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세상에 내던져져 널브러진 것들을 내 눈의 안경대로 추려 내어 가지고 노는 일이다. 방 한가득 마구 쏟아진 블럭들 속에 앉아, 지금 만들고 싶은 집과 자동차와 꽃을 만들기 위해 이것 저것 골라 내어 꿰어 맞춰 놓고, 빈 곳은 상상으로 메우고 튀어 나온 곳은 용서하며 즐기는 어린아이처럼, 없는 것은 있다 치고, 있는 것은 없다 치며 내가 그려내는 세상을 누리는 일이다. 누가 그 집은 너무 작고, 그 차는 너무 더디고, 그 꽃은 색깔이 너무 어둡다고 말하겠는가? 작은 것이 아름답고, 느려서 평화롭고, 어둠 속에서 세상의 모든 빛을 다 보고 있다는 데야.
산다는 건, 또한, 삶의 비의를 다 알아 차리고, 영혼의 진수를 다 꿰뚫었다는 듯, 우쭐대다가도, 엄마가 부르면 갖고 놀던 장난감 그 자리에 다 내려 놓고 달려 가는 아이처럼, 나도 어느 날, 홀연히 털고 일어나 떠나갈 것을 내다 보며 가는 일이다. 그리고, 나도, 이 세상에 내던져져 널브러진 블럭 한 조각일 뿐임을 애틋하면서도 대견하게 바라 보면서 가는 일이다. 그래서, 삶은 곧 사랑함이다.
순간마다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보고 듣고 하는 짓들은 다 예술이 아닌 게 없다. 되는대로인 것 같은 짓거리들도 다 그 속에 천고의 리듬과 멜로디가 들어 있다. 일부러, 애써 무엇을 만들고 있지 않아도, 살아 있어 내쉬는 숨소리에조차도 다 위대한 자연의 예술이 들어 있음을 알아 차린다. 부모의 귀는 아이의 방귀소리도 예술이고, 할머니의 눈에는 손자의 변도 예쁘기만 하다. 아, 거기, 그 시답잖은 짓거리들은 이제 다 접고, 잠이나 푹푹 잘 자고 밥이나 제때 잘 챙겨 먹고 운동이나 하는 게 노인의 사랑법이라고 말하는 어떤 존재여, 그대도 역시, 놀라운 예술이다. 당신은 어줍잖은 내 짓거리들이 애틋해서, 먹물 흠뻑 묻힌 대붓으로 내 눈앞에 확 굵은 한 획을 그어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 그래, 멋진 당신.
남과 북에서 서로 협상이 자신의 작품이었다며 뒷심을 겨뤄 쌓더니, 몇 마리 매미들은 아직도, 혼절할 듯, 막바지 여름을 겨루고 있다. 그래, 그래, 너희들도 모두 장하다. 숲의 나무들도 너희들의 목소리에 몸을 움찔거리며, 올여름도 그대들에게 그리 무정했던가, 수런거리고 있다. 나무들은 이 푸른 계절, 풍성한 여름 작품을 이제 마무리하고, 곧 단풍의 휘날레를 올릴 것이다. 그러고 나면, 저 숲은 다시 눈에 덮혀 고요에 묻힐 것이다. 나도 그것을 바라 보며, 깊은 무위의 겨울을 지날 것이다.
아, 또 이런 어줍잖은 글 한 토막 올리느라고 서울 갈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다음 주부터 가지, 뭐. Come September는 언제나 내 희망이자 핑계였다...아니, 사실은 저 포레의 음악을 올리고 싶었던 것 때문이다. 바흐의 시칠리아노도 올리고 싶은데, 그것도 다음으로 미루어야지. 그래도, 아직은, 음악은 그냥,배경음악으로 쓰고, 글을 끄적여 놓고 싶은 게지? 그래, 그래, 이쯤 해 놓고, 스틱 잡고 슬슬, 동네나 한 바퀴 돌아야겠다..하다가 또 주저 않는다. 햇살이 한결 엷어졌겠지만, 벌써, 해가 중천이잖아? 아까부터 창밖에서 어서 나와 놀자며 재촉질하던 새들에게 미안한데, 어쩌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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