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에서

물한리에서

해선녀 2007. 6. 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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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 충북 영동의 민주지산에 갈 요량으로 물한리 계곡으로 들어 갔습니다. 가다가 보니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의 경계점인 삼도봉에 오르게 되었고 거기서 마주 보이는 전라도쪽 석기봉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삼도봉에서 온사방으로 내려다 보이는 삼도는 안개 속에서 너무나 평화로웠고 거인 같이 우뚝 솟은 석기봉의 머리 부분은 아주 가파른 바위여서 나는 줄곧 밧줄에 의지해야 했지요. 호팻지는 키가 낮고 몸이 가볍고 발에 넷이어선가, 아주 높은 곳에서만 좀 옮겨 놓아 주면 엉거주춤 서서 버벅거리는 나를 헤딱헤딱 돌아 보며 아주 잘 올랐습니다.. 녀석은 내가 따라 오나, 불안한 듯, 어디 가나 늘 그러지요...ㅠㅠ  그러다 보니 너무 늦어져서 민주지산은 옆구리만 돌아서 해가 뉘엿해진 즈음에야 물한리 계곡으로 내려 오게 되엇지요.

 

주차장에서 마지막 차 한 대를 몰고 내려 갈 등산객을 기다리며 산나물을 팔고 있던 할머니에게서 더덕과 취나물을 샀습니다. 그 분을 마을까지 태워다 드리며 차안에서 우리가 혹시나 하고 물었습니다. 우리 시사촌들 이름을 대면서 아시느냐고...세상에, 그 분은 바로 우리 사촌들과 한 집에서 살앗고 바로 그 집에 지금도 살고 잇다는 것이었습니다. 백부님이 육이오때 이북에서 피난 오셔서 한옥을 짓고 사형제를 더 낳고 사셧던 곳...막내 이름까지 기억하면서 자신의 아들 형제 이름도 바로 백부님이 지어 주셧던 거라고 합니다. 예전엔 주민이 많앗으나 지금은 이십 여 가구만 남았다고 하네요. 마을 입구에 내려 드리려던 우리는 그 집까지 가 보고 싶었습니다.

 

한옥은 허물어지고 지금은 그 자리에 작은 양옥과 컨테이너 창고 하나가 잇었습니다. 안부도 묻고 된장도 한 봉지 얻고 사촌 여동생이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빨래하러 오르내렸을 마당 바로 아래의 계곡물에도 내려 가서 앉아 보았습니다. 사촌 又靑씨에게 전화를 하니 중국여행 중이라면서 무척 반가워 햇지요. 물한리도 그랬고, 다시 지금 맏형이 백부님의 묘소를 돌보면서 살고 계신 경북 상주의 화북으로 들어 가서 살았던 것도 순전히 풍수지리에 밝으신 백부님의 뜻이었지요. 그 분은 제가 신혼 때 저희집에 오셔서 저더러 관상이 매우 좋다시며 장래에 큰 일을 해내리라고 하셧는데, 글쎄, 지금까지 그건 별로 맞지 않네요...ㅎ

 

우청씨 바로 위의 一靑씨는 처음 보는 순간 그 우뚝한 코와 빛나는 눈이 예사롭지 않았지요. 시아즈버님 댁께 등록금을 받으러 왔던 그 때, 그는 그 시골에서 용산고에 유학 와서 친구집에서 그 동생들 공부를 가르쳐 주면서 지내면서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다 하였지요. 나는 바로 우리집에 와서 살자고 했습니다. 그는 고3이었고,  나는 큰아이 임신 때였지만, 나는 내 도시락은 못사고 가서 호빵으로 떼우면서도 그의 도시락은 꼭 두 개씩 싸주었고 마침내는 그 누나도 우리집에 와서 도와 주기도 했지요. 그런데, 그가 서울법대에 들어간 것을 보고 우리가 미국 갓다가 4년 후에 돌아 왔을 때, 그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그 친구 어머니의 권유로 학교를 그만 두고 해인사에 들어가서 성철 스님의 제자가 되어 있었지요. 딱 한 번, 밀짚모자를 쓰고 우리집에 인사하러 온 이후 지금까지 그는 동생들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역시 독실한 불교 신자인 우리 둘째 시누이만 간혹 만난답니다.  

 

又靑씨는 처음엔 그 형을 매우 원망햇지만 형 대신 동생들을 돌보며 갖은 고생 끝에 지금은 돈을 많이 벌어서 형제들도 다 잘 도와 집안을 일으키고 백모님의 묘소도 물한리에서 백부님의 묘소가 있는 화북으로 몇 년전에 옮기고  마침 은퇴하신 배다른 맏형도 그 곳에 사시도록 집도 새로 짓고 넓은 텃밭도 사들였지요. 우리도 그 집에 가면 은퇴 후에 거기서 살까 싶은 정도로 정말 물이 맑고 차가운 계곡 마을,.백부님이 날아가는 듯이 아름다운 한옥을 짓고 사셨다는 물한리... 이북에서 사실 때는 평양에서 서울까지, 부산에서 페리호로 동경까지 기생을 '한 고빼'씩 전세내어 태우고 다니시며 팔도를 유람하며 노셨다는 분이 말년에는 너무 가난하여 아이들이 뿔뿔이 서울로 올라 와서 이 집 저 집 신세를 지며 고생하여야 했지요...그 바로 밑의 동생이셧던 우리 시아버님은 동생들을 모두 동경 유학을 시켜 주면서 호방장대하셨던 그 형님을 늘 잘 모셨으며. 아껴 두셨던 용돈은 물론이고 마고자 금단추도 조카들 떼어 주셨습니다....

 

물한리에는 백부님 가족이 살았던 마지막 흔적인 돌담마저 얼마 전에 허물어 버려 없었고 지금은 대문 옆의 커다란 추자나무(호두나무) 한 그루만 덩그라니 그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물한리는 호두와 올갱이국, 닭백숙이 유명하다는군요. 우리는 그 할머니가 소개해 준 35년 되었다는 식당에서 닭백숙을 먹었습니다. 닭을 삶는 동안, 호팻지와 나를 데리고 어려운 산행을 한 끝에 지친 나뭇꾼은 처갓집에라도 온 사람처럼 두 다리 쭉 뻗고 뜨뜻하게 불 넣어 주는 시골집 방에 누워 잠도 한숨 잤습니다. 토종닭이 다 그렇듯이 고기가 좀 질기기는 햇지만, 우리는 온갖 향기로운 산나물과 함께 닭고기를 알뜰히 잘 먹었습니다. 그러고도 오늘 새벽, 나뭇꾼은 한 삼십 명, 그 패거리?들을 이끌고 또 물한리로 갔습니다. 그 날 산행은 오늘 산행을 위한 답사였지요. 점심은 집에서 싸간 도시락을 산에서 먹고 저녁은 또 그 집으로 가서 닭도리탕으로 할 거라네요. 오늘은 민주지산도 놓치지 않고 올라 갔다 오겠지요. 나뭇꾼들은 다 기운이 좋을 테니까.....주차장에 내려 오면 그 할머니를 또 만날 것이지요...

 

에구, 친구네 결혼식에 가야 하는데,오랫만에 사진이라도 올려 놓았으니 설명이나 좀 붙인다는 것이 이리 수다가 길어졌네요...그냥 올려 놓고 저녁에 와서 고치든지 하겠습니다.... 은 주말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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