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밥중에 일어나 앉으니 켜 둔 채로 있엇던 티비의 대금 소리와 창밖 풀벌레 소리가 너무 아름답다. 아, 간간히 들리는 낙숫물 소리까지 어쩌면 저렇게 박자들을 잘 맞추는 것일까/ 가을이구나. 벌써 추석이 지나고 9월이 다 가가고 있으니, 거의 넉 달 간을 정말 정신없이 보냇다. 무더위 속에서 오늘은 무엇,또 오늘은 무엇, 집짓기의 소제목 하나씩을 핑게처럼 촛불처럼 치켜 들고서 양평 창고집과 봉천동 옥탑방 사이를 더디고 더디게 오고 갔다
창고집...지난해 10월 초, .6회에 걸친 그의 .항암주사가 끝나고 이제 좀 잘 먹고 잘 쉬며서 기운만 회복하면 될 것이라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그가 몇 달 들락거리던 가평 산장으로돌아가는 대신, 은퇴하면 제대로 집을 짓기로 하고, 일단, 자연 속으로 들어가 고구마라도 구워 먹으면서 살려고 인수했던 창고집....그러나, 아직 허가만 받았지 착공도 안한 상태엿고 우리가 서둘러 착공하고 아직 지붕을 올리기 직전에 그가 가버린 연유로 지붕만 겨우 마저 올리고 그의 연구실 책들만 일부 옮겨다 놓은 채로 엉거주춤 반년 이상을 방치해 두었던 때문일까?
지난 7월, 아파트를 전새 놓고 짐들을 거의 다 옮기는 이사를 하고 이제 사람이 살 수 잇는 웬만한 조건을 다 갖춘 주택으로 거의 완곤되어 가는 상태인데도 내 머릿속에서는 아직도 이 집은 창고집이다. 그가 가버린 지금, 따로 집을 더 낫게 지을 이유도 없고 그럴 형편도 사실은 못되어 이 이상으로 더 좋은 집을 바라지도 않을 뿐더러, 이것마저 내가 관리하기에는 벅차지 않을까 싶을 정도인데도 말이다. 내게는 이 집이 그와 나의 삶이 늘 그랫듯, 무언가 늘 미진하 고 미완성이고 소박한, 예날, 을지로의 그 창고극장 같은 이미지로 내 영혼을 그래서 더욱 무엇인가를 향해 더 나아가기를 기대하고 바라는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일까?
어쨌거나, 이웃 사람들은 이 집이 작지만 제일 예쁜 집이라고 해 준다 ..무턱대고 네모 반듯한 창고로 세웠던 것을 주택구조로 만들기 위해 나도 참 머리를 짜냈고, 목수님도 이리 저리 수정해 가며 많은 애를 썼다. 집이름을 무얼로 할까? 그의 제자들과 이야기 나누엇던 Arete를 도자기로 만들어서 문장처럼 문앞에 걸어 두긴 햇지만, 막상 집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아직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전에, 옥현리에 가지고 있던 땅 옆에 잠시 빌려서 쓰던 집을 그냥 양평집이라고 불렀는데, 그대로 양평집이라고 하는 것이 편안하기도 할 듯...
제자들은 지금도 그 집에서 세미나를 하던 시절을 무척 아름답게 기억한다. 우리집 다락방에서 역시 한 3, 4년 게속하엿던 세미나와 함께 ... Arete 밑에 하나 더 붙이려고 서둘러 만들었던, 건망증, 망각이라는 뜻의 Amnesia도 꼭 다시 만들어 구우리라. 나처럼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이엇던지, 복지관 도자기방의 누군가가실수로 다 구워다 놓은 것을 깨쳐 버렸다. 내가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구우라는 뜻인지...이번엔 좀 다른 모양으로...그가 그토록 좋아하던 산 모양으로? 만들어서 마당에 세우고 싶기도 하다...망각...그 아니 좋은가...
