 잘 모르지만 빛의 스펙트럼 상에서 색상을 인지하는 방법도 그렇다(고 하더라). 무지개 안에 색이 몇 개냐 물으면 현대 한국인은 7, 옛날 사람들은 5, 일부 미국인들은 6, 시대에 따라, 문화권에 따라, 보는 눈에 따라 가지각색의 답이 나온다. 그러니 색깔이라는 것의 전형은 오로지 개인의 머릿속에만 존재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아는 빨강과 네가 아는 빨강이 다를 수도 있다. 물리적 세계에서는 빨강과 좀 더/덜 빨간 "빨강±1"의 차이를 무시한 채 강제로 동일 범주 안에 넣거나, 반대로 빨강과 다홍을 굳이 구분하는 일이 인간사회의 규범적 구분만큼 항상 큰 의미를 갖지는 않을지 모른다.


우리 주변에서 새로 만난 사람이 빨갱... 아니 빨강이든 다홍이든 보라든, 생전 접해본 적 없는 듣보잡 유형의 사람이든, 일단 마음속에서 경계를 긋는 그 경계심을 경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