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지 하면서도 요즘은 웬 일인지 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황제'가 자주 들린다. 그저께는, Arte 체널에서 금난새 지휘의 황제가 연주되었다. 그것도 태오에비가 다녔던 경기 필하모닉과 함께....피아니스트는 누구일까...궁금하다가 나는 이내 잊어 버리고 금난새의 지휘하는 모습만 뚫어지게 바라 보았다...그도 늙었구나...비장한 표정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그의 의지가 매우 아름다웠다. 그는 사람이 좀 가볍게 보일 정도로, 동안에 장난끼가 더 승하게 보이던 사람이 아닌까.... 에비가 다니던 그 때만 해도 경기도립 딴따라라고 할 정도로 순수 클래식에는 별로 힘을 기울이지 않고 팝스 오케스트라에 더 신경을 쓰더니, 금난새가 필하모닉을맡으면서부터 말년의 작심으로 그 수준을 확 끌어 올린 것 같다...역시...진짜 '황제'는 늦되나 보다...ㅎ 그러더니,
오늘은 또 정명훈 지휘의 서울시향 연주를 보여 준다. 피아니스트는 니콜라스 안젤리치...부드러우면서도 강열한 터치로 건반 위를 춤추는 그의 손과 미술실의 다비드상 같은 그의 얼굴이 빚은 듯이 아름답지만, 역시, 정명훈의 지휘가 나를 사로잡아 3악장 내내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젊엇을 적에도 그렇긴 하였지만, 그의 지휘는 가히 명상 그 자체다. 처음 나올 땐 단정히 빗어내렷던 그의 가벼운 머리카락이 그의 몸짓에 따라 흔들리다 보면 금새 털뜯기다 만 새꽁지처럼,부스스해지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데도 언제부터엿나, 저렇게 깡마르고 주름진 이마와 거친 피부가 더욱 역력해진 그의 모습이 안쓰럽다기보다 세속의 모든 먼지를 다 털어 내고 오로지 순수 그 자체에 몰입해 잇는 한 사람의 철학자가 따로 없다.
그 황제는 지난 주말에도 들었다. 나뭇꾼이 6차 폐암 항암치료 끝에 폐염을 얻어 이번에는 꽤 오래 입원하고 있엇던지난 주말, 그 날 저녁에도 우리는 슬슬 대학로로 산책을 나갓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먹을 것을 싸들고 오는 제자들이엇지만, 그 날은 이틀 후면 퇴원한다는 홀가분함 반, 유독 이번에는 산책도 제대로 못하고 침대에만 붙어잇다시피햇다는 아쉬움 반으로 그 제자도 동행하엿다. 젊은 사람과 함께엿으니 전날처럼은 좀 덜 쑥스러워서였을까, 1956년부터 잇어 왔다고 입구에 쓰여져 잇는 그 때 그 음악 다방.. 학림의 그 나무계단을 또 밟고 오르니 커피향 가득한 그 곳엔 여전히 젊은이들만 가득하엿고, 이번에는 깊숙이 들어가 기어이 창가까지 가서 앉으니 ,아, 그 때 그 나무겟지, 창박엔 살이 통통하고 잘 생긴 나무가지 사이로 걸린 둥그런 가로등불이 마로니에 열매처럼 다정하다.
그 땐 캠퍼스들이 단과대학별로 여기 저기 흩어져 잇었어. 사대는 청량리와 신설동 사이,성동천을 끼고 잇었지. 그 천을 따라 걸으면 안암동의 상대가고대와 마주 있엇고, 거기서 여기 혜화동, 저 건너편에 대학본부와 문리대, 미대, 법대, 그리고 지금 유일하게 남은 이 족 의대와 대학병원이 잇는 이 곳으로 오려면 한참을 걸어야 해서 아예, 신설동, 종로를 지나 돌아 오는 버스를 타는 게 빨랐지. 우리는 주로 사대앞 식당과 다방을 주무대로 늘았고 여기 본부엔 특강이나 행사가잇는날에나 왔지만 누구를 만날 일이 잇거나 없거나 간에 이 동네를 오기만 하면 일부러 음악을 듣기 위해서라도 여기 학림에 들르곤 햇지. 지금은 이렇게 통유리창이지만, 그 땐 양쪽으로 열리는 작은 창문이 서너개쯤 달려 잇어서 그게 참 좋았지...사대에도 구내에 이런 찻집이 하나 잇엇는데, .옛지리학을 처음 듣는 제자에게 설명하고 잇는 나뭇꾼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옛날 그 시절로 달려 갓다. . 아, 그 찻집...그 이름은 다빈이엇어...사대 학보사 청량원에서 그걸 공모해서 영준이가 당선된 것이었잖아..아, 저번 정윤이 결혼식에 주례 서 주셧던 그 분이요?
