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제 마음 속에 아직 말씀드리지 못한 것은 무엇읽까요? 저는 당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제 영혼에 어떤 고난의 채찍을 아직도 가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제 영혼은 이제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는데도, 자꾸만 되감겨서 풀려 나가지 않으려고만 합니다. 온갖 말로 논쟁을 해보았자 다 반박되고 말아, 이제 말없이 떨고 있으면서도, 애초부터 망발만 늘어 놓던 저의 고집이 무너져버릴까 두려워 아직도 죽음같은 공포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투쟁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저 자신의 영혼과 스스로 맞서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던 어느 날, 저는 알피우스(Alpius)를 만나, 불안에 휩싸인 얼굴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우린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자네도 들었는가? 그게 무슨 소리지? 무지한 사람들이 일어나서, 힘으로 천국을 장악했다고 하던데! 아직 여기는 우리가 배운 지식이 건재하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멀쩡한 육신으로 잘 나가고 있는데 말일세!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앞선 것 같은데, 우리가 그들을 따라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그 뒤를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을 오히려 부끄럽게 여겨야 하는가?” 저는 이런 말을 내뱉고 숨을 헐떡이면서, 아직 놀란 얼굴로 저를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던 알피우스를 뒤로 하고 걸어갔습니다.
그것은 평소의 제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한 말보다도, 제 얼굴, 뺨, 눈, 그리고 목소리의 색깔과 말하는 태도가 심하게 흔들린 제 마음상태를 더 잘 나타내주고 있었습니다. 저희들의 숙소 옆에는 저희가 쓰고 있던 작은 정원이 있었습니다. 그 집 주인은 그 곳에 살고 있지 않았으므로, 실상 저희들이 그 집 전체를 쓰고 있었습니다. 제 가슴 속의 소용돌이는 아무도 말릴 사람이 없는 곳까지 저를 밀고 가서, 저 스스로 시작했던 그 투쟁을 당신만이 알고 계셨던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하고 있도록, 문제가 무엇이었던지도 모를 만큼 숨가쁘게 저를 몰아 부쳤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얼마나 사악한 놈인지 알고 있었지만, 또한 얼마나 멋있는 녀석이 될 수 있는 놈인지도 알지 못한 채로, 오로지 의기양양한 광기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죽음과도 같은 노호에 휘말려 있었습니다. 알피우스가 제 뒤를 바짝 따르고 잇는 가운데, 저는 정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가 제 곁에 있다는 것 때문에 제 비위가 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지경이었으니, 그가 어떻게 저를 혼자 가게 내버려 두었겠습니까? 저희들은 될수록 그 집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습니다. 오, 하나님, 저는 당신의 뜻에 맞고 제가 당신과 약속도 했던, 그 길이 제가 가야 하는, 뼛속깊이 깨닫고 찬양해마지 않는 길임을 뻔히 알면서도, 저는 제가 그 길을 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열에 들뜬 신음소리와 함께 불같이 화를 내면서 저 자신에게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길이 저희들의 집에서 그 곳까지 오는 길처럼 배나 마차를 타고, 혹은 걷기만 하면 갈 수 있는 그런 길은 아니었습니다. 그 길을 가고 목적지까지 다다를 수 있기 위해서는, 대단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 의지는, 이미 반쯤은 다 부서져버린 제 영혼이 혼자만으로, 그나마 만신창이로 남은 나머지 반쪽만 가지고 다 망가져 버린 다른 한 부분을 간신히 부여잡고 뒹굴면서 몸부림치고 있는 그런 상태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그렇게 강력하고도 온전한 의지여야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나마, 저는 조금씩 몸을 움직여 무엇인가를 시도해 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꼭 그것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겠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몸에 팔다리가 없거나, 팔다리가 있어도 꼼짝 못하게 묶여 있거나, 의지가 박약하거나, 어떤 이유로 해서, 하고 싶은 일이면서도 할 수가 없는 경우는 분명히 있습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이마를 부딪치거나, 주먹을 불끈 쥐고 무릎을 끌어안고 하는, 그런 충동적인 행위는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고 싶은 일도, 저의 사지가 말을 안 들을 때에는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고 싶은 생각과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저는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어떤 열망마저 없어진 채로, 그저 팔다리를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그것을 진실로 원하는 마음이 생겼고,, 제 의지는 비로소 온전해졌습니다.. 