그렇다. 편안한 마음으로...나는 이제 자연 속에서 살려고 한다. 그의 제자들도 한동안 그의 죽음을 너무나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받아 들이고 애도하였고, 그와 함께 해온 수십년의 세미나 전통을 그대로 살려 가자고 다짐하엿지만, 근간에, 박사를 끝낸 사람들 중 둘은 미국으로 가고 몇 사람은 지방대학으로 가고...직장과 거주지가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처음 생각햇던대로 매달 한 번씩이라도 모이는 것마저 힘들어 보인다. 이제, 그의 후임교수가왔는데도 자기들끼리만따로 모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니 학위가 끝나지 않은 사람들은 이제 새 교수님과 함께 공부하라고제일 선배되는 제자가 일단 결정했다고 한다. 잘한 일이다. 이미 박사를 끝낸 사람들도, 우리가 존경해 온 스승 이홍우 선생님 밑으로 가서 공부하는 게 어떻겟느냐고 나는 권하고 잇지만, 그리 쉽게 움직여지지는 않는 모양이다.변화든, 망각이든 다 때가 되면 될 것이 되겠지...
며칠 전엔, 그가 생전에 교정을 미처 다 못보고 간 '플라톤의 국가론 강의'가 출판되었다고 한다. 제자들 중 한 사람을 오랫동안 가르치면서 함께 일일이 번역했던 책을 공저로 낸 것이다. 그가 그런 식으로 제자들과 함께 공저로 내기로 한 책들의 첫권인 셈이다. 며칠 후에 세미나팀이 함께 양평으로 와서 그의 서재에 갖다 놓기로 하였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공부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니 달리 팔릴 일도 없는 책이지만, 그의 영전에 나도 두 손 모아 함께 올리고 싶다. 특히, 그토록 좋아하던 산행도줄이고 몇 년 동안을 도시락 싸서 다니며 연구실에 쳐박히다시피하며 공부하던 뒤끝에 다시 학교일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쓴 것이 그의 병을 돋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남편 따라 미국으로 간 제자의 전화도 있었다. . 이번 학기, 플라톤과 칸트를 수강하기 시작했다고...말을 다 알아 듣지는 못해도 그와 함께 오래도록 충분히 공부하던 것들이니 다시 또 다시 책을 들여다 보며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좋단다. .박수를 치고 싶다. 그래...우리 모두 편안하게 가자. 세월이 가면서 또 어떤 식으로든,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끼리 모여 함께 논하고 쓰고 생각을 나눌 일이 계속되겟지. 같은학문의 물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흘러 가는 한...
유난히 길고 길엇던 장마와 태풍과 집중 호우 때문에 새로 쌓은 축대가 늘 불안 불안하엿지만, 그 래도 이 집이 용케 잘 버텨 주엇다. 이제는 누구를 기다리고 그리워만 하지 말고 여기 새들하고나 친구하며 살리라 생각하며 스무남개 매달아 놓은 새집들도 크게 문제 없이 잘 달려 있다. 이제 나즈막한 대문을 만들어 달고 길을 정비하면 끝이다. 아, 저 안마당으로 들어 가는 길은 콩크리트 포장을 해야 축대와 길이 안전하다고 해서 어떻게 할까, 전전긍긍하였는데, 이 여름 그 비를 다 견뎠으니 그냥, 자갈흙만 좀더 덮어서 오솔길을 만들어도 될 것 같다. 거기 나무를 심을 형편이 못되면 야생화라도 한가득 심으리라...
새벽에 마당에 나가니 갓심은 잔디들이 벌써 파르스름하니 잎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햇다 이제 곧 싸늘해질 테지만, 나나 너희들이나, 겨울이 되기 전에 이 땅에 발을 제대로 붙여야지.... 안개 자욱한 위로 그 웅자를 내비치고 잇는 산봉우리들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 봉우리들을 만지고 있는 갓심은 소나무의 이파리들을 하나 하나 만져 본다. 너희들도 여기 낯선 곳이지만나와 함께 뿌리를 내리자꾸나...우리 여기 신입들, 고분고분 나붓나뭇선배들 말씀 잘 듣고 잘 배워야지......아, 그와 내가 그토록 오래 전부터 와서 살고 싶엇던 양평...., ..새들이 벌써 와서 집에 들어 가지는 않고 바깥에서만 기웃거리며 이후배가 조 공바치듯 뿌려 놓은 잡곡 알갱이들을 나무가지 위에 앉아서 살피 고만 있다. 너희들도 조심하고 있구나. 우리 서로 친해지자꾸나...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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