그래, .그 다빈에도 그런 창문이 주루룩 달려 잇었지. 난거기서도 숲쪽으로 나 잇는 그 안쪽에 앉아 잇기를 좋아 햇는데...하하, 난 거기서운동장쪽으로 앉아 밖을 내다 보며 모닝 커피 한 잔 마시는 걸 좋아햇는데...거의 매일이다시피, 나는 그 청량원에서 잠을 자거나 꼬박 밤을 새고 부시시한 얼굴로 그 찻집에 들어서는 첫손님이 되곤 했지...그 예쁘장한 누님이 아침마다 문을 열면서 저 ''황제' 를 틀어 놓고 마루바닥에 물을 뿌리며 청소를 하고 잇다가 내가 오면 곡 커피에 계란을 하나 넣어 주엇지...ㅎ....우리가 들어섰을 땐 전원 교향곡이 들려 오고 잇더니 학림에서도 어느새, 우리가 누군지 알아 보앗나? ㅎ '저 황제'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그 성음사 레코드판은 바로 저 나뭇꾼이 그 다빈에 갖다 놓은 것인 줄을 나는 몰랏지만, 나도 그 곳에 가기만 하면 그 황제 좀 틀어 주세요, 부탁하곤 햇다. 그건 그 다빈에서 거의 유일한 클래식 음악이엇고 우리가 결혼한 후에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게 이 양반과 나를 묶어준 배경음악이엇구나 했다....ㅎ 그래서, 우리는 사는 책마다 그 옆면에, KING라고 써 놓았었지...KIM과 KANG를 합쳐서...ㅎ...
학림의 통유리 창가에 앉아, 우리는 그 옛날 학림의 나무창문을 양족으로 활짝 열고 그 옛날 사대의 나무창문으로 건너 뛰었다. 웬디처럼...아, 그러고 보니 그 여인이 꼭 웬디 같앗네...그 웬디누님이 당신을 엔간히 불쌍히 여겻었나? ㅎㅎ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맨날 데모만 주동하고 다니는 피터팬 학생...ㅎㅎ 정말, 웬디 같던 그 여인은 물리과 어느 교수님의 처제엿다던가? 모든 학생들과 교수님들이 다 좋아한 참 참한 사람이었지...이제 우리릐 이야기는 자연스레 그 때의 데모 이야기로 옮겨 갓다. 신원조회를 하면 반드시 붙어 잇는 '69 데모 주동자임'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엇던 나뭇꾼의 데모 이야기...