행위능력과 행위의지가 일치하는 상태, 하고자 하는 의지가 곧 행위하는 것을 의미하는 상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었는데도, 아직 저는 아무 행위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의 신체는 이제 저의 영혼이 원하는 대로, 팔다리를 움직이라든지 하는, 어떤 세세한 명령이라도 즉각 들어줄 능력을 회복했지만, 이번에는, 제 영혼 자체가 아직 행위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의지만 가지고는 아무리 대단한 결심을 해봤자, 그것을 실천에 옮길 능력을 갖춘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의 절정기 54)그래서, 저는 어느 때보다 더 혹독한 비난을 자신에게 퍼부으면서, 느슨하던 제 몸의 쇠사슬들이 부러져 나가도록 뒤틀고 조여서, 결국 병이 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래도 그 쇠사슬은 아직 저를 잡아매고 있었으며, 당신은 저의 깊은 속 한 가운데 버티고 서 계셨습니다. 주여, 당신은 제가 긴장을 풀지 않도록, 그리고 남아 있는 그 가느다란 끈이 끊어져 버리지 않고 더욱 튼튼해져서 저를 더 단단하게 묶어놓을 수 있도록, 당신의 그 혹독하신 자비를 베푸시면서 공포와 수치심의 채찍을 계속하셨습니다. 저는 마음 속으로, “자, 이제 다 됐어, 다 된거야.”라고 계속 다짐하면서, 자신의 말의 힘에라도 기대어 결심을 굳혀 보려고 애썼습니다. 그 덕분인지, 그럭저럭, 전처럼 뒷걸음치지 않고 숨을 돌리면서 든든히 서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젠 다시 더 가까이 갈 수는 있게 되었지만, 아직 그 끝을 손에 잡아당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아직 그 곳에 닿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실은, 저는 아직 정작 죽음조차 무릅쓸 그런 삶을 살기를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살아왔던 저속한 삶에 대한 욕망이 저 스스로 겪어보지 못한 더 나은 삶보다 저의 내면에 더 많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달라질 수 있는 시점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큰 두려움에 싸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저를 돌아 서게 하지도 않고 도망가버리게 하지도 않으면서, 저를 꼼짝 못하게 붙잡아 두고 있었습니다.
그 시시하고 허무맹랑하였던, 옛날의 제 소행들이 저의 뒤를 붙잡고 늘어져 제 육욕의 의상을 잡아당기면서, “너, 우리를 정말 떠나 보낼 거야?”, “이제, 아니, 영원히 우리들과 함께 있지 않을 것이라고? 이 순간부터, 이것도 저것도, 너는 다 할 수 없단 말이지?”하고 자꾸만 달콤하게 속삭였습니다. 제가 “이것도, 저것도”라고 말씀드린, 그들의 말이 제게 무엇을 요구했겠습니까? 하나님, 그들은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겠습니까! 아, 당신의 자비로우심으로, 이 노예의 영혼으로부터 그것들을 멀리 해주소서! 그 추잡스럽고 파렴치한 짓들을! 저는 이제 그들의 소리를 예전의 반도 안되는 작은 소리로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제 저를 만나러 오지 않았고, 이제 대놓고 저를 닥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제 등뒤에서 계속해서 투덜거렸으며, 제가 막상 떠나가려고 했을 때에는, 제가 뒤돌아 보게 하기 위해서 맹렬하게 저를 잡아 당겼습니다. 그 바람에 제 발이 붙들려서, 저는 선뜻 그들을 떨쳐 버리고 몸을 일으켜서 부르심을 받았던 당신의 길로 뛰어오르지 못한 채 주춤거렸습니다. 못된 저의 습관들이, “너 정말, 이런 것들을 안 하고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으나?”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옭아매어 온 그 습관의 목소리는 이제 매우 작아졌습니다. 제가 조바심하며 향해 가고 있던 그 길 저쪽에서, 정적 속의 기쁨, 그 자비로움과 순수한 절제의 존엄한 모습이 나타나서,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가까이 오라고 저에게 간절히 손짓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게 사랑이 넘치는 손을 내밀어, 저를 받아들이고 감싸 안으려는, 온갖 훌륭한 일들로 가득 찬 성스러운 손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저는 그 허영의 목소리들이 귀에 들리고 자의식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너무 부끄러워서 그냥 서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절제는 제게 말했습니다. “너의 육체의 그 더러운 찌꺼기들로부터 귀를 막아서 스스로 파멸 당하지 않게 해라. 그것들은 네게 즐거움을 약속하지만, 너의 하나님, 주님의 법이 알고 있는 그런 즐거움을 너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이런 말이 저의 마음 속을 오고 갔습니다. 그것은 저 자신에 관한 말인 동시에, 저 자신을 반박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알피우스는 내내 제 곁에 조용히 앉아서, 제 마음 속의 이 이상한 흥분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깊은 반성 끝에, 저의 모든 초라한 모습이, 제 은밀한 내면으로부터 다 끌어내어져 완연하게 드러났을 때, 제 마음 속에서 대폭풍과도 같은 것이 몰아치면서 눈물이 비오듯이 쏟아졌습니다. 저는 그 눈물을 눈치 안 보고 다 쏟아낼 수 있도록, 알피우스에게 온갖 말로 적당히 변명하면서 알피우스 곁을 떠났습니다. 우는 데는 혼자 있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의 모습이 보이는 것조차 마음에 걸릴 것 같아서, 아예 멀찌감치 떨어져 갔습니다. 제 마음상태가 그 때 그랬었고, 그도 역시, 제가 눈물 때문에 목이 막혀버린 것을 보고 제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일어서서 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 그 곳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왜 그랬던지, 무화과 나무 밑으로 가서 눈물에 몸을 맡긴 채, 당신에게 용납될 만큼의, 제물의 눈물을 쏟았습니다. 저는 정확하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대강 이런 뜻으로 쏟아냈습니다. “주여, 언제까지 저에게 화를 내실 것입니까? 영원히 저를 버리시려고 하십니까? 저희들의 지난 잘못을 제발 더 이상 기억하지 말아 주시옵소서.”(시편 78 : 5-8) 저는 옛날의 제 과오들이 아직도 저를 붙들고 있는 것 같아서 비참한 울부짖음을 계속했습니다. “언제까지 이럴 것입니까? 또 내일, 내일입니까? 지금은 왜 안됩니까? 저의 이 추잡스러운 꼴을 왜 당장, 이 순간부터 끝낼 수 없겠습니까?”
