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토요일,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여기버밀리언에서 가까운 수 폴즈 공항까지의 여행길은 아주 편안했다. 이번엔, 미리부터 장애인 도우미 신청을 했더니, 도중에 나리따, 달라스 공항을 거치는 동안에도 조금도 신경쓸 일이 없이 코스마다 직원들이 나와서 길을 안내해 준다. 작년에는 일일이 확인하며 오느라고 어수선했는데, 달라스에서 내가 여기 주소를 기억하지 못해서 한밤중에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 AA 항공의 전화로 물어 봐야 했던 것 외에는, 여유있게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긴 복도와 트레인을 오가는 사이에는 대화를 나눌 시간도 잇었는데, 달라스에서 만난케냐 출신의 직원은 스와힐리 말까지 여러 개 가르쳐 주었다. 일주일 사이에 거의 다 잊어버렸지만, 나 꾸뻬 다, 시 꾸뻬 디 , 히야, 마다, 누구, 다다, 등의 말들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잇다. 사랑해요. 미워요. 아빠, 엄마, 형제, 자매,...ㅎ 내가 휠체어는 필요없고 그냥 옆에서 걷겠다고 하니, 그 청년은 휠체어를 탄 여인과 나를 한꺼번에 돌보게 되었다. 일본에서 산다는 그 백인 여자는 나이가 72세라는데도 어찌나 예쁜지 깜짝 놀랐다. 미용사로 32년을 일했더니 다리가 좋지 않을 뿐 아니라, 하룻밤 자는데 45번이나 잠을 깨서 C-pad라나, 수면 마스크를 처방받아 쓰고 잤더니, 지금은 6번을 깨는데, 입가에 여덟 팔자 주름이 두 겹으로 생겨서 신경 쓰인다나...난 그게 몇 겹인지도 모르는데...ㅎ
공항에 나온 에비는 생각보다 좋아 보였다. 목소리가 자주 힘들어지고 느리게 걷는 것 외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환자라는 것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오른쪽이 모두 짓눌리는 통증이 있고, 왼쪽으로는 감각이 아직도 너무 없어서 뜨거운 것, 찬 것도 잘 못느끼고, 눈은 오른쪽으로 돌릴 때마다 흔들려서 촛점이 잘 안 맞고 어지럽단다. 아이들은 일년만에 5 센티 이상 큰 것 같다. 태오는 더 의젓해졋고 준오도 베이비 티를 벗었다. 때짱쓰는 것도 거의 안한다. 에미는 며칠 연주여행 끝이라 그렇다고는 하지만, 많이 피곤해 보인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저 안쓰럽기만 하다.
이튿날부터 당장, 이웃들의 저녁초대가 이어졌다. 내가 오기 전부터도, 에비의 출국 환송회를 여기저기서 해주었다는데, 미안하고 고맙다. 수시티의 로버트네에서는 수시티 심포니의 사람들까지, 모두 여섯가족들을 불러서 성대한 파티를 열어 주엇단다. 그 집은 지난 여름에 미주리 강이 넘쳐서 석달 간이나 그 대저택을 다 비우고 대피하여 다른 데서 살다가 왔다고 한다다행히도, 그 집은 아무 일도 없었단다. 모두들 너무 고맙다. 에비가 꼭 나아서 돌아와야 할 텐데...
에비는 9일, 수요일에 시카고로 떠났다. 영사관에 들러 임시여권을 받아야 했는데, 일반여권이 아니라, 영주권자에게 주는 거주여권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그러면, 한국의 동사무소에 즉시 통보되어 주민등록이 말소되는 것과 동시에 의료보험도 상실되는데 이걸 어쩌냐? 영주권자냐고 물어 보는데, 그럼, 어떻게 거짓말을 해요? 에구, 할 말이 없다.걱정이 많이 되지만, 어쩌랴, 다 순리대로 하는 수 밖에...제발, 거기서부터 또 열 4시간 의 긴 비행시간 동안 탈이나 없게 잘 가거라...애타는 마음에 밤새도록 잠이 안 왔다. 거기 새벽 5시 반, 이스트만 스쿨에서 피아노를 공부하다가 공익근무하러 돌아간 후배 아이가 라이드를 준 차에 타고 가는 중이라며 전화가 왔다. 처가로 가서 1월말까지, 통원을 하든, 입원을 하든, 최선을 다해 치료해 볼 요량이지만, 한이틀만에, 벌써부터 친구, 후배들이 만나러 오고 난리다. 병원은 월요일부터니, 주말을 그렇게 보내는 것이려니...휴대폰도 친구가 벌써 새 아이폰으로 마련해 주엇단다. 두어 달, 에비가 사용한 후에 자기 아들에게 줄 것이라고...
어제는 남은 식구들이 함께 근처의 고원에 들렸다가 수폴즈 시티에 가서 하루종일 보냈다. 전날부터 차가 시동이 안걸린다더니, 결국, 앞집의 젊은 한국인 교수가 와서 그 옛날, 애남편이 하던 그대로 점프 케이블을 두 차에 걸어 시동을 건 후, 월마트로 가서 60불 주고 밧대리 하나를 사다가 교체해 주엇다. 조지아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이 사람도 그런 일에는 능숙하다. 아니, 미국사람들은 대개가 다 그렇다. 웬만한 일들은 우리처럼 카센타 신세를 지지 않고 부속을 사다가 스스로 다 한다. 게라지에는 그래서, 정원용품을 비롯한 온갖 집수리 용품과 차수리 용품들이 선반 가득 들어 잇다.
