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람회
- 태오에비의 페북에서....
*******************************
4:57
김동률 새7,168 조회수spy0907
3:12
[M/V] 기억의 습작 - 건축학개론 O.S.T.
7:31
건축학개론-출발비디오여행_20120318214,079 조회수
***********************************
내가 스트링 편곡을 처음 시도했던 것은 전람회 2집 앨범에서였다.1집의 성공으로 인해 2집에선 ‘쌩 스트링’을 써도 된다는 회사의 허락을 받은 것 까진 좋았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때만 해도 가요 앨범을 어쿠스틱 오케스트라로 녹음하는 일은 매우 드물어서, 전문 현 편곡자나 녹음을 위한 오케스트라 팀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트로트 녹음을 제외하고는…) 수소문 끝에, 아직 현 편곡을 해 본 적은 없지만 학교 때 배운 적은 있으니 한번 해보겠다는 분을 소개 받게 되었는데, 편곡을 맡기고 몇 주 후. 떨리는 마음으로 마침내 악보를 받았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편곡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 내가 생각했던 곡의 느낌과는 다른 분위기가 되어버린?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힌 듯한 느낌이었달까. ...무엇보다 내 곡 같지가 않았다.
풀이 죽어 있는 내게 용기를 주었던 건, 당시 함께 군복무 중이던 동갑내기 후임병 친구였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음악을 무척 사랑하던 친구여서, 평소에도 함께 음악 얘기를 나누며 (주로 클래식에 국한되었지만) 친하게 지내왔는데, 내가 내민 악보를 천천히 훑어보곤 그가 던진 첫 마디.
“네가 직접 해보지 그래?”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감히, 내가 직접 오케스트라 편곡을 해 본다는 것 자체를, 상상해 보지도 못했다. 나는 음대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화성을 공부해 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네가 음대 다녀서 지금 이런 곡들을 쓰고 있는 건 아니잖아? 배운다고 다 잘 쓰는 것도 아니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울 테니 한 번 해봐.”
그 날부터 나는 매일 매일 아주 조금씩 악보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현악기의 음역대 및 특성에 관한 이론 지식은 책을 사서 읽으며 공부했다. 컴퓨터와 건반 악기로 시뮬레이션 해가면서 한 마디 한 마디를 그려나갔다. 실제 소리의 느낌이 궁금할 때는 친구가 직접 연주도 해주고 이런 저런 조언도 해주었다.
“이 노래는 제목이 ‘새’니까,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첼로가 완전 5도로 도약하는 라인을 써보면 어떨까? 새가 비상하는 장면처럼!”
“정말 훌륭한 교향곡들은 말이야, 그냥 쓱 들으면 하나의 덩어리를 연주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악기 하나하나에 귀 기울여 보면 각각의 악기들조차도 독자적인 선율의 흐름이 있거든? 수십 개의 다른 악기들이 각기 다른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는데 그게 모여서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는 거지. 멋지지 않냐?”
어쩌면 내가 비전공자였다 라는 점이 오히려 득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쭙잖은 지식으로 무장되어 있었더라면 같잖게 들렸거나 잘난 척으로 들렸을지도 모르는 친구의 추상적이고도 감상적인 조언들조차도, 아이가 말을 배우듯 가감 없이 받아들였고 지금까지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유학을 가서 나름 편곡에 대한 수업을 꽤 듣고 많은 이론을 배웠지만, 지금도 나는 오케스트라 편곡을 할 때는 배운 지식보다는 감성에 의존한다. 그렇게 느릿느릿 귀를 믿고 작업한 결과가 더 좋다고 아직까지도 믿고 있다.
그렇게 우여 곡절 끝에 녹음된 곡이 전람회 2집의 ‘고해소에서’ 와 ‘새’ 두 곡이다. 초짜였던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가요 곡은 처음 연주해 보는 학생 연주자들(어쩌면 녹음 경험도 처음인 연주자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처음으로 리얼 오케스트라를 녹음해 보는 엔지니어. 이렇게 처음인 사람들끼리 모여 만들어진 곡이니, 지금 들으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얘기일 것이다.
연필을 들고 직접 지휘를 하다가 “그냥 지휘 안하시면 안돼요? 더 헷갈려요.” 라는 연주자의 말에 얼굴 빨개져서 밖으로 도망 나왔던 기억, 녹음에 익숙지 않은 연주자들이 자꾸 의자를 삐걱거리는 바람에 계속 맘 졸였던 기억, 악보 미스를 의심하는 연주자의 지적에 당황해서 풀스코어를 들여다보는데 단박에 악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땀을 뻘뻘 흘렸던 기억, 그리고 정해진 시간 안에 녹음을 끝내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더해져 내내 긴장하고 노심초사했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잊을 수 없다.
비록 음정이 불안하고 박자도 제각각이었지만 수개월 동안 머릿속에서만 존재했던 하모니가 마침내 진짜 소리로 처음 울려 퍼질 때의 감동.집에 가서 수도 없이 반복해 들으며 혼자 뿌듯해했던 기억.
가을에 있을 공연을 위해 요즘 그 곡의 스트링 편곡을 다시 손보고 있다. 16년 묵은 스트링 편곡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많은 감회에 젖게 된다.
그 사이 실력도 늘고 취향도 변했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을 건드리지 않고 그냥 지나가게 되는 것은 비록 촌스러운 편곡일지라도 고스란히 음표 안에 담겨 있는 그 때의 내 감성을 간직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첼로의 완전 5도 도약 멜로디 역시, 그대로 남겨 놓은 것은 물론이다.
기*********************
테오에비가 한국 오기 직전,
'큰바위 얼굴'이 있는 러시모어에 여행 갔다 오는 길에 차가 고장나서 시골 카센타에 맡겨 놓던 날...
덕분에, 에미는 월요일 스케쥴 다 포기하고 하룻밤 거기서 묵었다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