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옥수수밭을 지나며

해선녀 2004. 4. 12. 03:29

 

 

여기는 오하이오 주의 신씨네티. 작년 4월에 흑인 폭동이 있었던 곳이지요. 바로 남쪽 20분쯤만 가면 켄터키 주가 인해 있어서 국제공항을 함께 쓰고 있습니다. 

 

신씨네티는 예전엔 미국에서 서너 번째로 큰 도시였을 때부터 흑백갈등이 심했던 곳이었습니다. 인디애너 주도 인접한, 그러니까, 대농장들이 인접한 세 주의 교통요지였던 곳인데, 지금은 아이보리 비누와 죠이 세제, GE의 비행기 엔진 등을 생산하는, 오하이오 강을 끼고 공장들이 있는 꽤 잘 사는  동네입니다.

 

지금도 다운타운의 많은 건물들이 백년이 넘었고 길들은 구불구불한 옛길, 왕복 6차선 정도가 제일 넓습니다.오페라 극장 앞은 전차가 다니던 레일이 그냥 깔려 있어요. 사월엔 정경화가 신씨네티 심포니와 협연하러 온답니다..저는 그래도 반듯반듯한 도시들보다 여기가 좋은 것이, 집들도, 낭만적이고. 주변 풍광도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은 남쪽, 가난한 캔터키 주의 사람들을 아직도 차별하고 있군요..나자렛의 예수가 켄터키에서 온 사람쯤 취급을 받은 거라고 농담을 하대요. 신씨네티는 한가운데 있는 대도시니까 흑백이 모여 잘 어울리다가도 늘 갈등이 내재되어 있어 보입니다. 빌리그래엄이 수십 만 명을 몰고 온다고 또 흑인들의 반대시위가 한창이고 반대를 반대하는 시위도 있군요. 호텔예약 취소 사태로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랍니다.


작년에 폭동의 방아쇠를 흑인 소년에게 당겼던 그 '유능한' 경관을 이웃 이븐데일이라는 곳에 재부임을 하게 한 문제로 아직도 반대여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요즈음엔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라는 자부심 실린 단어를 흑인이라는 말보다 더 많이 쓰더군요. 조금만 북쪽의 그로서리에 가면 종업원이나 손님이나 흑인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남쪽의 그로서리에는 있는, 우리와 흑인들이 잘 먹는 생선도 없어요. 우리는 매운탕을 좋아해서 베쓰나 송어를 사러 남쪽 그로서리를 자주 갑니다.


학군도 뚜렷하고, 아이들이 우리 아이더러, "너희는 생선국 먹지?" 하며 놀려대던 이십년 전과 별로 달라진게 없지요. 그저께 밤에 영화 오클라호마 비디오를 보다가 또 그 옥수수 대농장을 달려가고 싶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그 영화의 주제가를 흥얼거리며 바로 그 옥수수 밭이 펼쳐저 있는 I-71을 북쪽으로 마냥 달려갔습니다. 

 

There's a bright golden haze on the meadow,

There's a bright golden haze on the meadow.

The corn is as high as an elephant's eye

And it looks like it's climbiing clear up to the sky,

 

Oh, what a beatiful morning,

Oh, what a beautiful day,

I got a bearutiful feeling

Everything's going my way!

 

오하이오 주립대가 있는 콜럼버스로 가는 길이었지요. 지금 워싱턴에 살고 있는 제 옛친구가 38년 전에 가르쳐 준 그 노래...우리는 시험공부한답시고 함께 공부하기를 좋아햇는데, 밤새도록 공부는 안하고 노래 부르고 수다하기를 그치지 않앗지요. 지금도 꿈을 꾸면 그 때 살던 우리집과 내 방이 무대지요. 등장인물은 요즘 사람이어도 배경은 늘 그 때 그 집입니다..