수폴즈에서는 이 곳 저 곳을 뒤지며, 에미가 내 파커와 운동화, 그리고 집에서 입을 원피스 하나를 사주었다. 작년에 샀던 것이 너무 길어서 가지고 오지 않고 하나 다시 살 요량이엇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또 제가 돈을 낸다. 조금 밝은 회록색. 이젠 나도 너무 어두운 색은 피해야, 밤중에 어벙거리고 다니는 나를 차나 사람들이 먼저 보고 피해 줄 것 같다. .좀더 밝은 와인색도 만지작거렷지만, 아무래도 너무 튀는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아이들을 한참동안 백화점 플레이 그라운드에서 뛰어 놀게 했다. 온갖 동물형태의 놀이틀 자체도 재미있겠지만, 친구들이 함께 그 형상들 위를 뛰어 오르내리며 놀고 잇다는 것이 더 흥분되고 자극되는가 보다. 끝없는 모방과 경쟁의 놀이에 아이들은 금새 목이 마르다. 저녁은 백화점 푸드 코트에서 간단히 먹자고 중국음식 비프 윗 브로컬리를 시켰더니, 그 옛날, 내가 알바이트하던 플로리다 중국식당의 그 맛 그대로다. 그 땐 정식 디쉬는 12불, 부페는 6불 99센트엿지...그렇게나 비쌌어요? 여기서 지금 6불 얼마ㄴ이니, 30년 동안, 미국 물가는 그다지 오르지 않았다는 것인가? 우린 짜장면값이 그 30년 동안 몇 배나 올랐을 터인데...에미가 먹은 텐저린 치킨은 그 때의 레몬 치킨만큼은 향이 강하지 않지만, 밝은색 튀김옷에 과일향을 낸 치킨이 개운해서 좋다. 아이들은 역시, 만화경이니 왕관이니를 선물로 끼워 주는 미국식 프라이드 치킨을 좋아한다.
오늘은 일요일, 연휴 3일의 마지막 날이었다. 에미는 잠시 학교로 가서 렛슨을 하고 오고, 아이들과 나는 종일 집에 있었다. 식품고를 뒤져서 검은콩과 고사리를 꺼내어 오랫동안 푹푹 끓여 보았지만 도무지 물러지지를 않는다. 너무 오래 된 탓일까? 그냥, 적당히 콩장을 조금 만들고 멸치조림도 조금 만들었다. 내친 김에, 에미가 사다 준 무우와 배추로 만든 물김치에 통깨를 좀 넣으려고 이번에 가져 온 깨를 볶았는데, 아뿔싸, 너무 서두르느라 애써 볶은 통깨를 그만 물이 담기 그릇에 부어 버렸다. 아고, 이런 일이 이제 자주 일어나겟지...앞으로 내가 무슨 짓을 할 지 정말 모르겠다... 밤새도록 저걸 쟁반에 펼쳐 놓고 말리고 있다...내일은 전자 레인지에 넣고 돌려 볼까나...
오늘은 그러느라고 공원에도 못갔다. 날씨도 좀 싸늘해진 것이, 이제 곧 눈이 오려는가? 이름모를 아름드리 나무들이 잎을 잔뜩 떨구어 놓고 있는 공원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아이들과 건너편 의 하얗게 빛나는 집들을 바라보며 앉아 있으면, 내 모든 삶이 다 그렇게 평화로롭게 지나간 그림들 같다. 모든 것이 지나가리라...말로만 그랫던 것이지만, 이제 그 지나감을 너무도 리얼하게 느낀다 뛰노는 아이들 모습에서 벌써 의젓한 아ㅂ 빠들이 된 모습을 상상해 보고, 아직도 처녀 같기만 한 에미의 포니 테일과 청바지 모습 저 너머로 나 같은 할미가 되어 있는 모습을 떠올리기까지 하는 것은 나의 지나친 비현실적 성향 때문만은 아니리라.... 한 세대를 산다는 것은 그 영혼이 다음 세대와 그 전세대를 함께 거느리면서 지나는 것이로구나... 내 정신없이 바쁘던 시절, 시어머니도 자주 내게 그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네게서 내 젊은 시절을 본다고. 에미도 그 때의 나처럼, 그렇게 말하고 잇을까? 어머니, 나는 어머니처럼은 살고 싶지 않아요...그 의미가 무엇이든, 우리는 그러면서도 한 모습을 닮아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 . 적어도, 가늘지만, 길게, 우리의 보이지 않는 문화적 체질들이 이어져 가고 잇다는 것을...
이제 곧 밤 한 시...에비가 삼성병원을 나서고 잇을 시간이다. 그 샘은 환자를 직접 보고는 무어라고 하셧을까? 여기서 가져 간 자료들을 더 검토해 보고 나서, 어쩌면 모든 검사를 다 다시 해봐야 무슨 대책이 설 지도 모르겠다. 언뜻 보아서는 그저, 친절한 아주머니 같던 그 분이 재활의학계에서는 유명하신 분이란다. 찬찬히 모든 것을 잘 이야기하고, 좋은 진단과 처방을 받기를 기도할 뿐이다. 인디언들이 마을을 지키며 등기대고 서 있었음직한 거대한 나무들이 옷을 다 벗은 채, 뒷문 밖에서 조용히 겨울을 기다리고 있는 11월의 밤이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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