이렇게 외치면서, 제 마음 속 깊이 간직되어 있던 가장 쓰라린 슬픔을 토해 내면서 울고 있을 때, 저는 문득 사내아이인지 계집아이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목소리로, 어떤 이웃집 아이가, “일어서서 책을 읽어요. 자, 일어나서 책을 붙잡고 읽어요.”라고 계속해서 노랫말을 흥얼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즉시, 저는 안색을 확 바꾸고, 아이들이 어떤 놀이를 할 때 그런 노랫말을 하는지를 곰곰이 혼자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노랫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눈물을 그치고, 이것은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책을 펴서 처음 만나는 구절을 읽어 보라는 명령을 받고 있는 것이라는 확신에 가득 차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저는 안토니오55)*가 바로 그랬던 적이 있었다는 소리를 들었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가 우연히 성경의 어떤 구절을 읽고 있었을 때, 마치 그것이 실제로 누군가가 자기 자신에게 말을 해주고 있는 것처럼, “나가서 당신이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너는 천국의 보물을 얻을 것이다. 이리 와서 나를 따르라”(마태 19 : 21)라는 충고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이 신탁을 듣고 난 즉시, 당신 앞으로 나아가 개종하게 되었다고들 했습니다.
저는 일어나서 올 때 사도서를 놓고 왔었는데,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서 아무 말도 없이 그 책을 집어들고 펴서 맨 처음 제 눈에 들어오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그것은 “소란과 과음, 밀실과 방탕, 다툼과 질투를 그만 두어라.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와서, 육체의 욕망에 시중을 드는 일일 그만 두어라.”(로마서 13 : 13)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바로 그 문장이 끝났을 때, 제 머리 속에서 마치 고요한 불빛이 흘러 들어와서 그 불확실하였던 모든 어둠이 한꺼번에 달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바로 그 구절을 제 손가락이었던 듯싶은 것으로 표시해놓고 그 책을 덮고 나서, 얼굴에 광채를 띠면서 그 모든 이야기를 알피우스에게 들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도 마찬기지로, 저도 모르고 있었던 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제가 읽은 부분을 보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여 주자, 그는 제가 그만 둔 데를 지나서까지 계속 읽었습니다. 저는 당시에는 그 뒤에 무엇이 씌어 있었는지 몰랐지만, 그것은 “신앙이 약한 자여, 그대를 받아 들이리라.”(로마서 14 : 1)라는 것이었습니다. 알피우스는 이 말을 자기 자신에게 빗대더니, 저에게도 그 뜻을 분명히 말해 주었습니다. 그도 그 때 이 충고에서 힘을 얻게 되었고, 확실한 결심과 의욕을 가지고 저와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전부터 저와 사뭇 다르고 훨씬 뛰어났던 그의 인품에 썩 잘 어울리는 결실이었습니다.
그런 뒤,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들어가 그 일을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저희들이 자초지종을 다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뛸 듯이 기뻐하시면서, “우리가 바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보다 훨씬 더 방대한 일을 해내실 수 있는”(에페시아 3 : 20) 당신을 찬양해마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그 애틋한 눈물과 고뇌 속에서 저를 위해 당신께 기도해 오셨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당신께서 주셨음을 깨달으셨던 것입니다. 당신은 저를 당신 곁으로 인도하시어, 그 전에 저를 그녀에게 보내주셨을 때의 계획 그대로, 그 어떤 현세적 소망도 갖지 않게 해주신 것입니다. 당신은 어머니의 슬픔을 그녀가 바라왔던 그 어떤 기쁨보다 훨씬 더 간절하고 순결한 기쁨으로 돌려주셨던 것입니다.
53) 「참회록」 ⅷ, 7-8 54) 「참회록」 ⅶ, 11-12 55)* Anthony, 이집트의 수도승으로 이스턴 수도원을 창건함. 「참회록」 ⅷ, 6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아프리카인 Pontitianus가 들려준 안토니우스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감명 깊었다고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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