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운문사의 가을

해선녀 2004. 11. 12. 15:37

 

 

 

운문사엔 쳐진 소나무가

몸을 숙이고 울고 있었습니다.

히히덕거리며 돌아서 오는 길, 뚝, 뚝, 뚝,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내 뒤에서, 집채만한 나뭇잎 하나가

어깨 위를 지나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치열하게 살다 간 올캐는 죽을 당시에

금빛 찬란한 예수님의 도옴이 내려와

집을 덮어 주더라며 기뻐하더니, 그 길엔,

사랑도 슬픔도 내 작은 기쁨마저도 

 모두 떨어져 딩구는 것을 보았습니다.

회색 승복을 입은 어머니 같은 비구니들이

옹알이하며 지나간 우리 뒤를

말끔히 청소할 내일 새벽쯤이면

오늘은 또 어떤 아이들을 품에 안고 울 것인가

그 소나무도 맑은 생각을 가다듬을 것이지요.

아직은 중생의 관광 대열에 끼어 있음에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

사진: 친구 김연숙

음악: 영화 花樣年華 중에서 Yumeji's Theme/Barbara C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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