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우중 귀가

해선녀 2006. 7. 24. 10:18

 

 

 

후두둑거리던 비가 마침내 조록조록 평균룰이다. 올해는 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는 장마도 이제 끝날 때가 되었는가? 산바람에, 그리 더운 줄도 모르고, 폭우로 고생할 일도 없는 이 완만한 경사의 산자락 마을에 산다는 것이 새삼 다행스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외출했다가 집으로 올라 가는 길, 시장 골목을 들어 서며 최근 들어서 부쩍 내 눈을 믿지 말아야 할 일이 더 많아졌음을 느낀다. 고구마와 감자와 양파를 가까이서 들여다 보아야 구별한다. 습관대로 생각없이 움직이다가는 다른 사람들의 우산과 자꾸 부딪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부딪치곤 한다. 이마에, 머리에, 팔뚝에 정갱이에, 혹과 상처를 달고 산다. 이삼 년 전만 해도 누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을 때 안 보이면 보이는 만큼만 움직이면 되지 했는데, 이젠 내가 실제로그렇다. 말 그대로 일거수 일투족을 다 의식하면서 '보이는만큼만' 움직인다는 건 생각뿐이지,어디 그런가, 다 살피기도 전에 먼저 몸부터 움직여지는 것이다. 

 

전맹인이 오히려 저시력이나, 나같은 진행성 저시력자들을 인도하며 보행한다는 것도 이제 이해가 간다. 전맹인은 이미 자신의 시력에 전혀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촉각으로 확인한대로만 움직인다. 나도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완전히 눈이 어두워진 후에도 한참은 더 오랜 적응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한가한 시간에 가끔 눈을 감고 촉각만으로 일도 해보지만 매우 답답하다. 

 

누군가는 차라리 전맹이 되고 나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했다. 소소한 일에 일일이 관여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흔들리지 않고 대범하게 되었다는 뜻이리라.실제로, 그렇게 빠릿빠릿하고 성깔도 있던 사람이 전맹이 된 후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느긋한 성격으로 바뀐 사람을 본다. 눈동자가 희미해지고 흰지팡이를 든 그의 행색은 초라하지만 그의 평화 앞에 나는 부끄러어진다. 나는 아직도 잘 보지 못하는 나의 상태를 숨기고 싶어할 적이 많다.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도.  

 

그것은 스스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깔보는 마음이 내 안 한 구석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나의 어두워진 눈의 상태를 감추고 싶은 마음에서, '어, 더 예뻐졌네?' 먼저 말하면서 과장되게 눈이 잘 보이는 척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정직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마음이 평화로울 수가 없다.그런 생각이 들 땐, 일부러라도, 더 잘 갖춰 입고 나갈 수도 있는 자리에 편한 복장으로 나간다. 화장을 하다가도 지운다. 그래, 나의 모습은 이거야. 요즘 들어 부쩍 더 늙고 더 초라해져 가고 있지만 그냥 나간다. 실례만 되지 않으면 되지...

 

평화는 가장 이상적으로는 명징한 평화라야 한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 싼 상황의 물리와 심리와 논리들을 빤하게 꿰고 있으면서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 당당하게, 정직하게 그리고 명민하게 몸과 마음을 운위하고 있는 그런 평화...혹은, 그것이 너무 피곤해졌을 땐, 잠시 의식의 창문 커튼을 내리고 몽환에 빠져 드는 평화도 좋으리라.그것도 시시해지면 일어나 잠에서 깨어난 어린아이처럼 냉장고의 아이스크림을 찾아 먹는 순진한 평화로 되돌아 가도 좋으리라...

 

엊저녁에 오랫만에 생크림과 레몬 가루를 넣은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놓은 것이 생각난다. 괜히, 이젠 막내도 다 커버려서 아이스크림을 찾는 일도 없건만, 일부러 부탁해서 사 온 까망 베르 치즈 한 통을까지 한밤중에 오픈해 놓고 그냥 도로 두었지. 그래, 내일은 누군가를 불러서 포도주 한 잔을 해야지,..과일도 좀 살까...아, 또 걸음이 빨라지려 하네...지하마트로 내려가는 계단을 들어 서려다가 멈칫한다. 더듬거리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슬로프쪽을 이용한다. 누군가가 보고 있었다면 이미 눈치챘을 것을....

 

눈치를 보는 것은 명민함과는 다르다. 평생을 눈치 하나로 살아 왔다는 사람이 있다. 그는 언제나 맞닥뜨린 상황에서 자신이 살아남기에 유리한 길만 택한다. 그에게 가장 소중한 잣대는 자신의 눈으로 본 가치기준이 아니라, '남의 눈'이다.그는 언제나 그 상황을 빠져 나가기 위해 못하는 말이 없고, 취하지 못하는 자세가 없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이 중도실명의 시련을 나에게도 다분히 있는 그런 성향을 없애라고 신께서 주신 선물로 생각하고 싶다. 계속해서 남 앞에서 잘난 체만  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그것을 그릇되이 쓴다면 나는 더욱 불안해지고 그런 자신을 결국 스스로 사랑하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나는 너무 잘났다. 나는 지급보다 백배 천배 더 낮은 자리로 내려 가서 이 슬로프처럼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있는 시력에 잘 적응해 나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신의 선물을 헛되이 쓰는 것이다. 신의 선물? 그렇지 않은가, 그것은 누구 다른 사람이 준 선물이 아니지 않는가?

