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당신 앞에서 저는 이제, 갑자기는 안되더라도, 서서히, 저 웅변 시장으로부터 저의 言說의 서비스를 거두어 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저 젊은이들이 당신의 율법과 당신이 베푸신 평화에는 관심도 없이, 우행과 논쟁에 빠져서 거짓말만 늘어 놓는 광기를 더 부채질해 주는 무기를 저로부터 사 가지 못하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포도 수확기의 방학이 바로 며칠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저는 그 때까지만 더 기다려서 정식으로 그 자리를 그만 두기로 하였습니다. 이제 제가 당신의 구원을 받게 된 이상, 다시는 그런 시장에 저 자신을 내놓지 않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저의 계획은 당신과 몇몇 아주 가까운 제 친구들 이외에는 아직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저희들은 이제, 눈물의 계곡을 헤쳐 나오는 전진의 노래57)*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저희들에게, 뾰족한 화살과 불타는 숯까지 주셔서, 음식에 닿았을 때는 저희를 위하는 척하지만, 결국엔 반란을 일으키고 마는, 그러나, 사랑을 할 때에는 다시 살살 녹아드는, 저 기만적인 혀끝을 막아내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당신은 저희들의 심장에 그 사랑의 화살을 꽂아서, 저 깊은 생명의 바닥에 당신의 말씀을 지닐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데려 오신 당신의 저 훌륭한 종들도, 저희들의 생각 깊은 언저리로 다가와 나태함을 불태워 없애줌으로써, 저희들이 또 다시 그 심연으로 빠져 들어가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그 종들은 저희들의 불꽃을 하도 밝게 태워올려 주어서, 어떠한 기만의 혀끝이 모진 바람을 일으켜도 그 불이 꺼지지 않고, 오히려 더 밝게 타오르게 해주었습니다.
저희들은, 온 세상을 성스러이 지켜 주신 당신의 이름 아래, 그 불꽃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꼭 찾아 내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며칠 남지 않은 방학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저의 공적 임무를 그만 두어버린다면, 그것은 매우 건방진 태도로 비쳐질 것이 뻔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저의 행동을 주시할 것이고, 포도 수확기의 방학이 곧 닥쳤다는 것을 생각할 것이었으며, 제가 괜히 잘난 척한다고 말이 많을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만 두는 동기에 대해 온갖 논난이 벌어지고, 저희들의 선의에 대해 나쁜 말들이 오간다면 그게 무슨 좋은 일이겠습니까?
게다가, 바로 그 해 여름에는 너무 많은 독서와 글쓰기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폐가 나빠지기 시작하여, 숨조차 쉬기 어려워졌습니다. 가슴의 통증마저 생겨 폐병이 악화된 것이 확연해지면서부터는, 목소리가 맑지 못하고 오랫동안 말을 할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이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제 가르치는 일을 영영 그만 두든지, 적어도 당분간만이라도 교직을 중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해 보여서, 저는 처음에 매우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야말로 저의 주인이심을 확실히 깨닫기 위한 여유시간을 빨리 가져야 한다는 욕망이 생기고 그것이 커 가면서, 오, 하나님, 당신은 이미 알고 계셨겠지만, 저는 자기 아이들을 위해서 제가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그 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 있는, 그렇게 완벽한 구실이 제게 생겼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쁨 속에서, 스무 날 남짓밖에 남지 않은 나머지 기간이 끝날 때까지 참고 기다렷습니다. 그것은 지겹기도 했지만, 맡은 일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수행해내는 데 도움이 되었던 금전적 수입에 대한 욕심은 이제 사라져 버렸고, 다만, 이제 조금만 더 버텨낼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인내심이 없었더라면, 저는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저의 형제들인, 당신의 종들 중에는, 제가 그 때 죄를 지은 것이라고 말할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에 대한 봉사를 전심전력으로 하기로 해놓고, 그와 같은 불경스러운 자리에 잠시라도 더 편히 앉아 있을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에 대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나님, 당신은 확실히 저의 그 죄를, 그토록 지리멸렬하고 파괴적이었던 다른 모든 죄들과 함께 용서해 주었던 것입니다.
