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가고 있다. 가는 가을에 또 글 하나 써서 부쳐 보낼까하여 컴퓨터를 마주하고 앉는데, 가을은 벌써 나로부터 빠져나가 저만치 서서 말한다.나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나를 가슴으로 느껴 보라고. 내 속에서 내 속에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너는 내 가슴 밑바닥까지 푹 빠져 있어 보았느냐고. 그렇지 못하다. 나는 건성으로, 목욕탕에 몸을 푹 담그지 못하고 물만 끼얹다가 나오는 사람처럼, 들뜬 마음으로 이 가을을 만났고 잠시 악수만 나누다가 지금 어영부영 그를 떠나 보내고 있다. 가슴은 커녕, 깊은 입맞춤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해놓고 나는 그 느낌을 말로 남기려 한다...
느낌은 있었어도 표현을 잘 못하겠는, 말이라는 건 원래, 해보았자, 느낌의 표면도 못되고 잠시 그 위를 비추고 흘러가는 불빛에 불과한 것이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말탓하지 말자. 내가 한 말에서나 하지 못한 말에서나, 나는 가을을 정말 제대로 사랑하지 못해 보고 떠나 보내는 것이다. 내 느낌 자체가 그렇게 무딘 것이었다. 헛제사밥이라더니, 알맹이는 없는 헛 느낌, 더구나,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 표면을 비추는 빛 같은 것이 말이라고 하면,그런 글이 또 써보았자 오죽할까...어쨌거나, 그랬던 가을이 정말 또 지나가려 한다. 나는 그로부터 원하지 않아도 이제 던져내어질 참이다. 누군가의 마음에 대해서도 늘 그랬을 것처럼, 그 깊은 속은 하마 다 헤아리지 못한 채로 나는 그를 떠나 보내고 나 자신도 떠나 보내고 있다. 허전하다. 내 영혼은 언제까지나 이렇게 헛바퀴만 도는 것이 아닐까...
사진: (11월 26일자 조선일보 A29 면에 게재됨)
Fritz Kreisler (1875-1962), "Melodia da Gluck" / Franco Mezzena viol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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