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살이가 벌써, 7개월이 넘었다. 지난 여름방학에 다나네가 와 있던 두 달을 제외하고는 용인 안에서는 나가 다닐 일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원래 생각했던대로 여기서 유유자적하지도 못하고, 일주일에 3일 이상을 서울로 들락거리며 지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막막하기만 하던 서울행 대중교통만큼은 올 적 갈 적, 다른 장소에서 다른 마을버스와 지하철역을 이용하고 다니는데도, 몸이 거의 자동으로 찾아갈 정도가 되었다. 한 일년은 더 그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요즘의 내 시력은 급전직하로 떨어져 가고 있어서,이제 곧 대중교통은 포기해야 할 것도 같다. 아, 정말, 스마트차가 얼른 내게 생기면 좋겠네. ㅎ 암튼, 년초에 태오네 다녀 오기까지는 겨울칩거나 좀 즐길 일이다. 넓고 쾌적한 단지내를 산책이나 하고, 집에서 마냥, 편안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요즘, 괜히, 모든 것이 심드렁해져서, 한 달 여를 블로그에 글도 안 썼지만, 컴 앞에는 매일 앉아서 인터넷 써핑을 하다 보니, 아파트 입주자들의 온라인 까페에도 자주 가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가 들여다 볼수록, 자꾸 끌리는 것이, 우선, 산책을 해도, 단지내를 오가는 사람들을 잘 만날 수도 없는데, 하자보수니, 아이들 교육문제니, 주부들의 문화생활이니, 거기 가면 소복이 모여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 젊고 활기에 가득 차 있다. 한동안은, 동주민들과 엇박자를 일으키는 우리 2단지 동대표들 문제로 까페가 온통 부글부글 끓더니, 그들이 모두 사퇴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고 난 요즘은, 커뮤니티의 다양한 시설들을 함께 즐기면서, 1, 2 단지를 하나로 통합된 아름다운 마을공동체로 일구어 나가기 위해 모두 기를 모우고 있다. 물론, 수천 세대의 주민들이 다 그 아름다운 배려와 나눔의 문화를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아서, 아직 문제는 많아 보이지만, 모두 새 아파트가 성숙한 공동체 문화로 안정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거쳐야 할 자연스러운 현상들로 보인다. 많은 시행착오와 불협화음과 그에 따른 불편들은 주민들이 다 함께 감당하고 대처해 나가야 할 몫이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도 많다. 애완견의 목줄을 묶지 않은 채로, 변봉지도 없이 산책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의 무신경함, 조금만 더 찾아 보면 충분히 자리가 있는데도 남의 차 앞에 주차해 놓은 큰차, 경비원들에게만 맡기기엔 너무 많은 눈, 내 집앞은 내가 치운다는 이야기도 있다. 며칠 전에는, 사우나에서 떠들고 노는 아이들을 좋은 말로 타이르는 대신, 소리를 냅다 지르는 어떤 어른이 너무 섭섭하더라는 어느 부모의 글도 있었다. 입장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서로 다른 댓글들이 쏟아진다. 전부터, 골프장이나 사우나에서 너무 오래 자리를 잡아 놓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도 읽어 온 터라, 이 어두운 눈으로 내가 거기 끼어 무얼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어서, 나는 아직, 커뮤니티 센터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언젠가, 수영이나 골프연습은 여기서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요즘은, 층간소음 문제가 한참 거론되고 있다. 우리집은 이웃에 아무도 없는가 싶을 정도로, 너무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한데, 특히, 우리 동의 층간소음이 제일 심하다니 좀 의아스럽긴 하다. 아이들 뛰어 다니는 소리, 어른들 발꿈치로 걸으며 쿵쿵거리는 소리, 한밤중에 세탁기나 청소기 돌리는 소리까지 심하게 들리는 집이 있단다. 같은 라인도 아닌 집에서 나는 소리가 울려서 들리기도 한단다. 사실은, 나도 그 동안, 내 서툰 악기소리가 다른 집에 피해를 줄까 걱정되어서, 여름에도 될수록 창문으 닫고, 밤 아홉시 이후에는 소리를 안 내려 해왔지만, 그래도, 누군가, 힘들어 하지 않을까, 좀 조마스럽긴 하다.
그런데, 아주 어이가 없는 일도 있었다. 얼마 전, 어떤 아이가 지하 주차장에서 소변을 '내갈기며', '엄마, 나 잘 했지?', 이러더라는 거다. 너무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한다. 그 가족들이 설마, 여기 입주민이었을까? 최근에 반짝반짝하게 새로 코팅까지 해놓은 주차장 바닥에다 그런 짓을 하다니, 혹시, 그 가족은 그 때 막, 아파트의 입주민과 어떤 일로 말다툼을 하고 나온 외부인이었을까? 그 마음 상한 부모로부터 감정이입이 된 아이가 부모의 분노를 대리표출해 주었던 것? 그것으로, 그 부모에게 위로가 되었다고 그 아이는 생각했겠지? 만약, 정말, 그런 일이었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다.
살아 가면서 시나브로 처하게 되는 갈등의 현장에서, 냉정한 판단과 절제된 행동보다는 감성적인 반응과 표현에 더 익숙한 사람들 중에는, 인정이 많고 미적 감수성이 풍부한 멋진 사람들도 많지만, 자신의 감정에만 너무 치우친 나머지,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너무도 뻔한 상식과 공중도덕마저 순식간에 내던져 버리는 과격한 사람들도 있다. 그 아버지는 그래도, '얘, 좀 혼내 주세요' 라는 말이라도 하면서 짐짓, 미안함을 표하기도 했지만, 그 엄마는 (아마, 입을 옹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하더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 엄마는, 아이의 인성보다도, 그런 옳지 못한 행동으로라도 그 아이의 위로를 받는 것이 더 중요했을까? 그런 식으로, 아이는 점점 그 부모의 인지양식과 감성을 닮아 가고, 문화적 유전은 그렇게 이어져 가겠거니...상상이 끝이 없다.