베레쿤두스58)*는 그 자신의 족쇄 때문에 우정을 잃게 될까 두려워하면서, 저희들이 받은 당신의 축복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애를 썼습니다. 그의 부인은 매우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으나, 그는 아직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부인은 그가 우리와 함께 시작했던 길을 가지 못하도록 그를 묶어 놓는 가장 단단한 사슬이었습니다. 그는 자기도 기독교인이 되어 봤자 그런 그녀보다 더 나을 것도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또 기독교인이 될 리도 없었지만, 어쨌든 자기의 시골집을 저희들에게 내어 주면서 원하면 언제까지든지 머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우선, 베레쿤두스의 불행한 생활에 대해 위로하는 것, 저희들의 개종에도 불구하고 우정은 변치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그의 현실적 조건, 즉 결혼생활에 충실하도록 독려하는 일, 그리고 네브리디우스가 저희들과 합류할 때까지 기다리는 일 등이었습니다.
네브리디우스는 저희들과 매우 가깝게 지냈으므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많은 사람이었으며, 아닌게 아니라, 그 기다림이 끝날 즈음에는, 결국 그 사람도 마침내 첫걸음을 내디딜 만한 단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기다림의 날들이 제게는 자유로운 여가생활에 대한 동경이 컸던 그 만큼, 지루하고도 오랜 시간이었습니다. 그 자유의 날에, 저는 제 마음 속 깊이, “제 가슴으로 당신께 말씀드리오니, 당신의 얼굴을 우러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오, 주여, 당신의 얼굴을 뵈오려 하나이다.”라고 노래할 것이었습니다.(시편 26 : 8)
드디어, 제 마음이 이미 그토록 자유로와져 있었던 것처럼, 제 몸도 그 수사학 교사라는 직책으로부터 실제로 놓여나게 되는 날이 닥쳐 왔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되고야 만 것입니다. 당신은 저의 마음을 이미 구원해 주셨던 것과 같이, 이제 저의 혀를 구원하셨으며, 모든 친구들과 함께 시골집으로 향해 출발하면서 당신에게 기쁜 마음으로 축복을 드렸습니다. 그 곳에서 제가 쓴 글들은 비록 그 때까지만 해도 아직 콧대만 높았던 저의 학파의 영향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었기는 하지만, 이제 진실로 당신에게 봉사하기 위해 썼던 것입니다. 그 점은, 제가 그 곳에서 저 혼자서 당신을 만나서 나눈 대화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했던 네브리디우스에게 썼던 편지들 속에도 나타나 있습니다.59)* 아, 이제 더 중요한 말씀을 드릴 것이 있어 또 이렇게 서둘러야 하다니, 이러다가, 저희들에게 베푸셨던 그 때의 은총에 대해 언제 다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오, 하나님, 제 마음 속에 가득 찬 자만심을 몰아내어 주던, 그 성실과 헌신의 노래, 다비드의 시편을 읽으면서, 저는 당신에게 무엇이라고 기도하였습니까! 저는 그 때 알피우스와 마찬가지로, 오직 당신에게서만 가능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저의 어머니도 함께 거기 계시면서 저희들과 가까이 지내셨습니다. 어머니는 비록 여자였지만 매우 강건한 신념과 함께, 모성애와 기독교적인 헌신의 연륜이 가져다 준 차분함과 정숙함을 항상 잃지 않으시는 분이었습니다. 그 시편을 읽으면서, 저는 무슨 말씀을 드렸습니까! 저는 할 수만 있다면, 온 세상에, 인간의 자만심에 대한 그 시를 꼭 읊어주고 싶은 욕망에 불타 올랐습니다.
지금온 그것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지만, 진실로, “당신의 열정을 피할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시편 18 : 7). 저는 그 때, 마니케이언들에 대해서, 그들은 결국, 성체와 당신의 신성한 계획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 그러나, 그들은 그들 자신의 영혼을 치유해 줄 그 해독제에 대해서도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때 저는 얼마나 심한 고통과 슬픔으로 당신께 기도하였습니까! 저는 그들이, 근처 어디엔가에 있다가, 저의 얼굴이라도 보면서 제 말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제 마음상태를 다 읽을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저는 그 때, “오, 정의의 하나님, 제가 당신을 찾을 때 당신은 저의 기도를 들어 주셨고, 고난을 겪을 때 제게 힘을 주셨습니다. 제발, 자비를 베푸시어 저의 이 기도를 들어 주소서.”(시편 4 : 1)라는, 시편 4장을 읊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정말로 저 모르게 저의 말을 듣고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랬더라도, 그들은 아마, 그것이 자기들 때문이었던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그들이 옆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저는 그것을 읊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그들이 보고 듣고 있는 줄 알았더라면, 저는 아마, 다른 방식으로 말했을 것입니다. 그래 보았자, 아무튼, 마니케이언들은 그것을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토록 진심으로, 당신 앞에서, 저 혼자 저 자신에게, 제 영혼 무한히 깊은 곳에서 기도한 그대로를 말입니다. 참회하는 삶 60)저는 열 아홉 살 때 웅변학교에서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라는 책을 접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철학이라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반드시 해내고 말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 철학에 대한 사랑에 불을 붙였습니다. 제 갈 길을 흩어지게 하는 먹구름들도 없지 않았고, 저도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서, 잘못된 곳으로 저를 유혹하는 별들을 좇아 다니기를 오랫동안 해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미신에 짓눌려서, 탐구를 그만 두고 도망가기도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정신이 들었을 때, 저는 그런 암흑의 그림자들을 모두 쫒아버리고 허망한 예언을 하고 다니는 자들 대신, 진실로 저를 가르쳐 주는 사람들을 믿어야 된다고 자신을 타이르곤 했습니다.
