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네 집

날아라, 병아리 / 다나애비 페북에서

해선녀 2015. 11. 11. 17:54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는 날, 잠자리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가 갑자기 이불킥을하고 일어났다. 며칠간 볼까 말까 고민했던 이 방송을 다 찾아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1년이 넘은 지금도 사실을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허망하게 그가 떠났던 탓에 "신해철 추모특집"이라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또한, "나는 가수다" 이후로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유행처럼 생산해낸 리메이크의 정형화된 패턴이 원곡의 감동을 가져다 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탓에 그동안 보지 않고 미뤄두던 터였다. 신해철은 흔히 말하는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가 아니었다. 성량이나 기교로 승부하는 요즘 잘 나가는 가수들의 목소리에다가 신선한 편곡을 입히는 것도 "불후의 명곡"에 대한 재해석이겠지만, 방송에 나온 곡들이 나에게는 예상대로 원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그 심쿵, 아니 "심펑"하고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그 마음을 되살려주지는 못했다.

     

    이 곡은 눈에 띄었다. 음악적...으로 얼마나 잘 만든 리메이크인지는 예술적 식견이 짧아 평가하지 않겠으나, 하동균이 부른 "날아라 병아리"는 1994년 까까머리 중학교 2학년생 김정윤의 마음을 되살려 주었다.

     

    그당시 나는 심장 속이 열정으로 터질 듯 한데 그것을 꺼내 보여줄 곳도, 보여줄 사람도 없었다. 아니, 보여주면 안 되는 것이라는 멍청한 생각을 할 정도로 외부로부터의 억압을 받았고, 내 자신도 "진짜 나"를 억압하며 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부분의 내 또래 한국 학생들이 그랬듯이, 지금의 학생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듯이, 그저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생활은 내가 가진 그 열정을 내 꿈과 미래에 쏟아부을 수 있는 환경을 전혀 제공해주지 못했다.

     

    신해철을 비롯한 몇몇 대중음악인들 (그리고 야구)은 그런 나에게 그야말로 영웅이었다. 내 속의 나를 밖으로 꺼내 그나마 숨이라도 쉴 수 있게 해줬다. 그해 봄, 오랜 공백을 깨고 출시된 넥스트의 두 번째 앨범의 많은 곡들은 큰 희망과 감동을 줬고 나는 중2병에 걸려 많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심장을 폭발시키면서 내 속의 나를 끄집어내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노래방이었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신해철의 노래를 노래하고 곱씹고 토론했다.

     

    딱히 이 노래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무겁거나 폭발적이거나 실험적 아이디어와 사운드로 무장한 넥스트라는 팀 컬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심지어는 동요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 곡이 왜 그 앨범에 들어있는지도 신해철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해했다 (그 앨범부터 신해철은 유독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담기 시작했다). 어느날 난생 처음으로 가족들과 가게된 노래방에서 차마 평소 즐겨부르던 "쎈" 곡들을 부를 용기가 없었던 (특히 아버지 앞에서) 나는 고심 끝에 이 곡을 골라 "얌전히" 불렀다. 동요처럼. 아버지는 이 곡이 무척 마음에 드셨는지, 아니면 그냥 (겉으로는 전혀 표현 안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이 좋아하는 (실은 안 좋아하는데) 노래라서 그랬던 건지, 넥스트의 2집 앨범을 나에게서 빌려가셔서 차 안에서 듣곤 하셨다. 여담인데, 1번 트랙을 듣자마자 아버지는 깜놀하시고 이게 대체 뭔가 하셨단다. ㅋㅋㅋㅋ 그 후로는 5번 트랙의 날병만 계속 들으셨단다. 나는 혹시 아빠가 다른 곡들의 매력도 느끼시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해봤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신해철의 음악과는 달리) 넥스트의 음악은 확실히 "쎄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얼마전까지도 가끔 그날의 이야기를 하셨다. 대화가 희박했던 아버지와 나의 마음의 거리는 언제나 멀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나는 열정 보다는 수줍음, 노래방 보다는 학교와 학원이 잘 어울리는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이 노래를 들으며 내 속의 나는 제법 많이 컸음을 새삼 느낀다. 그때의 여드름 소년이 하던 생각과는 다른 여러 복잡미묘한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기도 한다. 며칠전이 아버지의 기일이어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만약 아직 곁에 계셨더라면 지금쯤이면 제법 대화가 통하는 부자지간이 되어 술잔을 나눌 수도 있었을텐데... 만약 신해철이 죽지 않았다면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까지 "내 마음 깊은 곳"에 남을 음악과 노랫말을 남겨 또다른 방법으로 "아버지와 나"를 소통하게 해줬을텐데... (팝업 퀴즈: 이 문장중 제가 따옴표를 쳐놓은 부분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쓰다보니 글은 길어지고 요점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두서 없는 글이 되어 버렸다. 아무래도 내일 밤에는 이 글을 생각하다가 또 이불킥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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