그 때 이슈는 교련반대와 선선개헌 반대였지...그 날은 박대통령이 청량리의 홍릉 과학진읗원인가의 설립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 오는 길이엇는데, , 종로와 광화문으로 진출하려는 상대와, 고대생들이 경찰과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는 안암동길을 피해 좀 수월하리라고 판단된 사대앞을 통과하기로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던 거라...그런데, .사대생들도, 길다란 담장 너머로 길 건너편에서 최루탄을 쏘며 대치하고 잇던 경찰에 돌을 던지고 잇엇단 말이지....여학생들은 맨날, 후방에서 돌바켇과 소금물을 담은 바켣을 나르곤 햇지....찻잔과 쿠키를 지도삼아 테이블 위에 늘어 놓고 천천히 설명하고 있는 나뭇꾼 옆에서 나도 자연스레 끼어들고 잇었다. 그 땐, 여학생들이 많지도 않앗지만, 선두에 나서서 돌을 던지는 대신, 엄마들처럼 애틋한 마음으로 다친 남학생들을 돌봐 주거나 빵과 우우를 사다 날랏지... 그 때, .무슨 시커먼 승용차들이 줄지어 지나가니 학생들은 그게 대통령 일행의 차인 줄은 까맣게 모르고, 어, 이건 또 뭐야? 무조건 반사적으로 더 열심히 돌을 던졋던 거야. 그런데, 돌 하나가 바로 대통령이 탄 차 위라나, 옆이라나에 맞았다는 거아.....늘 젊은 제자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그들의 입맛대로 카푸치노니 카페라떼 같은 온갖 맛을 낸 커피맛에 익숙해져 잇던 나뭇꾼과 그 제자도 그 날은 모두 내가 하는대로아메리카노, 블랙을 시켜 놓고 앉아서 이야기는 점점 더 진진해져 갓다.
평소엔 쓰지도 않고 굳게 빗장이 걸려 잇던 대운동장의 커다란 나무문을 밀어 뜨리며 그 시커먼 차들과 쌍권총을 겨눈 경호원들이 일렬 횡대로 주욱 운동장을 가로질러 들어 오고...운동장 끝에서 내린 대통령은 그 작달막한 키에 그 특유의 썬글라스를 낀 모습으로, 앗, 후크 선장? ㅎ ,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 본관 건물로 들어 갓지..
아, 그 담쟁이 넝쿨이 올라간 빨간 벽돌건물...그 삐걱거리던 나무계단을 올라가서, 지겨운 통계학이나 행동주의 심리학을 들을 땐 꾸벅꾸벅 졸고 앉았거나 잡념에나 빠져 들엇다가도, 늘 15세 소년같은 홍조띤 얼굴에 꿈꾸는 듯한 목소리로 피천득 선생님이 워즈워드나 프로스트를 읊으시며 노을지는 창가를 바라 보실 땐 나도 그 선생님과 함께 상상의 날개를 펼쳐 창밖으로 날아 오르던...곳...그 때처럼, ..나는 또 더 깊이 그 때 그 시절의 내 젊음으로 날아 돌아간다. 대학 2학년, 1학기말, 처음으로 행동과학 연구소 실습을 하고 잇던 참이엇다. 나뭇꾼은 그 때, 툭하면 실습 도중에도 학교로 달려 갔고 그 날도 아마, 그랫으리라, 우리도 학교에 대사건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황망히 달려 갓지만, 그 땐 이미 사건 끝, 어수선한 기운이 감돌고 잇는 캠퍼스 곳곳에 학생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잇었다.
..대통령이 학장실에서 차를 마시는 동안, 경호원들이 권총을 학생들에게 겨누며 하나 하나 잡아서 운동장에 두 손을 머리 뒤로 올리게 하고 꿇어 앉히고, 아 전쟁포로들처럼 말이지....내 추임새...ㅎ 성동서와 동대문 경찰서로 잡아가기 시작했지. 과학관 안에 잇던 도서관 서고의 철제문을 부수고 그 안에 숨어 잇던 학생들은 물론, 여학생 화장실 속에 숨어 잇던 학생들도 샅샅이 뒤져서 사정없이 구타하며 잡아 갓고 소동에 놀라서 연구실에서 뛰쳐 나온 그 건장한 체구의 영문과 전상범 교수까지도 이 새끼, 넌 뭐야, 무릎을 꿇리고 폭행햇지. 나는 그 때, 후면에서 몇몇 학생회와 대의원회 간부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그 장면을 보고, 학교 안쪽으로 도망가는 건 불리하다고 순간 판단햇어. 수위실로 들어가니 수위는 없고 곧바로 전화벨이 울렷어. 학장이 화급한 목소리로 외쳣어. 수위실은 뭐 하는 거아? 대통령이 들어 온 줄도 모르고...그 큰 대문이 넘어지고 쳐들어 오는 차들이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탱크처럼 밀고 들어오고 잇는 판에 수의가 가만히 앉아 잇었을 리가 잇엇겠나? ㅎㅎ 예, 예, 방금 운동장으로 내려 갓습니다...전화는 쾅 끊기고...나는 수위실 근무자인 것처럼 앉아서 사태를 관망하다가 길건너편의 상가들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지...