저는 육안에 비친 빛이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신성한 숭배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61)*에 빠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생각 속에도 언젠가 저에게 비쳐질 어떤 큰 생각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의 정체를 알고 나서 그것을 벗어난 후, 이번에는 학문주의 사상이 오랫동안 키를 잡고 바다를 건너와서, 그 넓은 한 가운데로 부는 큰 바람이 되어 제 앞에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그것을 지나고 나서야,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어떤 바람에 제 몸을 맡겨야 하는지를 알게 된 것은 여기에서였습니다. 저는 저희 주교님 (앰브로우즈) 과 당신(데오도루스)과의 대화를 거듭해 오는 동안, 하나님에 관한 한, 거기에는 물질적인 것은 아무 것도 생각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가장 가까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저는 여자와 (대중웅변가로서의) 직책에 대한 유혹에 빠져서, 철학의 품안으로 선뜻 다가가서 안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것들을 모두 거친 후에야, 저의 돛을 완전히 펴서 있는 힘을 다해서 노를 저어 가면, 매우 운이 좋은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그 선택이 주어지는 철학이라는 천국으로 날아 가 그 곳에 안주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칭찬하시리라 믿지만, 저 플라톤의 책들을 겨우 몇 권 읽었을 때, 저는 그것들을 저 성스러운 신비에 가득 찬 성서들에 비교해 보게 되었고, 그 결과, 세상에서 성서들을 쓴 몇 사람만 빼고는, 사람들의 말을 함부로 받아들여서는 안되겠다고, 제 모든 신경을 다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느겼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저에게 불행한 일이었지만, 그 폭풍이야말로 비로소, 제가 그토록 부질없는 방황을 계속하고 있었을 때 저를 구원해낸 것임을 이제 믿어마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다의 요정 사이렌의 땅으로 저를 잠시 데려다 주었던 것 같았던 제 직무에 점점 더 큰 부담을 느끼게 되자, 결국 저는 그 모든 가슴의 통증을 내던져 버리고, 다 부서져 물이 새어드는 배를 저어, 그토록 동경해 오던 조용한 물가로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56) 「참회록」 ⅸ, 2-4 57)* “전진의 노래”(Cantica graduum)로 알려진 시편 119-113 참조. 58)* 베레쿤두스 : 밀라노의 문법교사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친구.
59)* 밀라노 근처에 있는 카시키아쿰(Cassiciacum)이라 는 곳에 있었던 베레쿤두스의 시골집에서 실제로 있었던 대화들을 기록한 「카시키아쿰의 대화」라는 책을 말함.
“당신을 혼자서 만났을 때의 대화”를 기록한 책은 「독 백」이라는 두 권의 책을 말함. 아우구스티누스의 가장 뛰 어난 학생들 중의 한 사람으로 철학의 가장 깊은 문제들 에 대해서 그와 편지를 교환했던 네브리디우스는 베레쿤 두스의 문법교수 일을 도와주기 위해 밀라노에 남아있었 음. 카시키아쿰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있었던 친구 들이란, 그의 어머니 모니카, 아들 아데오다투스, 동생 나비기우스, 두 사촌 라스티디아누스와 루스티쿠스, 두 제자 리센티우스와 트리게티우스, 그리고 카르타고에서 그의 학생이었고 그와 가장 가까운 친구들 중의 한사람 이었던 알피우스 등이었음.
60) 「행복한 삶」, 4장 61)* 마니케이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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