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2015년 추석의 메모 아닌 메모

해선녀 2015. 9. 28. 09:18

 

 

동생들이 온다는데, 추석이라고, 혼자 있는 이 누나를 위해 용인까지 온다는데, 장이라도 보려고, 서울 갈 때, 장가방까지 챙겨 가 놓고, 이틀을 빈손으로 들어 왔다. 그제는, 불어시간에 만난, 피아노 공부하러 프랑스로 가겠다는 젊은 全盲 친구와, 어제는, 임신 막달의 바이얼린샘과 차 마시느라고, 장볼 시간을 놓쳤다. 청소나 좀 해 두고, 이마트 주문이나 하지, 그러다, 그것도, 다 그만 두고, 전화를 했다. 늬들, 형제들이 같이 만나는 게 더 중요하지, 내가 무슨 큰 어른이라고, 날 뵈오러 따로 따로 여기까지 오냐? 추석은 각자 처가로 가서 잘 쇠고, 시월에, 함께 산소에 갈 때나 나도 꼭 낑가 도고.  

 

냉장고엔 먹거리가 아직, 많이 남았다. 이 참에, 몇 가지씩, 그냥 삶아서만 먹기를 해 볼까? 밑반찬도 있고, 생야채도, 과일도 있으니, 연휴 나흘즘, 요리는 안 하고도 지날 것같다. 하긴, 미국사람들은 계란 하나 삶는 것도 쿡이라 하고, 어릴 적, 외할아버지가 생식하시는 것도 보았다. 어젠, 감자와 당근을 삶고 고등어 자반을 쪄서 먹었다. 오늘은, 양배추를 삶고, 그 물에 오징어도 데쳐서 초고추장에 함께 찍어 먹어 볼까나. 기름에 지지고 볶지 않아도, 씹을수록, 온입안을 감도는 달싹하고 담백한 이 자연의 맛이라니. 집에도 안 가고, 울양반 차례상도 안 차리고, 송편 하나 없는 이 추석에.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고 있는데, 아이들이 안부전화를 해 온다. 시사촌들이 와서 북적거릴 시이모님께 전화 드리니, 혼자 어쩌고 있느냐고, 안타까워 하신다. 그런가? 내가 지금, 도리도 안 하면서, 외로운 건가? 갈수록, 느리고 비워지고 단순해져 가는 삶이 나는 좋다. 40년을 가족과 시댁 챙기는 일로 종종거리다가, 그가 좋아하던 김광석의 노래처럼, 네가 떠나간 것도,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니게, 그래서, 그냥, 남겨지기만 한 것만도 결코 아니게,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나를 건져 올려 놓은, 지금, 여기. 혼자 오롯이, 남은 나를 내가 이렇게 잘 돌보고 있는데? 하기야, 저녁엔, 맑디 맑게 떠오를 보름달, 고맙게 쳐다 보면서도, 먼저 간 그 사람과 멀리 있는 아이들을  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리고는, 언젠가, 아들손주며느리 다 모여, 차례도 지낼 생각도 해 볼 것이다...

 

여기까지 써서 올렸는데, 지금 보니, 이 글이 임시보관함에 그대로 있다. 처음엔, 물론, 비공개로  쓰기 시작했다가, 나중에, 분명히, '공개'로 클릭을 했던 것인데, 카테고리를 바꾸는 것까지는 잊어 버린 모양이다. 또 무슨 짓을 하느라고, 맨날 하던 짓을 잊었을까? 순간마다 스치는 치매의 두려움. 고령이신 어머니가 '이거 하다가 저거 하지 말자.'라는 메모를 책상 위에 써 두고 계시더라는 지니님의 글을 보며, '나는 일부러라도 그러는 걸 즐기는데?'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지만, 이렇게, 허다해진, 의도하지 않은 실수들을 어디까지 즐길 수 있을까? 가스불 켜놓고 잊어 버리고 딴짓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그 어머니의 메모도 그런 두려움이셨으리라.

 

아무튼, 그것이 지금 현재의 '나'이다. 건망증, 기억력은 물론이고, 나는 과거 좀더 똘똘했던 내가 이제 더 이상 아니다. 눈도 눈이지만, 생각과 논리가, 현실적인 감각과 감성이 자꾸 어둔해져 가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현재의 나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더 깜깜해질 나인 것을. 어제, 언니와의 통화에서도, 나는 많이 깜깜해진 언니의 머릿속까지 함께 더듬으면서, 나의 가까운 미래를 보았다. 지하철을 타고 갈 때, 내가 타고 있는 그 칸으로만 내가 가고 있는 게 아니고, 앞칸이 지나간 곳을 내가 가고, 동시에, 내가 지나온 곳을 뒷칸에게 내주며 모두 함께 가고 있음인 것을. 그래 봤자, 고작, 10량의 차가 다 지나는 시간은 눈깜짝할 사이인 것을. 

 

처음엔, 추석날인데, 시 몇 줄 적어 볼까하고 시작했던 메모가 추석 다음 날, 메모도 아닌 메모로 이렇게 끝날 모양이지만, 이거라도 아직 끄적거릴 수 있으니, 이 또한 아니 좋은가? 딴 이야기로 가버렸지만, 제목을 좀 바꾸어서 그냥 올린다. 노인과 아이들의 변덕과 자유함은 자신과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한,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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