나는 그 때, 청량원의 주간을 맡고 잇엇는데 거의 매일 학교에서 잠을 자다시피 하다 보니 수위들과도 친햇엇지. 한 번은 학장이 나를 불러서 자네는 집이 없나? 물은 적도 잇엇을 정도로...알다시피, 학보사 기자들이 엔간히 강성들인가? 학생회장, 대의원장 등과 함께 모든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는 건 물론이고 연일 필설로 민주ㅎ화 쟁론을 서댔으니 안 그래도 요주의 인물이엇는데 잡혔다 하면 큰일이지.... 그 일로 데모는 점점 더 극렬해져 갓어.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이 연일 데모로 끓어 올랏지. 학원유린에 인권유린에...박정희 독재타도의 목소리가 하늘을 질럿지...
어느 날은 학생들이 기어이 교문 밖으로 나가서 거의 신설동까지 전진해서 동대문 경찰서 기동대와 대치상황에 들어 갓지. 보통 학생들이 스크럼을 짜고 나가다가 구령에 맞춰서 길바닥에 주저 앉으면 경찰도 마주 주저 앉아서 대치하는데, 그 날은 경찰이 곤봉을 휘두르면서 학생들을 덮쳣지. 방패들고 투구쓰고...사정없이 두들기면서 오는 기동타격대를 당할 수가 잇나? 그 땐 돌맹이가 유일한 무기엿어...터지고 부러지고 수없이 많은 학생들이 부상을 입고 후퇴해서 도서관과 식당에 한 이백 오십명쯤이 모였지. 이런 사태에서 더 이상 후퇴할 수가 없다...일간지 기자들에게 알려서 그들이 올 때까지 밤을 세우고 농성을 하자. 이대로 흩어지면 이런 일은 없엇던 거야...그 때 목숨을 걸고 하는 데모들이엇지만 보도는 심하게 관제되어 국민들은 직접 목격한 사람 이외엔 잘 알지도 못햇지...
학교측에서도 난감해서 학생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물세례를 퍼붓고...그래도 학생들은 다 찢어지고 젖은 옷을 입은 채로 밤을 세우기로 햇지...나는 우선 식당에 우동 한 그릇씩을 주문하고, 아, 그 멀건 국물... 또 내 추임새...ㅎ도서관 의자와 책상 위는 물론이고 복도 바닥에까지 눕고 앉아서 잠을 청햇지. 아, 그런데, 이게 웬 일? 두어 시간 후에 잠을 깨고 보니 학생들은 거의 다 돌아 가고 한 오십 명만 남아 잇는 거야...나는 그 때 나이는 많앗지만, 아직 2학년이엇고 같은 과의 3학년생들이 좀더 온건파여서 학생회장과 함께그쯤에서 데모를 그만 두자고 내가 자고 잇는 사이에 학생들을 설득해서 다 밖으로 내보냇던 거야...나는 분통이 터졋어...남은 학생들이 외쳣어. 우리는 이 사건이 보도되도록 끝까지 버텨야 한다...이튿날 낮에야 기자들이 달려 오기 시작햇고 .여기저기 얻어터진 학생들이 찢어지고 젖은 러닝 차림으로, 혹은 웃통을 홀랑 벗은 채로, 스크럼을 짜고 외치는 모습이 동아일보 사회면에 결국 실렷지...그 후로 학장은 나를 불러서, 자네, 지금부터 어디 가서 숨어 잇을 데가 없겠나? 대의원장과 자네를 잡아 오라는데, 우리가 어덯게 자네들을 잡아 넘기겟나? 그 길로 나는 짐을 싸고 창영의 친구 집에 가서 두어 달 지내고 9월 학기 시작할 때야 돌아 왓지. 덕분에 그 학기 성적은 모두 권총을 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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