 

비와 안개가 앞을 가려 길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말, 나뭇가지 하나가 날아와, 저의 철없는 낭만을 나무라는 듯이 차 꼭대기를 쳤습니다. ‘깊은 강’이라는 흑인영가가 또 생각이 났습니다. 음울한 큰 눈으로 포르노 사진을 사라고 디밀며 캔터키 주의 어느 주유소 앞을 서성이던 흑인 여자도, 엊그제, 세 살, 다섯 살, 일곱 살 짜리 아이들을 데리고 사는 별거 중의 부인을 그로서리 앞에서 찔러 죽였다는 남자도 떠올랐습니다. 그 아이들을 위한 모금을 한다고 했는데...흥얼 흥얼 나는 끝없이 노래를 부르고 남편도 깊은 사색에 잠긴 얼굴로 운전만 합니다. 말없이 걷고 달리다가도 멈칫 서서 먼데 하늘을 응시하며 그리운 눈빛을 하는,온 몸통이가 새까만 우리 검둥이만 자꾸 내 뒷꼭지에 주둥이를 갖다대며,차창을 내다 보고 있었어요.

 

코에 바람 들어가게 창문을 열어 달라는 뜻이려니 싶지만, 추워서 그럴 수가 있어야지요. 집을 잃고 쉘터에서 보호되고 있다가 기부금 조금 내고 데려온 녀석인데, 이틀만 더 늦었으면 주사 맞고 다시 죽어버렸을지도 몰랐답니다. 라브라도 리트리버 블랙...아주 몸매가 날씬하고 몸이 잽싸고 영리한 구조견...눈이 별처럼 반짝이고 털이 까만 비로도 같아서 우리는 Sunny라고 부르지요. 써니라고 불러도, 수니라고 불러도 녀석은 제 이름을 알아 듣지요.

 

써니는 어쩌면 저 옥수수밭 지주의 막내아들이었을지도 몰라, 흑인 노예들에게 온갖 변덕 다 부리면서 들볶았을지도 몰라...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며, 잠시 녀석을 데리고 비 걷혀 가는 잔디밭을 좀 걸었습니다. 몸은 멋지게 생긴 녀석이 속이 좋지 않아서 음식을 많이 먹을 수가 없습니다. 노예들에게 음식 가지고도 못되게 굴었을까?  그 전 주인에게 그랬음직한 응석을 이제 우리한테도 맘껏 부리는 써니,  그래도 눈치가 너무 빤해서 목욕을 한 후에만 소파와 우리 잠자리에 올라 오는 순이. 골프 공을 치면 기다렸다가 잽싸게 몸을 날려 주워 오는 써니...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수니를 어떻게 하지? 늘 숙제인 그 생각을 또 합니다.  구름이 조금 뚫린 사이로 해가 동그란 얼굴을 내밀고 햇살을 그 광막한 들판에 가득 쏟아 내렸습니다. 굉장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광경이지요. 노예들은 일하다가 그런 광경을 보았을 때, 허리를 펴지도 못한 채, 무슨 노래를 불렀을까요? 그래도 지금 같은 광명천지가 올 것을 그들은 그 때 알았을까요?


그들이 부른 노래들도  아리랑이 아니였을까요? 알리라. 알아, 음,,,아리랑...우리 아리랑처럼 한이 서렸던. 지금도 서리가 되어 그 나뭇가지 끝마다 엉겨서 미대륙의 온 벌판을 붙들고 광명천지가 올 것을 안다고, 안다고 하며 울부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아프리카와 인도와,  그리고, North Korea...세상 어느 곳이고 굶주리고 억압받는 자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고 들려올 것 같은 저 소리, 지나가는 눈길을 애닯게 붙드는 저 서리...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콜럼버스, 그의 연구실에 잠시 들러 책 한 권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우리가 온 것을 알고 그의 후배 한 사람이 자기집으로 와서 저녁 먹자고 전화를 햇지만 사양하고 그가 자주 가는 어느 한인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는 다시 신시내티로 차를 돌렸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그저 마냥, 그 서릿발이 보석들처럼 반짝이는 옥수수밭길을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누구네 집에 가서 노닥거리고 싶은 마음보다 더 컸던 것이지요.  수니도 차창밖 내다보기를 그치지 않고, Oh, what a beautifull evening, Oh, what a beautiful evening...사로 말하지 않앗는데도, 우리는 그렇게 가사를 바꾸어 부르며 어둠 속에 묻혀 가는 들판을 달렸습니다.  

 

 

200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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