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 너무도 허무해서 허무를 잊기 위하여 별짓을 다해보는 것, 그것도 있지만, 허무, 그것을 경배하여 별짓을 다 바치는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그 허무로부터 도망을 가는 수도 있다. 실종. 우리는 종종, 그 허무를 감당치 못하여 차라리 나, 없소, 그러면서 실종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종이 어디, 정말 실종일까? 그것도 앞의 두 가지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하던 짓을 그만 두고 아무 짓도 안하는 짓, 그 짓을 하는 것이다. 하늘이시여, 땅이시여, 감사하나이다. 몸짓이거나 머리짓이거나 우리로 하여금 온갖 짓 다하게 세상에 내어 주심에 감사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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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사랑, 몸사랑, 말로 그러지만, 그것이 다 입방아일 뿐인 사람들이 있다. 진짜로 몸사랑 잘 하려면 말이나 글로 그럴 시간도 없지 않을까. 알고 보면 모두, 너무나 관념적이어서 탈출을 시도해보지만 역시, 가정법적 입방아로 끝나는 사람들. 그러나, 그 입방아도 대단한 위력을 가진다. 아름답다. 얼마나 좋은가. 우리가 입방아로라도 불나방처럼 허무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 그 허무 속에서 제 몸을 태우는 것일 줄도 모르고...
새로 태어나는 부부에게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라는 말,그 오래 된 말 한 마디만은 꼭 잊지 않는다는 그런 사람이 하나 있다. 그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는 불변의 道理라면서. 이젠, 짝짓기도 그 자체로서 도가 아니고 '우리 함께 산다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 가정법을 몸으로 말하고 시연하는 것이 되어가는 세상에서 그건 이제 골동풍이라 하지 않을지?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말한다. 가정법, 그 때 내가 그 해답을 알았더라면 그 길로 갔지, 안갔지,그러면서라도 어떤 길이든 그 불나방 같은 길을 가기 위한 키워드로 삼기 위하여. 불나방은 살아 나오기 위해서 불로 뛰어드는 건 아니지 않는가. 헤어지기 위해서 짝을 짓는 사람들은 없다., 어차피. 그러니까, 그 말 자체가 가정법인 것이다. 결혼 자체가 그렇다면 거기에 죽이 맞는 컨셉트인 것이다, 당연히.
언제 어디서부터든 간에, 가정법을 더 많이 거느리게 된 자여, 축복 받을지어다. 그것이 무엇이든, 한 번 간 길을 가정법으로만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도 축복받은 사람이다. 그런 축복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이 세상에 흔치는 않은 것이, 세상은 지금, 가정법의 결핍, 아닌 밥중의 홍두깨처럼 배경은 없고 오직 OX적인 클릭 한 번으로 판가름되는 아이텀들로 이루어진 콘텐츠, 대상적 사고만 살아남는 그런 세상이므로. 상상력이 아예 없거나 상상력만으로 현실이 되는 그런 세상이므로.대상(figure)만 잇거나 배경만 있는 그런 세상.
그래서 허무하기에 무엇인가를 한 그런 사람도 나는 사실 못되었다. 어찌 저찌 하고 보니 다 허무하더라는 거지. 색즉시공 공즉시색도 공염불, 색 안에 공이 있고 공 안에 색이 있다는 걸 나는 몰랐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있는 줄 알았다. 그냥 아무 것도 없는 것, 또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 허무인 줄만 알았다. 없기는 왜 없는가. 없다고 하는 말은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이해하기 싫거나 이해할 수 없을 때, 그렇게 덮어버리는 말. 항상, 색을 가진 공이고 공을 가진 색인 것을. Somethiing out of nothiing, Nothing out of somethiing이기 이전에, Something within nothing, Nothing within something인 것을.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있어 왔듯이.
그러므로, 나는 이제, 허무의 독 속에,빠져서도 허무를 사랑하며 사는 그런 사람이 되기로 한다. 내가 어느 날, '나 없소' 하고 실종된다면 그것은 허무로부터가 아니고 허무 속에서 더욱 절실히 허무하기 위해 실종되는 것이며, 내가 다시 어떤 짓거리를 하며 나타난다고 해도, 그것은 허무로부터도,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도 아니고 허무 속에서, 다른 어떤 것 속에서, 또는 그 어름 어딘가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허무와 떨어진 나는 없다. 실종될래야 될 수가 없다. 뛰어봤자, 벼룩, 나는 늘 부처님 손바닥 안일 뿐이고 예수님 무르팍 아래일 뿐이다. 나는 허무를 경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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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청담님의 지금 글 '해는 다시 떠오른다(1)'과 미루님의 지금 글 '출장 가는 길에' 에 꼬리말을 더 붙이려다가 너무 길어져서 여기로 옮겨 변조해 본 글입니다. 두 분의 용어들, 몸사랑, 가정볍, 그리고 그 글의 줄기들이 좋아서 따라가며 뒤에서 궁시렁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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