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쪽에 더 가까운 아버지와 엄마의 산소에 잠깐 들르기로 했습니다.
경북 칠곡군 지천면 신동...큰집 오빠들 따라.휘파람 불며 노래 부르며 메두기 잡고 송사리 잡으며 저 못을 돌아 논둑길 밭둑길로 걸어 가던 그 추억길을 이제는 자동차로 스르륵 달려 갔어요.....
그럴 줄 알았지만, 폭우로 산길이 너무 미끄러워서 도저히 돌라 가지는 못하겟어서 산 밑에서 묵념만 올렸답니다...
부모님들이 늘같이 내려다 보고 계시는 산 아래 마을로 가는 길...
졸졸 흐르는 계곡물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문중의 재실이 잇는 아트막한 동산이 보이지요...
동산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서 재실로 올라 가는 길...
언니는 먼저 들어 가서 마루에 걸터 앉네요...오두마니 앉았던 어린 시절 생각하는지....이수헌은 이 재실의 앞쪽에서 흘러 온 물이 합치는 곳이라 붙인 이름이고 해사는 증조부님의 호였습니다...
오른쪽으로는 아버지 산소가 잇는 산에서 흘러운 작은 개울 건너 산소 가는 길이 너머다 보이고....
왼쪽으로는 변소...청담님 생각나서 나도 저거 안찍을 수 잇나...ㅎㅎ 뒷안으로 돌아 가면 뒷동산에 오르는 문이 잇지요... 방학이면 사촌, 육촌, 팔촌...후손들이 다 시골집으로 내려가 마을을 바라 보며 노래 부르다가 풍덩 푸른 물로 뛰어 들던 그 언덕...그 언덕에는 이상한 선돌이 하니 있는데, 어느 스님이 우리 문중의 심한 세도를 나무라며 칼로 �더니 피가 흘러서 다시 쿤였다나...그런 전설이 있는 선돌이지요...이 재실에서 멀리 보이는 마을안 종가댁인 큰댁까찌 쳐 놓은 줄을 흔들어 종소리를 내면 음식을 내왔다지요...그 돌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무슨 설명이 붙어 있는데 너무 늦어서 이번엔 올라 가지는 못하고...
안녕히 계십시오....돌아 보고는 발길을 재촉햇습니다...어린 시절, 저 재실을 개축했던 낙성식때, .저 문간 방에서 어른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시는 사이에 끼어 앉아 턱받치고 이야기를 듣다가 엄마 무릎 베고 스르르 잠들었는데... 지금 보니 어찌 그리도 방이 작은지요...
마을 밖 신작로에서 대구를 향해 보면 왼쪽으로 재실이 보이고 ..기차는 서울을 행해 달려 가고 ...
식사를 하고 나니 너무 늦엇지만, 그래도 노란 수박 한 상자을 사 들고 마을로 들어 가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마을 위쪽부터 올라 가서, 저수지로...그러니까, 재실의 건너편...그래도 우리들은 각자의 추억이 가득 어린 낙화담엔 가 보아야지...저 산에서 임진홰란때 왜병들의 겁탈을 피해 수십명의 여인들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죽엇다는 이야기가 적힌 기념비도 잇는데 사진을 못찍었네요...저 댐은 박정희 시절...칠곡군 일대의 많은 토목공사를 하셧던 종조부님이 만드셧던 것이지요...
추억은 서리 서리...끝이 없고..초등 4학년 때였나....저 댐공사를 할 대, 내가 떨어틘 하늘색 스카프를 주어 주었던 어린 아이 하나가 공사 마치고 돌아서는 부르도자에 치어 죽었답니다...우리는 저 산밑을 걸어 집으로 돌아 오다가 운전기사의 비명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혼비백산 달아나는 그현장을 되돌아가 보앗지요...나는 멀리서 보앗지만 엎어져 있는 그 아이의 선홍빛 피와 그 아이가 입엇던 맬빵바지를 잊을 수가 없어요...어스름 저녁에 산꿩이 푸드득거리는 저 산밑을 걸어 와서 몇며칠을 앓앗던 그 무섭던 기억이...
마을로 내려와 먼저 우리 할아버지의 생가 형님 되시는 종조부님댁에 들렷습니다. 젊은 나이에 재취로 들어 오셔서 아직 살아계신 종조모님은 이제 연로하셔서 대구에 사시고, 종산의 일부를 공원묘원으로 개발하여 운영하며 평생 총각으로 혼자 살며문중일을 돌보는, 무지 마음 착한 아재는 저 집 앞집에서 살고 잇지만 아직 귀가하지 않앗고...행랑채의 관리인 아저씨만 만나고 왓네요...
집은 퇴락하여 말이 없고.....그래도 담 하나 사이에 둔 종가댁보다는 잘 관리가 되고 잇엇습니다...종가댁은 그 종손이신 육촌 오빠이 월북하신 후로 그 올캐는 출가하여 불가에 귀의했지만, 그 조카들은 서울에서 잘 살고 있는데, 어찌하여 저리 돌보지 않고 있는지...그 기고하여 등등하던 세도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완전 폐가가 되어 가고 있었지요...
정작 할머니댁엔 너무 어두워져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말았네요...어린시절 뛰어 놀던 마당과 화단,오형제들이 급제하게 해 주엇다던 오형제 방구돌들, 아마 그것들도 원래는 고인돌이엇던지...그 뒷마당의 우물과 텃밭과...모든 추억을 되살리고 싶엇지만 역시 큰집식구들도 다 대구에서 살고 관리해 주는 이만 잇을 터이니...아쉬운 마음으로 돌아 보며 그냥 마을을 나왓습니다...다음에 다시 와서 다 사그라지기 전에 사진이라도 찍어야지, 하며...
.마을 어귀의 종조부님의 공덕비는 돌아 보았네요... 선비의 후손답게? 평생 백수로 지내신 우리 할아버지와 큰아버지에 비해, 그 때 그시절에도 그런 큰 사업가로서 사셧던 종조부님...결국 칠곡일대의 종중산들을 거의 다 팔아 거기에 쏟아 넣으신 것이엇지만...90이 넘으셨어도 우렁우렁하신 목소리에 우람한 체구..명절이면 빳빳한 새돈을 다발로 준비해 놓으셧다가 자상한 웃으시며 세뱃돈을 나누어 주시던 할아버지....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시다가 잠결에 저 집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어둠 속에서 저 공덕비가 꼭 종조부님처럼 보엿습니다
경산의 큰동생네 집에서 제사가 끝나고..제삿법을 먹으며 밤새도록 수다하고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마당에서 커피를 마시며 또 수다...아침식사후, 나만 동대구역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하고 언니와 둘째 동생은 서둘러 서울로 돌아 와야 하는 막내동생의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 오기로 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늘 그렇듯이, 언니는 미리 갈 준비를 다하고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고...
야, 그래도 사진 한 방은 박고 가야지....다들 이리 모여....ㅎ
막내와 큰동생이 차례로 끼어 앉아 사진을 찍엇습니다...우리, 또 언제 이리 만나겟노...
잘 잇거라.....마당엔 동생이 열심히 가꾸어 온 예쁜 �들과 복숭아도 석류도 호박도 잇엇지만 사진 찍을 시간이 없엇습니다...이 집도 이제 팔려고 내어 놓앗으니 이게 마지막일 것 같구나...
동대구역에서 혼자 내린 나는 친구를 만나 파계사로 갓습니다. 멋쟁이 내친구 명희...
절마당에서도 음식점에서도 우리의 수다는 끝이 없어서...기어이 저녁까지 먹고서야 헤어�습니다...명희야, 니 정말, 수고햇대이...고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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