CCTV로 차번호를 확인해서 추적하면, 어떤 연유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이 요즘 인구에 회자되지만, 우리는 과연, 상대방의 이야기에 얼마나 찬찬히 귀를 기울이고, 모든 일을 끝까지 대화로 풀어갈 수 있을까? 정작, 문제는 거기서부터이다. 공자는, '배가 불러야 예를 안다'고 했지만, 그 말을 좀 뒤집어 보면, 인간은 등 좀 따시고 배부르고 나면, 온갖 사회적 분쟁과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동물이라는 소리도 되지 않을까? ㅎ 예의와 염치라는 게, 생존의 단계를 넘어, 사회적 갈등을 잘 조정해 나가야 하는 단계에서 필요해지는 것이니까. 아무튼, 진짜로 사람답게 잘 산다는 것, 곧, 웰빙(well-being)은 동물적 생존의 단계를 넘어선 상태라야 할 것은 분명하다.
아파트는 온갖 수준의 욕구와 필요를 가진 인간들의 삶의 집합체이다. 정도문제이겠지만, 그 안에서, 오로지, 저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동물적 수준의 웰빙에만 집중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준공후 입주 2년이 넘는 동안, 수많은 문제들을 처리해 왔고 지금도 열심히 처리하고 있는 입대위에서는 요즘, 이 아파트를 용인 최초의 금연 아파트로 지정받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그런 희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복도나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들은 적어도, 그 문제에 관한 한, 자기 자신의 욕구에만 충실한 사람이다. 남을 배려하고 도우면서 더 좋은 세상을 함께 만들자는, 더 큰 웰빙에 대한 관심이 그에게도 왜 없겠는가마는, 어떤 연유로든, 지금, 그 부분에서만은 미처, 그런 관심을 못쓰고 있는 그 사람. 인간은 참 완벽치 못하다. 아니, 완벽치 못하니까, 인간이기는 하지. ㅎ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성숙한 문화는 입주민 간의 관계로만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외부인들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연장된다. '명품 아파트'는, 잘 지어지고 값비싼 아파트의 외양보다도, 그 안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의해 그 진짜 의미가 드러나는 것. '개발에 다가리'라는 말도 있지만, 설사, 대리석 궁전이면 뭐 하겠는가? 말하자면, 그런 생각에서였으리라, 여기 사는 사람이 명품이어서 명품인 그런 아파트를 만들어 가자는 글도 있었다.
저녁에 택시를 타고 들어 올 때면, 기사님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주차장 안에까지 들어와서 내려 주는 걸 꺼리는 기사님들이 가끔 있어서, 좀 눈치가 보일 때가 있는데, 어떤 기사님은, 이 아파트의 주차장은 출구표시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실제로 그런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콜'을 받으면 거부하기도 한다는 말까지 한다. 지나친 써비스를 요구한다는 반감의 기운이 퉁명스러운 그 말투에서 감지된다. '죄송하지만, 여긴 단지가 너무 크기도 하지만, 제가 눈이 몹시 나빠서, 밤에는 가까운 거리도 걷기가 좀 불편하거든요...', 이해를 구하면, 금새, 다시 친절해지기도 한다. 앞으로, 지상으로는 차가 못들어 가는 아파트가 더 일반화되기까지는 이런 구차한 부탁을 좀더 오래 해야 할 것 같다. 한국의 모든 아파트 단지가 옛날, 동네골목에서처럼, 차 없는 단지 안을 어른들은 유유히 산책하고, 아이들은 마음놓고 뛰어 놀 수 있는 그런 여유로운 공간으로 회복될 날이 올까? 세월이 가서, 지금 있는 아파트들을 모두 재개발하는 날이 온다면 모를까... 앞으로, 그 많은 고층아파트들이 다 슬럼화되는 건 아닐지? 그 건축폐기물들은 다 어떻게 처리하지? 나는 종종, 이런 걱정까지 한다. 재개발도, 저 강남의 아파트들처럼, 경제효과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ㅎ
이야기가 옆길로 샜다. 주민들이 CCTV를 확인한다는 것은, 어떤 나쁜 행위를 비난하고 고발하는 것 이전에, 그들과 좋은 대화를 나누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외부인들이 이 아파트 주민들에 대해, 조금 더 '좋은' 아파트에 산다고, 그래 봤자, 서울 변두리 전세값밖에 안되는 걸 가지고, 잘난체하며 갑질을 하려 드는 사람들이라는 반감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그 사람들의 탓으로만 치부하고 말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공공의 장소를 자기집 안방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에게 너무 큰 소리로 야단을 치고 무안을 주는 것 역시, 무례한 일이다. 아직 어린 아이들까지 상처를 받게 한다면, 그래서, 그 아이들이 그렇게 비뚤어진 방법으로 카탈시스를 하는 것이 습관화되고 합리화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그 날, 주차장에서 그 아이가 왜 그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한 학급에서 공부하고 함께 뛰노는 차세대들의 마음 밑바닥에 더 이상, 어른세대의 갑질과 그에 대한 반감의 감성관계 프레임이 깔려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은 이미, 너무나 오래, 억압과 분노의 어두운 관계가 대를 이어 내려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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