 

볼 수 있는 만큼만 움직이는 일에 집중을 하자. 자꾸만 남의 눈을 의식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다가 실수를 하지 않았는가.  특히, 내 상태를 모르는 사람들의 요구에 너무 황급해 하지도 말자. 나는 내 능력에 맞게 응해야 한다. 그것을 답답하게 여기거나 깔보는 사람이 있어도 나는 거기에 마음 다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안 그랬던가? 아닌 척하면서 속으로는 그랬다. 이 선물은 그랬던 나에게 주어진 벌이기도 하다. 더 중요한 것은 눈으로 못 보는 대신, 생각들의 경계와 모서리들이라도 잘 구별해야 한다. 그것이 명민이다. 절대로 신경증적으로 가서는 안된다.

 

누가 그랬다. 맹인은 의심증 환자가 되기 쉽거나 적어도, 그렇게 오해를 받게 되어 있다고. 전자는 그 선물을 잘못 사용한 결과이다. 다른 사람은 눈으로 힐끗 보면 될 일도 우리는 자꾸만 내 가방이 어디 있는가, 그 사람은 왓는가, 왔는가...묻고 챙기게 되어 있다.그것은 남을 믿지 않아서이기 보다는 보지 못하고 행동하는 스스로의 실수에 대비하는 마음일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의 그런 마음을 다 모르니 신경증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어찌 탓하랴. 다만, 우리 스스로 더 명민해져서 잘 챙기고 간추리야지...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대해서조차 다 잘 알지 못한다. 그 때 그 때, 편리한대로, 자신의 한 부분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예만했음을 개닫곤 한다. 그러니, 그 스스로도 자신의 분간과 구별을 어떻게 다 믿겠는가? 그로 인한 우유부단해짐을 부끄러워 하지 말자. 그렇지 않은 척, 순간마다 전체를 다 알고 그래서 결단력 있는 척 서두르는 데서 불안을 자초하고 가중시킨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인간은 오해와 실수로 존재한다. 다만, 그 오류를 감추지 말고 최대한으로 명징하게 의식하려고 노력할 뿐...

 

세상엔 정답이 없다고들 한다. 누가 신처럼 명징할 수 있는가? 그러나 세상에 정답은 있기는 있다.아니, 정답으로 가득 차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자꾸 놓친다. 진실로 없다면 세상엔 정답이 없다는 생각, 이 생각도 정답이 아니다. 정답은 오직, 내가 그것이 왜 정답이 아닐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왜 정답일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그 순간마다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했살처럼, 머릿속에서 잠시 잠시 빛나다가 사라지는 것. 그 햇살에  꽃은 피어나지만 어느 꽃도 그 자체로서 정답은 아니다...

 

 

야채와 과일과 두부와 된장 고추장,푸줏간의 고기 냄새까지 나를 확 깨운다. 아, 그렇다. 꽃이고 몽환이고, 나발이고, 그것들을 피우게 할 이것들이 다 내 본질들이다.에어컨 바람에 머릿속이 조금 맑아진다. 술이 깨듯, 몽환을 깬다. 나의 자유는 내 내장을 채워 줄 이것들에서부터 언제든지 다시 출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콩나물 한 줄기를 사면서도 거기에 집중하고 동시에 사방 사람들의 움직임을 잘 감지하면서 시장의 생리와 논리와 풋풋한 농담들로 부드럽게 이어진 연줄을 타고 지상 위로 잘 떠올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이제 너무 많이 엉긴 끈들부터 정리해야 한다. 우선 이 장바닥에서부터 너무 많은 물건들을 두 팔에 가득 매달고 나서지말자. 가볍게, 웬만한 것은 배달도 시켜 버리고 평화롭게 떠오르자..집에 가서도 좀더 단순하게, 더우면 샤워부터 하고 쥬스도 한 잔 마시고 일을 시작하자. 지금은 그럴 수 있어서 좋다. 양손 가득 동동걸음으로 들어 와서 옷도 채 갈아 입지 못하고 허둥거리며 싱크대 앞에 붙어 서던 시절엔 고달팠지만, 이젠 그럴 일도 없지 않은가.

 

평화롭게 내 몸부터 우선 돌보리라.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그것이 모두를 위하는 길이다, 결국...조금씩 조금씩 내 평화를 내가 누리는 방식과 내용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나에게는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남들에게도 인식시키고 그 안에서 평화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배달을 부탁하고 제과점과 철물점에 들려 가벼운 봉지 하나씩만 받아 들었다. 산봉우리를 바라 보며 눈치챌 수도 없이 완만한 오르막길을 천천히 걷는다. 나는 이 길이 좋다. 집에 도착하니 저 평균률로 오는 비도 그쳐 가고 산봉우리의 안개도 걷혀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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